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신(新)전원일기

샐러드 채소 농부가 된
‘샐러드 덕후’ 이고은 씨

여기 샐러드에 진심인 청년 농부가 있다.
많은 이가 샐러드를 더욱 건강하게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농부가 된 이고은 씨.
글 임산하 사진 김규남
삶의 방향키를 쥔 강단 있는 도전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계룡산 자락 아래 터를 잡은 농장이 있다. 약 1,650m2(약 500평) 규모, 두 동의 시설하우스를 관리하는 이곳 농장의 이름은 ‘샐머’다. 이 독특한 이름에는 농부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샐러드(salad) 파머(farmer)’의 준말로, 샐러드용 채소를 키우는 농부라는 뜻이다. 대표는 1997년생 이고은 씨. 아직 20대 후반인 고은 씨가 샐머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저는 샐러드를 무척 좋아해요. 대학생 때 샐러드 가게 창업을 준비했을 정도죠. 3년 정도 발품을 팔며 다녔는데, 제 마음에 쏙 뜨는 채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1차 생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농과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농산물이 친숙하기도 했고요.”
가장 단순한 다짐 속에 가장 깊은 진심이 담기기 마련. 고은 씨는 농부가 되겠노라 결심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동기들 대부분 농업직 공무원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아버지 역시 딸이 농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강단 있게 삶의 방향키를 쥔 것이다.
매주 수확한 신선한 채소를 판매하는 샐머
“진로를 결정한 뒤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왠지 재밌기도 했고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매주 농촌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논에 가서 까불기도 하고 구경도 했던 경험 덕이었는지, 알게 모르게 농업 환경에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고은 씨가 터를 잡은 곳은 충남 공주. 고향은 경기도 용인이고 서울에서 자랐다는 고은 씨가 이곳에 정착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공주에 엽채류를 재배하는 분에게 직접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다가 정착하게 되었어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쌈 채소 전문가였고, 직접 연락을 드려서 한번 찾아뵈어도 되는지 여쭈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죠. 정말 잊지 못할 은인이고, 여전히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A부터 Z까지, 농장 운영부터 작물 재배까지 꼼꼼히 배운 고은 씨. 그 덕에 빠르게 정착해, 계룡산 정기 아래 건강한 채소를 키우는 ‘샐러드 파머’가 될 수 있었다.
로메인을 수확하고 있는 고은 씨
작물이 잘 자라는지 늘 세심히 관리한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더 성장하다
농장의 문을 연 것은 2022년 6월. 어느덧 4년 차 농부가 된 고은 씨는 목표 매출의 90%를 이루는 농부로 성장했다. 지나고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들을 꼼꼼히 채우며 배워나갔기에 이룬 성과다. 물론 그사이 실패도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첫 단추를 뀄을 때다.
“여름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채소가 더위를 이기지 못해 축 처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위에 물을 뿌려줬더니 수경재배 배드가 달궈져서 채소가 뜨거운 열을 더 흡수하면서 모두 말라 죽고 말았죠. 시설하우스 한 동 전체가 그렇게 되었어요.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요. 아는 만큼 잘 키울 수 있고, 또 그건 저절로 얻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에요.”
당시는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날의 실패는 고은 씨가 앞으로 농사를 짓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경험은 귀가 아닌 몸으로 쌓는 것이라는 걸 절감한 뒤로 고은 씨는 더 열심히 농업에 매진했다.
시설하우스 두 동을 관리하는 샐머 농장
시설하우스 내부 온도를 확인하는 고은 씨
“이제는 알아요. 농사가 날씨의 영향권 밖에 있을 순 없지만, 그걸 떠나서 얼마만큼 잘 돌보느냐에 따라 작물이 자라는 속도와 품질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을요.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깨달았죠.”
그사이 농업에 보탬이 되는 국가의 여러 보조 사업도 지원받았다. 초보 귀농인을 위한 멘티·멘토 현장실습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귀농창업활성화지원사업을 통해 육묘장, LED등을 갖추었다. 일찍이 청년후계농육성사업 등 여러 지원사업을 알아봤던 노하우가 여기서 발휘되었다.
“다양한 지원사업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계속 열심히 찾아봐야 해요.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듣는 정보도 많기 때문에 항상 발 빠르게 움직이려 합니다.”
고은 씨의 무기는 성실. 다양한 지원사업을 받는 비법이라면 단연 성실함이다.
잎이 질겨지지 않도록 양액 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육묘장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류의 유럽 상추
아이를 돌보듯 정성껏 키우는 유럽 상추
샐머 농장에는 로메인, 버터헤드, 롤로로사, 멀티레드 등 다양한 유럽 상추가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상추보다 잎이 두껍고 보관 기관이 길어 샐러드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어 이를 선택하게 됐다고. 작물마다 자라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한 작기가 돌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두 달 정도. 사이사이 시기를 맞춰 매주 수확하는 작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도 고은 씨의 요령이다. 하나하나의 작물마다 두 달 정도를 키우는 것은 속이 꽉 차도록 하기 위함이다.
“작물이 단단하게 차야 겉과 속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겉잎은 식감을 좋게 하고, 속잎은 맛을 좋게 하죠. 달달한 맛이든 씁쓸한 맛이든 본연의 맛이 풍부하게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포장 박스에 찍는 샐머 스탬프
수확한 작물을 포장하고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니 자연히 단골도 늘었고, 샐러드 정기구독을 신청하는 고객도 많아졌다. 주로 온라인 거래를 활용하고 있는데, ‘신선하고 맛있다’는 후기가 가득하다. 고은 씨를 절로 춤추게 하는 이런 후기들 덕에 오늘도 발걸음은 가볍고, 어깨는 무겁게 농장의 작물을 돌본다. 샐러드용 채소를 키우다 보니 잎이 질겨지지 않도록 양액 농도는 물론 온도 조절까지 시설 환경을 세심하게 신경 쓴다. 마치 아이를 돌보듯 하는 고은 씨는 실제로 재배하는 채소를 ‘애들’이라고 부른다.
“아이를 키우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저희 농장의 채소를 구매하는 모든 분이 안심하고 드실 수 있도록 건강하게 기르는 중입니다. 그 덕에 3주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도 저희 농장의 장점이에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고은 씨의 다음 목표는 6차산업 도전이다. 내년에는 드레싱을 포함한 샐러드를 완제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 그때가 되면 고은 씨의 삶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귀농 교육장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 일과 사랑을 모두 잡은 고은 씨는 귀농 후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어나가고 있다. 속이 꽉 차 단단한 건 비단 고은 씨가 키우는 작물만이 아니다. 그건 고은 씨 자신이기도 하다.
이고은 씨의 귀농·귀촌 TIP
1. 작물 선택은 신중하게
귀농을 꿈꾼다면 작물 선택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능하다면 6차산업까지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고은 씨는 본래 샐러드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샐러드용 채소 농부가 되었다. 비록 실패가 있더라도, 오래도록 즐겁게 농사지을 수 있는 작물 선택은 필수다.
2. 정부 지원사업 활용하기
고은 씨는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농장의 틀을 갖추고, 또 농업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맞는 사업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행정복지센터 등에 자주 방문하는 것도 고은 씨만의 방법이다.
3. 작기 관리로 지속적인 수입원 만들기
매주 수확해 신선한 채소를 판매할 수 있도록, 고은 씨는 작기를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시설하우스 두 동의 한 작기는 대략 두 달. 이렇게 키워 속이 꽉 차고 맛 좋은 유럽 상추를 재배하고 있다. 이는 꾸준한 매출로도 이어진다.
샐머
주소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276-1
문의 010-8829-6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