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은 용의 해. 용 중에서도 가장 추앙받는 청룡의 해다.
청룡의 상서로운 기운으로 희망이라는 화룡점정을 찍어보자.
글 이정은 | 참고 도서 <한국민속상징사전> ‘용’ 편

2024년은 갑진(甲辰)년, 청룡의 해다. 십이지의 용(辰)은 갑진(甲辰, 청룡), 병진(丙辰, 적룡), 무진(戊辰, 황룡), 경진(庚辰, 백룡), 임진(壬辰, 흑룡) 순으로 육십갑자를 순환하기에 올해는 청룡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용은 십이지 동물 중 최고 권위를 지닌 존재로 여겼다. 왕이나 왕권을 상징해 임금과 관계된 것에는 거의 빠짐없이 ‘용’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용안(얼굴), 용상(임금의 평상), 곤룡포(옷), 용린(임금의 위엄이나 노여움), 용비(임금이 태어난 곳) 등 수없이 많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시험하기 위해 지은 <용비어천가>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용은 만물의 근원인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 역할도 했다. 용을 우리말로 ‘미르’라고 부르는데, 물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용이 승천해 풍운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하고, 물과 바다를 다스리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에 용은 ‘용신’, ‘용왕’ 등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다양한 의례가 생겨났다. 가뭄이 들었을 때 지내는 ‘기우제’, 바닷가 마을에서 지내는 ‘용왕제’, 정초 우물가에서 행하는 ‘용알뜨기’, 대보름 강가에서 용신에게 제물을 공양하는 ‘어부심’ 등이 있다.
용이 숭배 대상이라는 건 세시풍속에서도 드러난다. 음력 정월 첫째 진일(辰日)을 상진일, 즉 ‘용날’이라고 한다. 이날은 부녀자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우물물을 길어 왔다고 한다. 이날 새벽 하늘의 용이 지상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풀어놓고 가는데, 이 우물물을 가장 먼저 길어다 밥을 지어 먹으면 그해 운이 좋고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초에 지신밟기를 할 때 풍물패들은 마을 공동 우물에 용왕굿(샘굿)을 치고, 집돌이를 할 때도 각 집의 우물에서 용왕굿을 친다. 우물(샘)에서 “용왕님, 제발 적선 농사 물 좋아 농사 잘 짓고, 이 물맛 좋아 온 식구 건강하게 해주소서”라고 기원했다. 전라도 지역 각 마을에서는 청룡을 그려 넣은 농기(農旗)를 지신밟기 또는 두레를 할 때 내다 걸기도 했다.
용은 청룡·백룡·흑룡·적룡·황룡으로 나뉘는데, 그중에서도 청룡을 으뜸으로 쳤다. 고대 중국의 여러 문물을 자세히 기록한 <회남자(淮南子)> 권3에 “천신 중 귀한 것은 청룡보다 더한 것이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 중국에서도 청룡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고구려 벽화고분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와 함께 청룡은 동쪽을 지키는 사신(四神)이었다. 청룡은 동방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았다. 조선 시대에는 갑진년이 되면 조정에서 사진검(四辰劍)을 만들어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나 진급한 장군에게 하사품으로 내렸다.
청룡 사랑은 현대로도 이어졌다. 학생 야구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는 ‘청룡기 한국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이고, 권위 있는 영화제 또한 ‘청룡영화상’이다. 중장년층이라면 MBC 프로야구팀 ‘청룡’을 기억할 것이다. <디지몬>, <포켓몬>, <메이플스토리>, <원피스>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도 청룡은 중요한 캐릭터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 등 여러 위기에 직면한 현재, 지정학적 갈등과 기후 위기 등도 여전히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용 중에서도 가장 상서롭다는 청룡의 해가 아닌가.
2024년에는 희뿌연 구름을 뚫고 장엄하게 승천하는 청룡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불확실한 기류를 뚫고 활기차게 비상해 목표에 도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