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가업 열전

100년 체험 목장 꿈꿉니다 부모님은 목장 세우고
두 딸은 사람 모으고

경기 여주에는 동물 체험과 유제품 요리 체험을 할 수 있는 ‘은아목장’이 있다.
젖소, 산양, 미니 말 등 여러 동물이 모여 사는 이곳은 국내 1세대 체험형 목장이다.
어머니 조옥향 씨가 1983년 낙농업을 시작해 2006년
체험 목장으로 전환했고, 프랑스에서 파티시에 과정을 마친
딸 지은 씨가 돌아와 가업을 잇고 있다.
글 김산들 사진 박충렬
젖소 3마리로 시작해
1세대 체험 목장이 되기까지
“저 위에 있는 게 젖소 축사인데 큰 녀석들 20여 마리가 있어요. 요구르트, 치즈, 라테 음료 등에 들어갈 우유를 제공해주지요. 아래쪽 왼편에는 작년에 태어난 송아지들과 미니 말이 있고, 그 옆엔 산양과 염소가 있어요. 실내 체험장에서는 피자와 버터를 만들 수 있고, 카페에선 농장에서 짠 우유로 만든 음료를 맛볼 수 있지요.”
어머니 조옥향 씨가 20년 전부터 하나씩 준비하며 가꾼 것들이다. 목장 소개에 끝이 없는 조 씨는 40년 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남편 김상덕 씨를 설득해 여주로 귀농했다. 이후 젖소 3마리로 시작해 70마리 이상으로 규모를 늘렸다. 당시엔 우유 생산량(산유량)을 늘리는 것이 낙농가의 최대 과제였는데, 은아목장은 산유량 랭킹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원유 파동’이 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 정책이 우유 증산에서 감산으로 바뀌고 쿼터제가 도입됐어요. 우유 회사 납품에 의존하지 않고 은아목장만의 유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고품질 국산 치즈·요구르트라면 농가 제품도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판매보다는 체험에 중점을 두고, 농장을 아름답게 단장하고 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사실 준비는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조 씨는 최고 낙농가에 주는 상을 여러 차례 받으며 해외 연수를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낙농 선진국의 유제품을 유심히 살펴봤다. 기념품도 젖소와 관련된 것들만 사왔다. 국내에선 요구르트와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 결과, 2006년 낙농진흥회로부터 체험 목장 인증을 받고 2009년 유제품 생산을 위한 유가공업 허가를 받았다.
은아목장 전경
농장을 정리하는 큰딸 지은 씨
은아목장 입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지은 씨가 우유를 살균하고 있다.
직접 그린 그림 앞에 선
어머니 조옥향 씨
20대에 가업 이은 두 딸
어머니 조 씨의 큰 그림은 목장에 국한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첫째 지은 씨에게 카페가 있는 은아목장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이에 공감한 지은 씨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티시에 과정을 수료했다. 작은딸 지아 씨도 일본 대학에서 식품가공을 전공하며 유가공 관련 학위를 취득했다. 유학을 마친 지은 씨가 은아목장에 합류한 건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다.
“대학생 무렵, 부모님이 체험 목장으로 전환하느라 무척 바쁘셨어요. 동생도 저도 부모님을 도울 마음이었기에 체험 목장 운영에 필요한 전공을 선택했죠. 돌아와선 낙농 체험 지도사 인증을 받고 전문 경영인으로 등록하며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게 됐어요.”
딸들이 합류하며 체험 목장 운영에 필요한 가족 간 업무 분담을 확실히 했다. 아버지는 낙농 체험과 소 관리를 맡고 어머니는 유가공품 관련 체험을 총괄하기로 했다. 두 딸은 치즈와 버터, 피자와 소시지 등으로 나눠 체험을 진행했다. 덕분에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해졌다. 목장에서 직접 생산한 우유로 밀크 소시지 만들기, 모차렐라 등 다양한 치즈를 만들고 이를 넣어 피자 만들기 등 선택의 폭을 넓혔다. 송아지 외에 염소와 산양, 미니 말, 새 같은 동물 식구도 늘렸다. 실내엔 어머니 조 씨가 해외에서 사 온 벽화와 소품을 배치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냈다.
그사이 목장 풍경도 업그레이드됐다. 목장을 둘러싼 벚나무는 해를 거듭할수록 장관을 이뤘고,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자아내며 재방문객이 늘었다. 체험객의 연령대를 고려한 편의 시설을 마련하고 곳곳에 포토 존도 설치했다. 카페와 실내 체험 공간을 늘리면서 하루 200명 넘는 인원이 동시에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대를 잇는 농업’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날까지
대부분의 농장 체험, 목장 체험은 한두 시간이면 끝난다. 그러나 은아목장에선 동물 체험과 가공 체험을 한 뒤 카페에서 쉬며 저녁까지 머무르는 체험객이 많다. 다녀간 이들이 자신의 SNS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거나 ‘여긴 정말 찐 체험 목장’이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한다. 목장에 왔던 외국인 관광객도 자기 나라에 돌아가 블로그나 SNS에 올리면서 만족스러웠던 공간과 체험을 공유한다. 지은 씨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래 머물고 싶고 또 오고 싶은 체험 목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외국인 체험객이 더 많이 올 수 있도록 외국어 홈페이지도 준비 중이에요. 목장에서 생산한 우유의 80%가 카페에서 소비될 정도로 카페 방문객이 많은데, 사계절 고르게 찾아올 수 있게 방안을 구상 중이에요.”
엄마를 돕던 20대 딸은 이제 어엿한 체험 목장 경영인이 됐다. 농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고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도 선정된 어머니 조 씨도 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체험 목장의 토대는 저와 남편이 만들었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든 건 딸들이에요. 주변에선 딸들이 엄마를 돕는다고 했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자격을 갖춰 제 몫을 충분히 해줬기에 지금의 은아목장이 된 거죠. 가업 승계가 그저 기특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 전통과 가치를 지키는 일, 부러움의 대상이 됐으면 해요.”
지은 씨는 재료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제품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파티시에를 공부하며 달걀, 우유, 버터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제품과 베이커리 관련 아이디어도 많아 적절한 때가 되면 사업화할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지금의 은아목장을 유지하며 내실을 기할 생각이에요. 시기적절하게 도전과 유지를 거듭하면서 탄탄하게 꾸리고 싶거든요. 저희는 지속 가능한 100년 목장을 만들어갈 겁니다.”
농장 이야기를 담은 책
목장 우유로 만든 유제품
젖소 모양 쿠키
김지은 씨의 가업 잇기 TIP
1. 부족한 부분의 전문성 높이기
부모님이 유제품 가공 기반을 갖춘 후, 딸 지은·지아 씨는 우유를 재료로 한 가공품의 개발과 체험에 필요한 전문 과정을 밟았다. 이를 통해 은아목장 체험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였다.
2. 비수기 체험 늘릴 특별 프로그램 개발
체험 목장은 봄가을 외에는 방문객이 적다. 유지방 함량이 높은 겨울 우유로 버터 만들기 체험을 진행해 비수기 체험객을 늘린다. 구입 문의가 올 정도로 인기 있어 잠재 고객 확보에 도움이 된다.
3. 공간 활용과 제품 구성을 탄력적으로
봄가을 학기 중에는 학생 단체 체험, 주말엔 가족 단위 체험과 카페 이용객 위주로 운영한다. 단체 방문이 가능하도록 카페 공간을 넓히고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치즈를 활용한 다양한 식사 메뉴를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