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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가을, 도보여행을 즐기다

충남 홍성



홍성은 위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과 조선의 지조 높은 선비 성삼문은 물론, 일제강점기 청산리전투의 김좌진 장군과 일제에 항거한 한용운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또 천주교의 성지이기 해 순례길을 거닐기 위해 찾는 이가 한 해 천 명이 넘는다. 일제의 핍박과 종교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곳에 홍성이 있다.





1,2. 8km의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3시간 가량이면 부담 없이 1 2 돌아볼 수 있다



홍주의 역사를 만나다 천년여행길 홍성 순례길


고려시대에 운주로 불린 이후 홍주, 1914년에는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쳐 홍성이라는 지명으로 바뀐 홍성은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는데 서산과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 지방이 이에 해당된다. 홍주는 예로부터 내포에서도 가장 큰 고장이었다. 천 년동안 한결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을 지키며 역사의 꽃을 피웠다. 그 중심이었던 홍주 읍성 주변에는 전래동화와 같은 이야기와 함께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다. 홍성을 가장 잘 알기 위해서는 홍주성 천년여행길을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2018년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12월 걷기여행길’에 선정된 이후 매달 약 3,000명이 찾아 트래킹을 즐기고 있는 이 거리는 약 8km, 천천히 걸으면 3~4시간이 소요된다.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천 년의 역사를 가진 홍주 성읍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길이다. 홍성역이나 홍성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홍성전통시장, 홍주의사총, 매봉재, 홍주 성지순례, 홍주읍성을 차례로 돌아 홍성전통시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희망찬 홍성을 상징하는 고암길과 서민경제의 면면을 보여주는 장터길,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공간 매봉재길,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주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남은 홍주성길, 현대를 넘나드는 추억의 골목길로 이뤄져 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과 옛 방식 그대로 철을 다루는 홍성 대장간, 홍주의사총, 매봉재 등 주요 역사문화 자원을 연결하는 길을 걷다보면 천 년 홍성의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홍주읍성은 처음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성벽의 둘레를 재고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철거된 북문 밖에서는 1894년 동학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진 동학군 수백 명이 처형되기도 했다. 홍주읍성 안의 홍주아문은 고종 때 확장하면서 흥선대원군이 안회당(安懷堂)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고 현재는 홍성군청의 출입문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 중 하나다.

천년여행길은 천주교 순례길과도 맞닿아 있다. 조선 후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는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싹틔웠다. 19세기 이 지방에는 주민 80%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다. 홍성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으로 1791년 신해박해에 원시장 베드로가 충청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순교된 이후 정사박해(1797),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에 이르기까지 200여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알려지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1,000여 명 이상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포지역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홍주목사로 끌려와 처형되면서 홍주는 순교의 핵심성지가 됐다.

2018년 조성된 홍성 순례길은 내포지역을 관장했던 홍주목사가 머물던 고문과 문초를 받은 동헌, 옥사, 홍주진영, 저잣거리, 참수터, 생매장터 등 모두 여섯 곳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10만 명 이상이 찾은 홍성 순례길은 기차를 이용해 순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홍성역에서 홍주성지까지는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3. 홍주읍성의 4대문 중 하나인 조양문에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4, 5 동헌, 교수형 터, 홍주진영, 저잣거리, 참수터, 생매장터 등 모두




낭만과 여유가 있는 죽도


홍성에는 아름다운 바닷가도 많다. 광천에서 생산되는 김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고 가을에는 김장에 사용할 토굴새우젓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해마다 9~10월에는 남당항에서 대하축제가, 1~2월에는 새조개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특히 홍성의 서쪽에 위치한 죽도는 섬 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라고 불린다. 천수만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인 이곳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숲과 바다의 풍광을 즐길 수 있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도 있다.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죽도는 1개의 유인도와 11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섬이며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유일한 유인도에는 약 25가구 6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섬 전체에 조성된 대나무 숲과 해송, 갈대숲 둘레길이 매력적인 죽도는 야영장, 쉼터 등도 구비되어 있어 가족 단위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인근에는 천수만권역 상황오토캠핑장, 다온세울터 야영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특히 차량과 오토바이가 없어 소음과 탄소가 없는 섬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6. 해마다 1~2월이면 남당항에서는 새조개축제가 열린다
7. 한 해 2,500여 통의 새우젓과 젓갈이 만들어지고 있는 토굴새우젓





항일 운동을 펼친 위인이 많은 홍성


홍성에는 홍성에서 나고 자란 항일 운동 인물이 많다. 특히 올해는 청산리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로,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 김좌진 장군은 경술국치 이후 본격적인 항일 운동을 시작하면서 홍성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되기도 했는데 매년 10월 25일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는 김좌진 장군의 생가에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홍성에는 일제강점기에 투철한 독립정신으로 저항문학을 완성한 만해 한용운의 생가도 있다. 만해의 생가는 2칸의 작은 방이 있는 초가집으로, 터만 남은 곳을 철저한 고증으로 복원했다. 생가의 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으며 그 주위를 ‘민족시비공원’이 둘러싸고 있다. 천천히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군데군데 시비를 배치한 민족시비공원에는 은유와 역설로 시인으로서 큰 획을 그은 ‘복종’을 비롯해 유치환의 ‘바위’, 정지용의 ‘고향’과 같은 민족시인 20명의 작품이 들어서 있다.

1906년 홍성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의병군의 유해를 모신 홍주의병기념탑도 빼놓을 수 없는 항일의 공간이다. 1949년, 식목일을 기념해 군수와 경찰서장이 현재의 홍주의 사총이 있는 부근에 나무를 심던 도중 대량의 유골을 발견하면서 유골을 모두 모아 이곳에 합장하고 분묘를 조성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8. 1906년 홍성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의병군의 유해를 모신 홍주의병기념탑
9. 매년 10월 25일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는 김좌진 장군 생가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10. 한용운이 여생을 보낸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심우장





궁리포구

천수만과 AB방조제 수평선 너머에 안면도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궁리포구는 잔잔하면서도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 을 끼고 도는 임해관광도로 드라이브 코스의 출발점이다. 포구에는 고깃배가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에 남당리와 더불어 갓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글 : 나덕한
사진 : 봉재석, 홍성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