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가업 열전

부모는 포도 재배, 아들은 와인 제조 60년 전통의 가족 와이너리

충북 영동에는 과감한 도전으로 억대 매출을 올리는 이가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포도 농장을 와이너리로 재탄생시킨 김덕현 씨다.
포도밭 사나이는 어떻게 와인메이커가 됐을까.
글 임산하 사진 김덕창
고향으로 돌아와 발견한 영동 포도의 가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포도밭을 지나 마을에 진입하면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2층 높이로,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김덕현 씨와 그의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는 와이너리다. 이름은 ‘컨츄리와이너리’. 농촌의 정을 느끼도록 정감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건물을 지은 건 2022년. 덕현 씨가 직접 설계에 참여했는데, 건물을 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작은 2009년, 덕현 씨가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때로 돌아간다. “그때 제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죠. 그 무렵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돕기 시작하면서 영동 포도의 가치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와인메이커라는 직업을 떠올렸지요.”
컨츄리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
그의 도전에는 새로운 직업을 찾고 싶다는 열망도 한몫했다. 하지만 덕현 씨의 열망이 1차 산업이 아닌, 6차 산업을 향하는 것에 부모님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포도 농장의 역사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할아버지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1972년 부모님이 가업을 이으셨죠. 물론 그때도 포도주를 빚기는 했지만, 항아리에 담그는 가양주 형태였어요. 소량으로 빚은 데다 주력은 포도 재배였고요. 그런데 아들이 와서 와인 생산에 힘을 쏟아부었고, 게다가 책에서 배운 이론으로 접근하니 부모님과 이런저런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덕현 씨는 와인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다. 40여 년간 포도 농사에 매진한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 망설임 없이 나아간 덕현 씨는 이듬해 바로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했다. 개인 농가로는 처음이었다.
포도 농장에서 밝게 웃고 있는 김덕현 씨(오른쪽)와 어머니
건강한 내추럴 와인 생산에 주력
2010년부터 와인 생산을 시작한 덕현 씨에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대량 주문을 받았고, 그는 행복한 꿈에 부풀었다.
“2,000만 원어치 주문을 받았는데, 당시 모든 제품을 끌어모아 1,700만 원어치를 납품했어요. 그런데 결제일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인 거예요.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찾아가보니 회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더라고요.”
그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큰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부모님은 낙담한 아들에게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수업료를 치르는 날이 오는데, 운 좋게 이른 나이에 싸게 치렀다며 다독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기업에서 컨츄리와이너리를 찾았다. 알고 보니 당시 사기 친 회사가 와인을 빠르게 유통시켰고, 그 와인을 대기업의 회장이 마신 것. 진가를 알아본 회장은 와인을 대량 구매했다. 덕현 씨가 와인 한 병 한 병에 정성을 쏟아부었기에 행운이 찾아왔고,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덕현 씨는 여전히 자신만의 와인 양조 철학을 고집한다. 원재료로 우수한 품질의 포도를 사용하고, 제조장의 위생 관리를 철저히 지키며, 병입 전에는 파스퇴르제이션이라 불리는 저온살균 공정을 거친다. 저온살균법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기농 와인 생산지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파스퇴르제이션에선 시간과 인력, 그리고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과일의 풍미를 최대한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컨츄리와이너리의 와인을 소개하는 김덕현 씨
산머루 농사에 열중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숙성실에서 확인하는 와인 샘플
이 방법을 고수하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 산화방지제, 보존료, 합성첨가물을 절대 넣지 않기 때문. 이는 부모님 때부터 내려온 가문의 양조 철학이기도 하다.
그가 부모님의 소신을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덕현 씨는 이후에도 영동의 유원대학교에서 양조학을 배웠으며, 해외 와이너리를 다니며 제조 환경을 직접 확인하고, 다양한 노하우를 익히는 등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와이너리는 특히 미국 나파밸리, 호주 헌터밸리에서 영감받아 원료 처리부터 제품 포장과 출고 동선, 작업자와 방문객 동선 등을 모두 고민해 완성한 것이다. 본래 6평 정도 되는 작은 건물에서 시작한 와이너리가 150평이 됐으니,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다.
지하 와인 저장고
컨츄리와이너리 외관
지역 농가와 상생하며 도전을 이어가다
컨츄리와이너리에서는 단 네 가지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캠벨 얼리 품종으로 만드는 ‘컨츄리 캠벨 스위트’와 ‘컨츄리 캠벨 드라이’, 산머루 품종으로 만드는 ‘컨츄리 산머루 스위트’와 ‘컨츄리 산머루 드라이’가 그것. 이 중 컨츄리 캠벨 스위트 와인은 2014년 국가 지정 술품질인증을 획득한 효자 상품이다. 포도를 원료로 한 과일주로는 최초였다. 지금껏 덕현 씨가 네 가지 와인만 생산해온 까닭은 그의 이유 있는 고집 때문이다. “식품 산업이야말로 가장 안전해야 합니다. 또한 와인은 깨끗하고 결함이 없어야 하죠. 신제품 개발보다는 지금 생산하는 와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로제 와인과 화이트 와인 개발에 도전 중이다. 탄탄하게 기반을 닦았고, 오랜 고객에게도 새로운 맛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로제 와인은 캠벨 얼리와 샤인머스캣으로, 화이트 와인은 샤인머스캣과 청수를 활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컨츄리와이너리는 약 4,300m2(약 1,300평)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농사를 짓던 때에 비하면 약 30%로 규모를 줄인 것이다. 그런데 컨츄리와이너리는 약 4만5,000리터를 한정 생산하고 있어 어마어마한 양의 포도를 필요로 한다. 직접 재배하는 포도는 15톤에 불과한데, 나머지 양은 어디에서 채울까. 바로 마을이다. 올해도 마을에서 약 40톤을 수매했다.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서다. “초반에는 계약 재배를 했어요. 그런데 포도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해마다 가격 등락 폭이 큰 작목이에요. 포도 가격이 높아져도 계약한 금액을 지급하려니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계약 재배는 농가 소득을 올리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부 일반 수매로 전환하고, 지역 농협에서 수매하는 가격보다 약 5~15%까지 단가를 올려 구매했어요. 그러다 보니 농민분들도 제게 더 좋은 포도를 선별해서 주시더라고요. 지역 농가 소득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어 기쁩니다.” 이제는 한국 와인의 세계화를 꿈꾼다는 덕현 씨. 그의 꿈에는 은은한 풍미가 있다. 와인을 향해 삶을 숙성시킨 15년의 시간이 만든 풍미다.
김덕현 씨의 가업 잇기 TIP
1. 농가의 변화를 위한 도전,
끊임없는 연구
부모님의 포도 농장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덕현 씨는 와인메이커에 도전했다. 주류 제조 면허 취득은 물론 대학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해외 와이너리 투어 등으로 배움을 이어가며 매년 성장하는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2. 대대손손 내려오는 노하우와
자신만의 양조 철학 접목
가양주 형태로 포도주를 빚은 1대 할아버지와 2대 부모님의 노하우를 잇되, 자신만의 양조 철학을 담은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 제품의 경쟁력을 높였다.
3. 지역 농가 소득에 기여,
고품질 원재료 수매
덕현 씨는 직접 포도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마을에서 수매한다. 포도 단가를 높이 쳐주기에 이웃 농가들도 고품질 포도를 공급한다. 이로써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컨츄리와이너리
주소 충북 영동군 영동읍 조현길 26
문의 043-742-2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