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가업 열전 2

부모의 경험과 자녀의 아이디어가 만나
로컬 브랜드가 되다

여기,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결합해 가족 브랜드를 탄생시킨 이들이 있다.
가업을 이은 브랜딩 스토리를 소개한다.
글 이인철, 김산들 | 사진 박충렬, 이대원
가업 열전 2
엄마의 사과를 디자인하다
권도형 선암파머스 대표
어머니의 SOS에 고향으로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은 지 올해로 3년 됐습니다.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제 생각을 담아 사과로 브랜딩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직접 재배한 사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권도형 선암파머스 대표는 경북 문경의 산골 마을 선암리에서 가장 젊은 농부다. 권 대표는 사실 노래와 작곡에 재능이 있었고, 음악인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편입할 정도였다. 그렇게 음악인의 꿈을 향해 가던 중 어머니의 SOS를 받았다.
“어머니가 과수원 일을 도와달라고 연락하셨어요. 좋아하는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어머니가 몇 년에 한 번씩 바꾸던 사과 박스를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싶다고 하셨죠.”
어머니 일을 돕던 그는 패키지 디자인을 넘어 과수원을 브랜딩하는 일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제대로 해보자 싶어 선암리로 내려왔다.
그는 가장 먼저 브랜드 스토리에 집중했다. 어머니가 키운 사과에 그가 나고 자란 ‘선암리’를 더해 마을 브랜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죠.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저희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떠오른 것이 선암리였어요.”
선암파머스의 콘셉트를 잡기 위해 부모님 과수원부터 선암리 역사까지 모두 수집했다. 콘셉트를 잡은 후에는 디자인하는 친구들에게 수십 번 피드백을 받으며 선암파머스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화했다. 사과 품질과 맛은 처음부터 자신 있었다. 그는 선암파머스의 맛 비결을 감홍 사과로 꼽았다. 감홍 사과는 특유의 높은 당도와 신맛·단맛이 조화를 이뤄 풍미가 일품이며, 문경에서 주로 생산된다. 거기에 선암파머스만의 40년 노하우로 사과즙 맛의 편차를 줄였다.
권 대표는 선암파머스로 브랜딩한 이후 홍보 마케팅에 주력했다. 온라인 몰은 물론 서울의 카페와 협업하고 인스타그램 등 SNS 마케팅도 적극 펼쳤다. 특히 선암파머스의 사과 맛을 도시에 알리기 위해 자주 서울로 향한다.
“소비자가 직접 맛보도록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홍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바리스타로 일한 적 있던 카페와 협업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팝업 스토어를 열어 사과와 사과즙을 직접 맛보일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죠.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저희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떠오른 것이 ‘선암리’였죠.”
선암파머스는 에어로케이항공에 고객을 위한 사과즙을 제공한다.
또 일본 MZ세대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인증 주스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 MZ세대, 선암파머스 주스로
인스타그램 인증 릴레이
권 대표는 선암파머스를 알리기 위해 ‘겁 없이’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저런 브랜드가 있었나?” 하며 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런 시선이 권 대표에게 동기부여이자 자극제가 됐다. 덕분에 카페를 넘어 에어로케이항공, 일본에까지 진출했다.
“3년 전 제 인터뷰를 봤다며 일본의 한 카페 사장에게 연락이 왔어요. 패키지 포장이 예뻐서 자신의 카페에서 팔아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에 진출했는데, 저희 사과즙이 화제가 됐어요. 특히 일본 MZ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카페에서 선암파머스 사과즙 마시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졌어요.”
이후 선암파머스의 사과즙이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본 일본의 한 식품 유통사에서 연락이 왔고, 수출 계약까지 이어졌다. 3년 만에 마을 기업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가업을 잇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갈등도 있었다. 일손이 부족한 과수원에 꼼꼼한 아들이 와서 일하니 든든했지만, 어머니 황동화 씨는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을 고집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는 30년 넘게 과수원을 하면서 항상 10kg 단위로 판매했어요. 하지만 아들은 5kg, 2.5kg으로 줄이고 사과를 하나하나 속포장하면서 스티커까지 붙이더라고요. 할 일이 산더미인데 포장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싶어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요. 하지만 매출이 2~3배 늘고 고객들의 긍정적 반응을 보며 아들의 노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전적으로 아들에게 신뢰를 보낸다. 함께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로 이제는 서로를 배려하며 차근차근 맞춰가는 단계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지원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노하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며 시너지를 내는 데 집중한다.
권 대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목표에 이르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한국의 델몬트로 선암파머스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가업을 잇고 있지만, 저에게 선암파머스는 스타트업이에요. 한국의 델몬트라는 큰 꿈을 목표로 삼았지만, 지속 가능한 농촌 브랜드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잘돼서 마을에 기여하고, 더 넓게는 문경시 지역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거창하기보다는 문경에 살다가 일과 꿈을 찾기 위해 떠나간 친구들이 희망을 품고 다시 돌아오는 기회의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과로 가업을 잇는 재미에 푹 빠진 권 대표에게 음악인의 꿈은 어떻게 됐냐고 묻자 주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음악이 취미 활동이 됐어요.(웃음) 그리고 가업을 이을지, 음악을 계속할지 꼭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투잡이 필수인 시대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사과 농사를 짓는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도형 대표의 가업 잇기 TIP
1. 로컬 브랜드의 스토리 만들기
판매하는, 혹은 판매하려는 제품에 우리 집, 우리 마을 이야기를 담는 것이 1순위다. 우리 정서상 시골이나 농촌의 느낌은 한마디로 신뢰다.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든다.
2. 패키지 디자인은 제품의 얼굴
품질은 기본이고, 디자인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바로 패키지 디자인이기 때문. 구매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3. 카페 제휴, SNS 활용하기
시골에서 생산한 제품은 도시민에게 낯설 수밖에 없어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 도심의 카페와 제휴를 통한 시장 개척, 그리고 인스타그램 등 SNS 홍보를 통해 제품을 알리자. 기회는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