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식 곱창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고향에 온 딸
무안에는 도리포 앞바다만큼이나 널찍한 카페가 있다. 이름은 ‘담미소’. 바다를 향해 통창이 나 있어 언뜻 봐도 ‘뷰 맛집’으로 보이는데, 이 카페에는 ‘뷰’를 이기는 별미가 있다. 그건 바로 김이다.
“잇바디돌김이라고 곱창김의 한 종류예요. 가격이 비싼 데다 품종이 예민해서 생산이 쉽지 않죠. 그런데 맛보시면 모두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요. 저는 이 맛을 알리고 싶었어요.”
‘김공장 카페’ 담미소를 운영하는 조은경 씨. 그녀가 고향에 내려온 이유를 설명한다. 은경 씨의 아버지는 도리포의 토박이 어부다. 평생을 어부로 살았고, 1977년 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으로 김 양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친환경적 방식인 ‘지주식’으로 김을 생산했지만, 마땅한 판로가 없었다. 경매장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은경 씨는 마음이 아팠다.

도리포의 잇바디돌김을 가공한 담미소 제품
“지주식은 김발을 지주에 매다는 방식으로, 밀물일 때 물에 잠기고, 썰물일 때 자연스럽게 햇볕과 해풍에 노출돼요. 이 모든 환경을 견뎌 김의 영양이 풍부해져요. 게다가 잇바디돌김은 특유의 식감과 풍미가 매력적이죠. 그런데 곱창김은 김가루가 많이 날려서 구워 먹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거든요. ‘구운 곱창김’에서 사업의 가능성을 봤고,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가공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 전에 은경 씨는 식품공학과 박사 과정 수료 이력을 살려 김 수확량, 가공 기대 효과 등을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2018년 용감하게 첫 삽을 떴다. 그런 은경 씨를 마을 어르신들이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은경 씨에겐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다.

함께 일할 수 있어 기쁜 부녀의 모습

도리포 앞바다가 한눈에 담기는 담미소 카페
카페 함께 운영, 손님을 부르는 마케팅 전략
2019년 드디어 가공 공장 문을 연 은경 씨. 자연 그대로의 담백함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담미소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여기에 아이디어를 접목했다. 가공 공장 3분의 1을 카페로 활용한 것.
“김을 판매하려면 손님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카페를 같이 운영하기로 했죠. 공장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지만, 카페라면 다르니까요. 그리고 도리포 바다도 감상하면서 무안의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가길 바랐어요.”
은경 씨의 전략은 100% 적중했다. 카페 한편에는 김을 진열해두고, 메뉴를 주문하면 가공한 김을 시식용으로 내어주었다. 김을 맛본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게 첫해부터 ‘억’ 소리 나는 매출을 올렸다. 그해 말에는 바다 건너편 영광과 이어지는 칠산대교가 개통하면서 담미소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그런데 매출과 별개로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섬세한 제어로 잘 구워져 나온 곱창김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2년이라는 준비 과정이 있었어요.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죠. 그런데 공장의 동선을 잘못 짰던 거예요. 김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데 그걸 고려하지 못한 거죠. 인건비는 물론이고 힘도 2배로 들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공장을 다시 지어야겠다고 결정한 은경 씨에게 빛이 되어준 것은 무안군에서 추진한 ‘수산유통가공지원사업’이었다. 지역 특산물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을 인정받은 은경 씨는 사업비를 지원받으면서 약 500㎡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지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본래 공장 겸 카페였던 곳을 카페로만 활용하면서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주말 평균 수백여 명이 방문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이다.
또 도리포는 한국농어촌공사(KRC)의 어촌뉴딜사업 대상지로, 지난해 공사를 마쳤다. 선착장과 물양장 등을 개선하고, 어촌 구석구석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을 위한 기반 시설이 만들어져 마을에 활기가 넘쳐요. 그리고 도리포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 저 역시 어촌뉴딜사업 덕을 보고 있습니다.”

담미소 카페 외관
지역 물김 수매로 마을과 상생하다
다 같이 행복해지는 것. 은경 씨가 목표로 하는 삶으로, 자신의 철학을 담미소 운영에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을 보는 게 좋아요. 혼자만 잘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원초로 도리포의 물김을 선택해 가공하는 이유예요. 경매장에 들어서면 물김의 품질과 별개로 수확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죠.”
은경 씨 덕분에 도리포 물김 가격은 안정화됐고, 값이 등락하는 경우도 많이 줄었다. 물론 담미소가 도리포의 모든 김을 수매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의 1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니 혼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다. 또 다른 이점은 가격에 상관없이 품질 좋은 물김을 선별해 수매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민들도 양식에 더욱 신경 쓰게 된다는 것. 덕분에 도리포 물김의 질도 덩달아 높아졌다.
“좋은 물김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고, 소비자들에게도 한결같은 맛을 전할 수 있죠. 소비자들이 계속 담미소 제품을 선택해야 저도 도리포 물김을 수매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선순환을 통해 상생하는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은경 씨. 그녀는 담미소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은경 씨가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김을 구울 때다. 뜨는 물김의 무게는 똑같더라도 두께나 모양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세심히 속도와 온도를 맞춰 굽는다. 이 또한 소비자에게 ‘행복의 맛’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나 담백한 진심으로, 담백한 김을 만드는 은경 씨. 아버지의 김이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운 담미소가 이제는 마을을 미소 짓게 한다.
조은경 씨의 가업 잇기 tip
- 1.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한 제품 생산
- 은경 씨가 ‘구운 곱창김’을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한 것은 맛있는 김을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조미김,
자른김, 재래김 등 다양한 제품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혔다.
- 2. 카페 운영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판로 확대
- 김 가공 공장을 세운 은경 씨는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카페도 함께 열었다. 담미소에서 생산한 김을 카페 손님들에게
시식용으로 나눠주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
- 3. 어민들과 상생하는 안정적 수요처
- 지역 물김을 수매하는 은경 씨는 그중에서도 가격과 상관없이
품질 좋은 물김을 선택한다. 좋은 원초에서 우수한 제품이 나오기 때문.
그래서 소비자들은 한결같이 담미소를 찾고, 이는 지역과의 상생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