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 하지만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또한 명절이 아닐런지. 힘든 명절이라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추석 이후 한층 성숙해진 나를 기대하며!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와도 반갑지만은 않은 이들이 있다. 가부장적인 가치관 아래 부당한 노동 환경에 처하게 되는 여성들이다.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명절 당일 일을 하다 분노한 큰 며느리가 며느리들을 하나둘 차에 태워 탈출하는 내용이다. 몇 년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 이채롭다. 화제의 글은 ‘큰엄마한테 납치 당했다. 큰엄마가 우리 엄마, 작은엄마, 사촌언니, 동생들 여자 가족한테 읍내 장보러 가자고 봉고차에 태우더니 지금 고속도로 달리심. 우리 강릉 간다’는 내용. 이 글의 영화화 소식은 이미 트위터 등 SNS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만큼 여성들이 받는 명절 스트레스가 강력하다는 걸 입증하는 대목이 아닐까?
예비 며느리인 20대 여성 은서(김가은)의 눈으로 본 명절의 모습은 결혼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회의적이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 그저 인사하러 온 손님이건만 분위기에 휩쓸려 어느새 고무장갑을 끼고 무언가 도울 일은 없는지 눈치를 보던 그녀는 “이번 제사는 째자!”고 결단하는 큰며느리 이영희(정영주)를 비롯한 집안 여자들과 합세해 봉고차에 탑승하기에 이른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조달환 등 배우들의 열연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올 추석엔 부디 이같은 명절 스트레스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만나고 싶고 그리운 가족을 볼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명절은 멀리 있거나 아예 다시 볼 수 없게 된 가족에 대한 생각을 더 절절하게 나게 만든다. 트로트 장르의 전성기를 되살려낸 TV조선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으로 유명해진 가수 장민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 <내 이름 아시죠>는 요즘 시대 보기 드문 절절한 사부곡이다. 가사 내용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꿈에 한 번 오세요, 잘 도착했다 말해요, 조심조심 가세요, 넘어지면 안돼요, 달님이 그 먼길을 지킬 겁니다’.
명절 스트레스 중 가장 큰 부분이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건 참 아이러니다. 학업·취업·결혼 등 당면한 과제를 해내지 못한 데에 대한 방어 기제가 발동해 마치 가족이 나에게 질책을 하는 것만 같이 느끼게 되는 것. 자신에 대한 관심이 기약없는 스트레스로, 자신에 대해 거는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작용 또한 결국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개개인이 자기 수양을 통해 끌어안고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넉넉하고 여유있는 인심을 바탕으로 서로 부족한 점에 대한 용서와 화합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명절의 가장 아름다운 밑그림일테니까.
추석을 앞두고, 30년 전 노래를 다시 꺼내 들어본다. 조용필의 <꿈>이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이 곡은 1991년 4월에 발매된 13집
글 임수민(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