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에게 농촌은 놀이터였다.
자연스레 자신을 키워준 농촌에 보답하는 길은 이곳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3대째 농장을 이어가며, 손님들을 초대하는 카페의 문을 연 황인재 씨의 이야기.
할아버지의 구슬땀이 새겨진 농장에 세운 팜 카페
새소리가 나긋하게 귀를 간질이는 한적한 마을. 이곳에 마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멋스러운 카페가 자리한다. 이름은 ‘본앤하이리’. ‘태어나다’는 의미의 영어 ‘Born(본)’과 전주 완주군 용진읍의 마을 ‘하이리(下二里)’를 더해 만든 상호로, ‘하이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품은 황인재 씨가 어머니와 함께 세운 곳으로, 농장도 운영하는 팜 카페다. 레몬을 키우는 시설하우스, 단호박과 밀을 키우는 노지 그리고 카페까지 약 5,000m2(약 1,500평) 부지를 관리한다. 이곳은 인재 씨의 할아버지가 일평생 땀 흘려 일궈온 땅이다.
“저희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3대 농가예요. 할아버지는 한평생 농사를 지으셨고,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도우면서 6차산업으로 판로를 확장하게 됐어요.”
황씨네 며느리인 어머니는 열심히 농업에 매진했고, 단호박을 함께 재배해 부가가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원물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단호박을 가공해 식혜, 떡 등을 만들며 수입원을 늘린 것. 1차산업에 열정을 다한 할아버지와 6차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어머니는 인재 씨 인생의 참스승이었다.

본앤하이리 카페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게다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인재 씨의 삶에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었다. 배추를 뽑던 고사리손이 땅의 기억을 움켜쥔 채 어느새 장성해 농부가 될 준비를 마친 것. 누군가는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농촌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확신했다.
“농업을 더 배우고 싶어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했고, 실습을 하며 농업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사이 어머니는 시설하우스 전체를 레몬 농장으로 키워냈다. 육지에서는 레몬을 찾아보기 힘든 만큼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 판단한 어머니의 예상은 적중했다. 가공에도 일가견이 있던 어머니는 지역 매장에 납품하는 것보다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공간의 필요성을 고민했다. 그때, 모자는 서로 조력자가 되어 ‘팜 카페’라는 목표를 이뤘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드는 카페 메뉴
카페의 문을 연 것은 2021년. 애석하게도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다. 다른 카페에서 직접 일을 하고, 여기저기 찾아가 컨설팅도 받으며 준비했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였다.
“팜 카페인데 카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죠. 그렇지만 이미 건물을 짓고 모든 걸 마련해 두었으니 물러설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가공한 단호박 식혜 출하장으로 쓰거나, 도시락 주문도 받으며 악착같이 버텼어요. 동시에 레몬과 밀을 활용한 카페 메뉴를 개발하고, 체험 농장도 구상했죠.”
다행히 코로나19가 끝나고,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을 성실하게 견딘 인재 씨는 보다 단단해진 자세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본앤하이리에서 운영하는 레몬 농장

레몬나무를 가꾸고 있는 인재 씨
“손님들이 메뉴를 고르실 때면, 다 맛있어 보여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그럴 때마다 정말 뿌듯하죠. 대표 메뉴는 단연 레몬으로 만든 레몬에이드이고, 레몬과 밀을 활용한 마들렌, 스콘 등 다양한 종류의 빵도 판매하고 있어요. 우리 농산물로 만든 건강한 제품이기 때문에 누구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요.”
커피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인재 씨가, 빵은 지역의 청년 제빵사들이 만드는데, 이 또한 농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재 씨의 아이디어다. 뭐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리고 농촌이 유지되어야 본앤하이리의 가치도 지속된다는 것을 인재 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특별한 메뉴뿐 아니라 멋스러운 공간도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중 하나다. 1층에서는 빵 외에도 레몬청, 단호박 식혜 등의 가공식품과 레몬 생과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고, 2층에서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부담 없이 농촌에서 쉬어갈 수 있으니 이만한 쉼터가 없다.

(좌)레몬나무 꽃 향기를 맡는 어머니
(우)수확 중인 레몬
치유와 체험이 가득한 농장
본앤하이리 카페 입구로 들어서는 손님마다 공통점이 보인다. 처음에는 작은 환호를 터뜨리더니, 다음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 매력적인 카페는 물론 농장도 함께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레몬 농장. 상큼한 레몬 향으로 가득한 농장에는 발을 들이기만 해도 절로 비타민 C가 충전되는 것 같아 마음에도 생기가 돈다. 게다가 레몬 이파리를 만지며 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다 보면 치유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연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직접 느끼는 시간은, 치열했던 어제의 일상을 잊게 해 단숨에 우리 몸을 가붓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힘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회복의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치유 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특별한 것은 1년 단위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죠. 레몬나무를 직접 심고, 나만의 반려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열매를 따보면서 성장의 과정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레 마음을 치유하게 되죠.”

손님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본앤하이리 카페

본앤하이리 카페 외관
이 외에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레몬나무 심기, 레몬 수확하기 등의 상시 체험 외에 5월에는 ‘밀밭데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밀을 활용한 촉감 놀이 시간을 선사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작물을 친환경 농법으로 기르는 것은 물론 작업 장비도 안전히 관리하고 있다. 이런 섬세함이 본앤하이리 인기의 원천이다. 주말에는 약 300팀이 방문할 정도인데, 이 모든 걸 입소문으로 성취했다. 대단한 홍보를 하기보다는 그저 손님들이 편안히 쉬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해 온 그 진심이 닿은 것이다.
인재 씨의 목표는 앞으로도 본앤하이리를 꿋꿋이 성장시키는 것이다. 꼭 도시로 이주하지 않아도, 농촌도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하나의 해결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아직 20대 후반, 풋풋한 꿈을 꾸는 인재 씨는 이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하이리’에서 태어난 자부심이 오늘도 인재 씨를 일으킨다.

(좌)음료를 준비하고 있는 인재 씨
(우)레몬과 밀을 활용해 만든 음료와 빵
황인재 씨의 가업 잇기 TIP
- 1.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카페 메뉴
- 인재 씨의 어머니는 6차산업으로 발돋움한 농부다.
인재 씨 역시 어머니를 보며 그 자세를 배웠고, 직접 키운 농산물로
음료와 빵을 만들며 건강한 메뉴를 제공하는 카페를 운영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 2.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 운영
- 농장에서 재배하는 레몬과 밀 등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치유 농업
프로그램을 통해 체험객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전한다.
더불어 농산물의 가치도 함께 알리고 있다.
- 3. 지역 청년 고용으로 일자리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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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씨는 ‘하이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누군가는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3대째 농가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지역의
청년 제빵사를 고용하며 농촌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본앤하이리
주소 전북 완주군 용진읍 하이1길
문의 063-246-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