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신(新)전원일기

프리미엄 감자칩 만들고 호박 파티 엽니다
고향 귀농 12년 차 노재석 씨

고향 양평으로 돌아온 지 12년째. 무농약 감자를 키우는 농부로,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은 감자칩을 만드는 사업가로,
자이언트 호박이 장관을 이루는 호박 파티 기획자로 1년 내내 바쁜 노재석 씨를 만났다.
글 김산들 사진 김규남
도심 카페 사장, 감자 농부가 되다
초록 들판이 펼쳐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기 양평. 구불구불 정겨운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컨테이너 건물이 보인다. 나무 덱을 가운데 두고 ‘ㄷ’자로 놓인 2층 높이의 흰색 컨테이너 박스. 마당 곳곳에 자리한 대형 호박도 이색적이다. 정체가 궁금하던 찰나 ‘별똥밭농장’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농장주 노재석 씨가 농산물을 가공하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부모님이 젖소를 키우셨는데, 소 먹이고 우유 짜느라 단 하루도 집을 비우지 못하셨어요. 틈틈이 감자, 참깨, 고추를 재배하며 땅 한 평도 놀리지 않으셨죠. 부모님을 보며 농사의 고단함을 일찌감치 알았고, 나중에라도 축산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는 대학에 진학하며 자연스레 고향을 떠났다. 7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 살 무렵 평소 커피를 좋아했던 터라 카페를 창업했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의 경쟁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자신만의 경쟁력을 찾던 그는 직접 커피나무를 키워보기로 했다.
“커피나무를 키우려면 하우스 시설이 필요했어요. 일정 물량을 내려면 어느 정도 규모도 갖춰야 했죠.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기에 찬찬히 준비하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향으로 왔습니다.”
초보 농부인 그에겐 여러 가지 농산물을 심기보다 손이 덜 가는 하나만 심는 게 나아 보였다. 1만6,500m2(약 5,000평) 규모의 밭에 감자를 심었고, 20t을 수확했다. 그런데 ‘이걸 다 어떻게 팔지?’ 하는 고민이 생겼다.
“그때 알았어요. 왜 부모님이 이것저것 조금씩 농사를 지으셨는지.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집에 있던 가마솥이 눈에 들어왔어요. 직접 농사지은 감자로 칩을 만들면 공장에서 수입 감자로 만든 칩과는 뭐라도 다르겠지 싶어 무작정 튀겼지요. ”
“감자와 고구마는 생산지와 품종, 누가 튀겼는지에 따라 칩 맛이 달라요.
양평 감자와 여주 고구마 등 가장 맛있는 원료에 저만의 기술을 더해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별똥밭 감자칩을 먹어본 고객들이 자꾸 손이 가는 맛이라고 해요.”
백화점·SNS 스타 ‘별똥밭 감자칩’의 탄생
노 씨는 가마솥에 튀긴 양평 감자칩을 가까이 사는 조카의 유치원 간식으로, 시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친형의 가게 주전부리로 보냈다. 맛있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감자칩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주문이 점점 늘었고, 커피 농장을 구상하며 이름 지은 ‘별똥밭’을 붙여 감자칩을 팔기 시작했다. 지역 축제에도 참가했는데, 하루 수백 봉지가 팔릴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분위기를 타고 전국 곳곳의 프리 마켓을 다니며 감자칩 고객을 늘려갔다. 1년쯤 지났을까, 아차 싶은 상황에 처했다.
“맛있게 만들겠다고 생각만 했지, 식품 가공 시설과 허가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어요. 이참에 제대로 준비하기로 하고, 시설을 갖추면서 별똥밭 감자칩의 미래를 계획했지요.”
감자칩 고객이 함께 찾을 법한 고구마칩도 개발했다. 거의 모든 종류의 감자, 고구마를 맛보면서 칩에 가장 어울리는 품종을 선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온라인 택배 판매를 시작했다. SNS도 적극 활용하며 별똥밭 감자칩을 알렸다. 1~2년쯤 지났을 때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에서 프리미엄 먹거리를 소개하는 팝업 스토어 참가 제안이 들어왔다.
“고객들이 우리 감자칩을 시식하면 처음엔 ‘음, 감자칩이네’ 하고 그냥 지나가요. 자극이 덜한 맛이거든요. 그런데 다 먹을 즈음 되돌아와서 감자칩을 사 가요. 왜 그런지 물어보니 감자칩의 끝 맛이 좋고 물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 제품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팝업 스토어 행사에 참여했고,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에서 열린 농부 기획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백화점 고객이 선택한 프리미엄 감자칩으로 소문나며 판매도 빠르게 늘었다.
자이언트 호박 심어 호박 파티…
마을도 알리고 싶어
판매가 순조로워 규모를 늘릴까 하던 어느 날,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 초 화재가 발생해 가공장이 전소되며 1년 가까이 감자칩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 공간을 정비해 생산을 재개했지만, 좀처럼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봄에 기회가 찾아왔다. SBS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감자칩, 고구마칩 달인으로 섭외가 들어온 것이다.
“작년 4월 방송에 소개되며 전화위복이 됐어요. 판매에도 힘을 받게 됐죠. 감자칩은 5월 말에서 12월, 고구마칩은 연중 생산하기로 하고 여기에 맞춰 농산물을 계획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그의 감자 농사는 2월에 시작된다. 이때 하우스 감자를 심고 3월엔 노지 감자를 심는다. 모종마다 줄기를 1~2개만 남기는 순지르기도 빼놓지 않는다. 전부 수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크기와 모양이 좋은 감자를 생산하기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린다. 감자칩은 5월 하순부터 판매하고, 고구마칩은 여주에서 생산된 것으로 만든다.
“직접 재배하는 것 외에 다섯 농가와 계약 재배한 감자도 씁니다. 젊은 친구가 감자를 사준다고 알려지며 마을 어르신들이 소량 생산한 감자도 구매하고요.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니 더 좋아요.”
그는 찾아오는 손님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자이언트 호박도 재배한다. 컨테이너형 건물 앞마당에 수십 개의 호박을 전시하는 호박 파티를 여는데, 방문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도 잘 준비해서 특별한 마을 축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생산·가공·판매를 혼자 하려니 어느 하나 만족스럽게 챙기긴 어려워요. 그래도 힘을 내서 별똥밭 감자칩·고구마칩을 궤도에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다음엔 가족과 함께 키워나가고 싶어요.”
별똥밭 감자칩과 고구마칩
백화점 팝업 스토어
노재석 씨의 귀농·귀촌 TIP
1. 위기 뒤엔 기회가 온다
노재석 씨는 감자 풍년이 들자 감자칩을 개발했다. 시설 허가 문제가 생겼을 땐 가공 시설을 마련하고 고구마칩 제품군을 추가하며 체계를 갖췄다. 화재가 났을 땐 빠르게 재정비한 덕에 매체 홍보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 가치를 알아주는 고객을 찾아라
감자칩을 먹어본 고객들이 SNS에 입소문을 내면서 백화점 측에서 팝업 스토어 참여를 요청했다. 좋은 제품이라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는 백화점 고객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고, 프리미엄 감자칩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3. 지역, 이웃과 상생… 함께 가면 멀리 가니까
원료로 쓰는 감자는 마을 농가와 계약 재배한다. 고구마는 재배 적지인 이웃 지역 여주에서 생산된 것을 쓴다. 해마다 무료로 여는 호박 파티 또한 마을이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키우는 수고를 감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