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미래의 발견

주민이 만든 기적의 마을일본 농촌 재생의 대표 모델 유후인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 위치한 작은 산촌 마을 유후인(由布院).
인구는 약 1만1,000명에 불과하지만,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이 넘는다.
대형 리조트나 번화가 없이 전통 가옥과 조용한
골목길로 조성된 유후인은 어떻게 일본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자리 잡았을까?
글 이인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유후인
소멸 위기를 이겨낸 ‘마치즈쿠리’
‘일본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온천 여행지’라는 수식어는 유후인을 대표한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이 마을은 전통 료칸과 지역 상점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후다케(由布岳) 아래 펼쳐진 풍경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유후인에서 영감을 받아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한 일화도 유명하다.
유후인의 도약은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즉 주민 주도의 마을 만들기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1955년, 초대 촌장 이와오 히데카즈는 일본 정부의 유후인 댐 건설 계획을 주민들과 함께 저지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온천, 산업, 자연의 조화’를 슬로건으로 관(官)이 아닌 주민이 주체가 되는 마을 만들기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0년대 이후 유후인도 일본의 다른 농촌 마을처럼 인구 감소, 고령화, 청년층 유출이라는 위기를 겪었다. 마을 외곽에는 빈집이 늘고, 지역 산업은 침체되었으며, 공동체의 활력은 점점 사라졌다. 1975년 대지진은 결정타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대로는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공유하며 자발적으로 재생의 길을 모색했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유후인의 테마파크, 플로럴 빌리지
유후인역의 족욕탕
자연과 전통의 보존, 그리고 주민 주도의 개발
유후인의 마을 만들기 전략은 ‘자연과의 조화’와 ‘주민 주도’에 중점을 두었다. 고층 건물 대신 전통 양식의 저층 건물과 소규모 상점이 어우러지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온천 여관처럼 느껴지도록 경관을 유지했다. 대형 리조트나 화려한 네온사인 없이도 전통 료칸, 예술 갤러리, 작은 카페들이 일본식 인사동 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빈집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낡은 가정집을 카페, 공방,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지역 청년과 외부 귀촌인을 유치했고, 이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을 내 약 30%의 빈집이 새롭게 재탄생하며, 유휴 공간은 지역 경제의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문화 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다. 1976년 시작된 ‘유후인 영화제’를 시작으로, 음악제와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주민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유후인에는 30개 이상의 미술관이 있으며, 예술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일본의 전통 식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유후인
주민의 삶과 어우러지는 생활형 관광지의 모습
또 유후인의 관광은 단순히 외부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생활형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지역 특산물과 수공예품, 소포장 상품을 중심으로 한 상점 운영은 소상공인의 경제 자립을 도왔고, 지역 농축산물 우선 구매를 통해 1차산업과 3차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덕분에 현재 유후인과 인근 마을을 포함한 유후시 전체의 1인당 연간 소득은 약 300만 엔(3,000만 원) 수준으로, 일본의 주요 지방 도시보다도 높은 편이다. 연간 관광 수익은 약 140억 엔에 달하며, 대부분이 지역에 환원되고 있다.
유후인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자연과 공존하려는 지속적인 실천의 결과다. 화려함보다는 조화와 배려,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선택한 유후인의 이야기는 우리 농촌의 마을만들기사업에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