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가업 열전

부모는 토마토 재배 아들은 발효식품 개발토마토로 고추장 만드는 가족

아버지가 수확한 토마토, 어머니가 만든 토마토 고추장으로 사업에 도전한 아들이 있다.
낮에는 토마토 농장에서 땀 흘리고, 밤에는 개발에 매진하며 가업을 이은 ‘토마토 아뜰리에’ 김인성 대표다.
12년 차 농부이자 사업가로 활약하는 그는 토마토 발효식품으로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글 김산들 사진 박충렬
토마토 아뜰리에
주소 경기 광주시 중앙로 330-2
문의 010-2874-8824
출장길에 찾은 토마토의 가능성, 가업 잇겠다 결심
광주시 퇴촌면. 서울·분당과 인접한 도시 지역임에도 토마토 농가가 100곳이 넘는 자타 공인 토마토 명산지다. 올해로 22번째 토마토 축제가 열렸을 만큼 토마토는 마을의 자부심이다. 김인성 씨 부모님은 이곳에서 30년 넘게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토마토 농사를 지어 도매시장에 출하하셨어요. 성인이 될 무렵부터는 시장에 내놓지 않고 농장 앞에서 토마토를 파셨고요. 많은 사람이 사러 오는 걸 보며 우리 농장 토마토가 맛있구나 생각했죠.”
대학을 졸업한 그는 암 치료기기 전문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했다. 입사 7년 차였던 2012년, 영국 본사로 출장을 떠나면서 그는 ‘엄마표’ 고추장을 들고 갔다. 현지인에게 고추장을 맞보여줬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무척 좋았다.
“어머니가 토마토 발효액을 넣어 만든 고추장이었어요. 워낙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라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산물 가공 수업을 들으시고 나름의 레시피를 더해서 고추장을 만드신 거죠. 현지 반응을 보면서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토마토 가공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그가 고추장을 들고 간 곳은 엉뚱하게도 일본이었다. 오사카 친척 집에 머물며 현지 식당을 찾아 토마토 고추장 판촉에 나섰다. 2년 넘게 ‘맨땅에 헤딩’한 결과는 역시나 신통치 않았지만 준비와 기획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토마토 아뜰리에의 시그너처 제품 ‘토마토 고추장’과 ‘토마토 맛간장'
리버마켓에서 소비자 만나며
‘토마토 아뜰리에’ 열어
인성 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건 2015년 봄. 이번엔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토마토와 발효식품을 판매하면서 소비자 반응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경기 양평군 ‘문호리 리버마켓’에 참가하게 된 것. ‘토마토 총각네’라는 이름을 달고 완숙 토마토와 토마토 고추장 등을 팔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농사지은 토마토와 가족 모두의 정성이 들어간 토마토 고추장, 간장 등을 알릴 좋은 기회였어요. 퇴촌 토마토에는 자신이 있었고 토마토 고추장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완숙 토마토를 3년간 숙성한 발효액으로 만든 토마토 고추장
잘 익은 토마토를 들고 환히 웃는 인성 씨
비닐하우스 12동 규모에서 완숙 토마토를 재배하는 인성 씨 부모님
주말에는 리버마켓에 참가하고 주중에는 토마토 가공시설을 찾아다녔다. 사무실이자 연구실로, 또 규격과 기준에 맞는 가공시설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7년 여름 토마토 아뜰리에를 열었다. 예술가의 작업실을 뜻하는 아뜰리에라니 왠지 낯설다.
“토마토 아뜰리에는 장인정신으로 토마토 발효식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예술가가 공방에서 작품을 만들 듯 발효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각오를 담았죠.”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 디자인과 패키지도 만들었다. 그렇게 토마토 아뜰리에의 대표 상품 세 가지를 완성했다. 토마토 고추장은 그의 어머니 레시피에서 비롯한 고추장으로, 3년 숙성한 토마토 발효액에 태양초 고춧가루, 간장, 메줏가루만 넣어 만든다. 찹쌀가루나 밀가루를 넣지 않은 ‘글루텐 프리’에 일반 고추장보다 나트륨 함량이 40% 낮은 ‘저염’이다. 토마토 맛간장은 일반 양조간장에 꼭지 딴 토마토를 넣고 푹 끓여 짠맛이 적고 특유의 풍미가 있다. 겨울 한정으로 판매하는 토마토 청국장은 건조 토마토 가루를 섞어 특유의 향을 잡고 감칠맛은 높였다. 젊은 층도 많이 찾는다.
지난여름 이랜드 리테일 입점 업체로 식품전시회에 참가한 모습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토마토와 발효식품을 판매하는 인성 씨
장류 이어 김치까지 토마토 발효식품 더 알릴 것
주중에는 아뜰리에에서 토마토 발효식품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리버마켓에서 제품 판매를 이어갔다. 몸은 고단했지만 바쁘고 즐거운 날들이었다. ‘토마토 총각네’로 리버마켓의 스타 농부가 됐고 이를 계기로 방송 출연이 이어지며 유명 셰프의 요리에 토마토 고추장이 쓰이기도 했다. 6성급 호텔 식재료로 납품까지 하게 됐다.
“토마토로 전통식품인 고추장을 만들어서 국내외 식품박람회 참가 요청도 많았어요. 2019년 파리 K-푸드 박람회, 일본 도쿄 식품박람회에서도 인기였죠.”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2020년부터 2년 넘게 리버마켓이 열리지 않으면서 제품을 판매할 기회가 크게 줄었다. 그래도 다른 일을 해가며 토마토 아뜰리에를 유지했다. 온라인 판매도 늘렸다. 이후 자리를 잡으면서 자체 쇼핑몰과 경기도의 우수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 ‘마켓경기’에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외 판촉 행사에도 계속 참여했다. 재작년 말 미국 뉴욕 식품박람회, 지난해 3월엔 일본 도쿄 식품박람회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올여름에는 유통업체 이랜드 리테일을 통해 주요 킴스클럽 매장에 입점했고, 농촌진흥청과 이랜드의 지원으로 팝업 매장도 운영했다. 일본인 관광객 대상 요리 체험교실을 진행하는 등 일본 소비자와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잘나가던 엔지니어에서 토마토 발효식품 사업가로 변신한 인성 씨
그가 홍보에 열중할 수 있는 건 변함없이 품질이 우수한 토마토를 키워내는 부모님 덕분이다. 그의 부모님은 비닐하우스 12동 규모에서 연간 세 차례 토마토를 심고 수확한다. 중간중간 땅을 쉬게 하고 친환경 영양제를 뿌려주며 토마토를 연 50t 생산한다. 이 중 30% 이상을 가공 원료로 쓴다.
“한동안 토마토 아뜰리에에 집중하려 리버마켓을 쉬었는데 올봄부터 다시 참가하고 있어요. 올해 6월엔 어머니가 개발한 토마토 김치가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요. 연말쯤엔 신제품이 나옵니다. 토마토와 고추장을 결합한 칠리소스로 한국식품연구원과 막바지 테스트 중이에요. 국내외 시장을 열심히 뛰어다니며 토마토 발효식품을 더 많이 알려야죠.”
김인성 씨의 가업 잇기 tip
1. 좋은 원료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
인성 씨의 아버지는 경기 광주에서 영농 후계자로 오래 농사지었다. 토마토 재배 경력만 30년 이상. 어머니는 20년 전부터 토마토로 발효액과 고추장을 만들어왔다. 좋은 원료와 비법 레시피를 눈여겨본 인성 씨가 이를 상품화했다.
2. 소비자와 직접 만나 피드백 받기
일본에서 무계획 판촉을 경험한 그는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토마토 발효식품을 판매하며 토마토 아뜰리에를 알리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도 들었다. 사업 진행에 큰 도움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대표 상품을 만들었다.
3. 초심을 지키며 본질을 놓치지 않는 자세
토마토 아뜰리에는 판매 제품을 다양화하지 않는다. 직접 키우고 만든 제품만 판매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좋은 원료로 오랜 발효의 시간을 지키는 것이 제품의 본질임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