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절기로 읽는 농어촌

백로(白露)
본격적인 가을, 농작물이 결실을 맺는 시기

풀벌레 소리 요란한 백로 무렵이면 날씨가 맑고 청명해 곡식이 알맞게 여문다.
고된 여름 농사를 끝낸 뒤 농가가 잠시 한가해지는 시기다.
선조들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했고, 부녀자들은 친정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글 임산하
흰 백(白), 이슬 로(露). ‘흰 이슬’이라는 뜻의 백로(白露)는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다. 이맘때면 밤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풀잎에 맺힌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며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귀뚜라미 소리가 제법 커진다.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들며 양력으로는 9월 8일경, 올해는 9월 7일이다.
이 무렵은 장마가 걷힌 후라 맑은 날이 이어진다. 일조량이 많아 곡식이 여물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백로가 지나면 늦가을로 접어들고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벼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 전 미발(未發)이면 헛농사다”라는 말이 있듯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
백로 때 조상들의 풍습을 보면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 날씨를 관찰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이를 ‘백로보기’라고 한다. 이 무렵 바람이 불면 벼가 해를 많이 입고, 낱알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어진다고 했다. 반면 경남 섬 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千石)을 늘린다’고 해 백로에 비가 내리면 대풍이 든다고도 했다. 백로 무렵이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부터 백로는 포도가 맛있게 익어가는 철이었다. 포도가 제철인 백로에서 추석까지 기간을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고 했다. 선조들은 이 무렵 편지를 쓸 때면 첫머리에 “포도순절에 기체만강하옵시고”라고 안부를 전했다. 정성스레 키운 포도를 수확하면 처음 딴 포도는 사당에 먼저 올린 다음 맏며느리가 포도 한 송이를 통째로 먹었다고 한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 알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백자에 포도 그림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간혹 백로가 음력 7월 말에 들기도 하는데, 이때는 계절이 빨라 참외나 오이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또 고된 여름철 농사가 끝나고 추수를 할 때까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어 부녀자들은 이 무렵 친정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한 것도 이 무렵이다. 백로 전, 처서가 되면 풀이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 시기에 벌초를 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산소가 깨끗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백로에 준비하는 농사
곡식이 여무는 때지만 기후에 따라 수발아가 발생한 논은 빠르게 퇴수하고 조기에 거둔다. 포도 등 과일은 적기에 품종별로 수확한다. 이 무렵 가을배추는 아주심기를 하고, 가을무는 본잎이 4~5장 나오면 솎는 등 가을 농사가 한창이다.
백로 농사력
식량작물

ㆍ벼 이삭이 팬 후 30~40일경 완전 물 떼기

ㆍ수발아(익어가는 이삭에 싹이 트는 현상)가 발생한 논은 가능한 한 빨리 퇴수 후 조기 수확

ㆍ콩 꼬투리를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양분과 수분 공급

ㆍ참깨 이모작 재배와 땅콩은 꼬투리 성숙도 확인 후 수확

원예·
특용 작물

ㆍ과수 주변 바람이 심한 곳의 방풍망 점검, 배수로 정비 및 경사지 비닐 피복

ㆍ과일 품종별 적기 수확

ㆍ중부는 9월 상순, 남부는 9월 중순에 가을배추 아주심기(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히 심는 것)

ㆍ가을무 본잎 4~5장 나오면 솎기

ㆍ딸기는 9월 중순경 심는 것을 권장

ㆍ강황은 종자가 떨어지기 전 베어 채종

ㆍ느타리버섯 균사가 배지에서 거의 자라면 빛을 쪼이고, 중·고온성 품종의 경우 비닐 제거 전 10~16℃로 내림

ㆍ인삼 수확 시 뿌리가 상처 입지 않도록 주의, 수삼 저장고 입고 전 냉각 처리 후 항균 처리된 폴리에틸렌 상자에 보관

축산

ㆍ환절기 일교차 대비 방풍·보온 철저

ㆍ면역력 저하된 가축 건강 관리

ㆍ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예방을 위해 농장 출입 전 소독 생활화, 울타리 점검 등 방역 활동 철저

ㆍ축사 내 적정 온습도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