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고버섯은 소꿉친구와도 같았다.
그래서 표고버섯 농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성껏 키운 버섯으로 고객들이 청춘을 되찾길 바라며 ‘청춘표고 용훈농장’이라 이름 지은 남매의 이야기.
부모님을 보며 자연스럽게 키워온 농부의 꿈
표고버섯 농장에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숲 내음이 난다. 은근하게 풍기는 참나무 향이랄까. 배양실에서 자라는 표고버섯의 본래 향인가 싶었는데 비밀은 배지에 있었다.
“참나무로 직접 톱밥을 만들어 배지를 제작한 뒤 종균을 접종해서 표고버섯을 생산하고 있어요. 보통은 톱밥을 구매해 사용하는데, 저희는 직접 참나무를 빻아서 만들죠. 부모님의 까다로운 농사 철학 때문이에요.”
까다로운 농부. 아들 장용훈 씨가 설명하는 부모님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용훈 씨에게서 왠지 자부심이 느껴진다. 까다로움으로 정직하게 농사를 지어온 부모님이 그에게는 남다른 자랑이다.
“부모님은 1990년부터 표고버섯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어요. 본래 벌목 일을 하셔서 나무와 친했던 영향도 있을 거예요. 당시는 참나무에 균을 심어 버섯을 생산하는 원목 재배 방식을 활용하셨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농사를 지으셨어요. 한마디로 진취적이었죠. 재배에 좋다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실 정도였어요. 직접 보고 응용하면서 재배 시설을 늘려가셨어요. 제가 어릴 때는 미국으로 수출도 하셨죠.”

청춘표고 용훈농장의 판매 상품
열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표고버섯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농사에 애정을 쏟는 부모님을 보며 용훈 씨는 자연스럽게 농부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멋모르고 선택했다며 농담처럼 말하지만, ‘농부’라는 선택지는 그에게 꼭 맞춤이었다.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어요. 그리고 사람도 적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죠. 물론 막상 해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렇게 2010년부터 가업에 뛰어들어 어느덧 16년 차 농부가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용훈 씨는 변함없는 농부다. 그사이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누나 장은비 씨도 같이하게 됐다는 것. 부모님의 어제를 이어가는 남매는 이제 청춘표고 용훈농장(이하 용훈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함께 쓴다.
남매의 남다른 분업화로 효율성 높인 농장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흙 위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누나 장은비 씨는 본래 한국화를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석사과정까지 마쳤지만, 점점 몸이 지쳐갔다. 쉼이 필요해 들어온 농장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고,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하던 일이라 몸은 자연스럽게 농장 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문득 이 또한 ‘예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용훈 씨와 가업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남매는 분업화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농장을 운영한다. 은비 씨는 디자인·유통·홍보에, 용훈 씨는 생산에 주력한다. 용인의 로컬 푸드 직매장 관리와 과천 경마공원의 농축수산물 직거래 장터 ‘바로마켓’에 참여해 홍보와 판매를 이어가는 건 대체로 은비 씨 몫이다. 생각보다 손님들과 원활히 소통하는 스스로를 보며 놀랄 때가 많다고. 특히 바로마켓은 단골 고객을 넘어 충성 고객을 만나는 자리다. 마켓에 참여하는 날마다 그들이 메시지를 보내 제품을 남겨달라고 주문할 정도.

하우스 온도 조절을 위해 참나무를 때는 부모님

표고버섯을 수확하고 있는 용훈 씨
“손님들이 저희 버섯을 먹은 후로는 다른 버섯을 못 먹겠다고 하실 때 정말 뿌듯하죠. 며칠 전에는 한 할머님이 동향 사람이 이렇게 좋은 농산물을 키워주어서 고맙다고 하셔서 기뻤어요.”
소비자들의 생생한 후기는 남매가 농장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늘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단 하나, 언제나 정직하게 재배하는 것. 어깨너머로 배운 부모님의 철학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무농약’을 지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농사짓는 걸 가장 중시해요. 저희의 자긍심이죠.”

배지를 만들기 위해 기계로 섞는 참나무 톱밥

발효균이 보일 정도로 잘 발효된 톱밥
소비자 맞춤형 생산과 판매에 집중
버섯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남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중이다. 본래 부모님이 관리할 때는 42동이었던 하우스를 파격적으로 줄여 이제는 10동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규모를 줄이고도 억 소리 나는 판매량을 유지하는 까닭은 ‘배지’에 있다.
부모님은 본래 원목을 이용해 표고를 길렀지만, 용훈 씨가 배지로 재배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배지는 빠른 사이클로 충분한 생산량을 유지한다. 원목 재배는 확실한 농한기와 농번기가 있어 조금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매출에서는 배지를 넘어설 수 없다.
이는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용훈 씨가 한국농수산대학교 특용작물학과에 진학해 산림버섯연구소에서 실습하며 배운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종자관리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며 버섯 공부에 매진한 용훈 씨에게 배지 재배는 도전이 아닌, 확실한 가능성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연구소로 오라고 직원들이 그를 붙잡을 정도였는데, 인정받는 전문가가 된 그의 의견을 부모님도 존중했다.

수확한 버섯을 포장하고 있는 은비 씨
지금 농장에서는 표고버섯뿐 아니라 목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느타리버섯도 재배하고 있다. 이렇게 네 가지로 제품을 늘린 건 소비자들의 요청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거래를 주로 하다 보니 손님들의 의견을 직접 듣게 되었고, 때마침 배지 재배가 자리를 잡은 터라 생산 품목을 늘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온도, 습도, 광 조절 등 환경을 갖추는 방식은 어느 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수확에 어려움은 없다. 이 또한 기본이 탄탄한 전문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용훈농장에서는 건표고버섯 외에 네 가지 제품을 패키지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 버섯이 담기는 박스는 모두 은비 씨가 전공을 살려 디자인한 것. ‘단순한 것이 최고’라는 은비 씨의 아이디어로 좀 더 고급스러운 포장이 탄생해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다.
오늘도 100% 참나무 톱밥으로 배지를 만드는 남매. 그러니 영양이 꽉 찬 건 당연한 일. 여기에 정성까지 다하니 버섯 이상의 버섯이 나온다. 한 입 먹으면 기분 좋은 향기가 밀려오고, 입안에서 살살 녹아 감칠맛이 번진다. 정직하게 맛있는 버섯은 용훈농장의 자랑이다. 오로지 노력으로만 만들 수 있는 맛이기 때문에.
남매의 가업 잇기 TIP
- 1. 지역 직거래 매장 활용한 판매
- 로컬 푸드 직매장, 바로마켓 등을 활용해 버섯을 판매하고 있는 남매.
이곳에서 듣는 소비자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수용해 농장을 원활히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표고버섯 외에 재배 버섯의 종류를 늘려
소비자 맞춤형 판매를 하고 있다.
- 2. 과감히 변화를 시도한 배지 재배
- 부모님의 뜻을 받들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원목이 아닌, 배지로
재배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100% 참나무 톱밥으로 배지를
만들어 영양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로써 변함없는 맛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3.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성 높이기
-
부모님은 본래 42동의 하우스를 운영했는데, 남매는 과감히 규모를
줄여 10동의 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배지 재배로 높은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더불어 성향에 맞는 분업화를 통해
보다 책임감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청춘표고 용훈농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백자로181번길 4
문의 010-4441-3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