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  유튜브채널 바로가기  페이스북 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다음블로그 바로가기     


생산성 확보를 위한 진일보

농업 기계화 사업



한국농어촌공사의 113년 역사를 되짚어본다. 이번 달에는 1970년대 진행된 농업기계화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농업기계화로 당시 도시로 빠져나가던 농촌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농업 생산성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었다.


산업화 초기,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삶의 거처를 옮겨갔습니다.
농촌의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노동력은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의 발전에 따른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식량자급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1972년, 정부는 농업기계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줄어드는 농촌 인력을 대체하고,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도전이었습니다.

품앗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손으로 하나하나 벼를 심던 자리에
경운기와 이앙기 같은 기계들이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기계화사업을 통해 우리는
농촌의 식량 생산량을 대폭 확대시킬 수 있었고,
마침내 우리나라의 주곡인 쌀의 자급을 달성해냈습니다.



1960년대 경지정리 이후 정부는 농업기계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농촌인력의 급속한 도시유입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충하고, 높은 생산성을 통해 식량자급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1953년에 양수기와 발동기가 생산되고, 1954년 제승기, 1955년 동력 탈곡기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보급률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정부는 1972년 <제1차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을 시행하고 동력 경운기 10만 대를 공급하였고, 이후 경운기는 농업기계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승용기계를 이용한 벼 이앙작업
우리나라에 근대식 농기구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09년이다. 당시 일본에서 6종의 개량 농기구를 수입했으나, 농업기계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동력 농기계를 사용한 것은 1972년부터 시작된 <제1차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미면농장의 기계화된 추수 장면
전북 옥구군에 위치한 미면농장은 간척지 매립을 통해 조성된 토지다. 1972년 기계화시범농장으로 설립되어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 작업을 기계화하였다.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시행된 <제2차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의 핵심은 벼농사의 전면적인 기계화 추진이었다. 이어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시행된 <제3차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의 목표는 1987년까지 평야는 100% 기계화, 산간은 50% 기계화로 정해졌다.

이를 통해 경운기로 땅을 갈고 이앙기로 모를 내며 트랙터나 콤바인을 통해 수확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는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농업기계화는 거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바다를 막아 광활한 농지를 새로 만드는 간척사업, 어지럽게 얽혀있는 농경지를 바둑판처럼 정리하는 경지정리사업 등과 같은 농업생산기반사업이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편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 배수개선사업, 경지정리사업 등을 통해 농지가 확대되고, 농업기계화와 함께 농업생산성 역시 크게 향상되어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마침내 주곡인 쌀의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글 : 염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