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추억이란 대개 과즙이 가득한 과일의 향기, 복숭아 냄새를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과즙으로 손은 끈적이는데도 입은 즐거운 여름의 맛. 무더위가 절정에 치달을수록 달큼한 향기가 진동하는 화순고인돌전통시장에서 한여름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멀리서부터 옥수수 삶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급히 발걸음을 시장 안으로 옮기니 화순군에서 생산된 찰옥수수가 맛있게 삶아져 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망설이지 않고 한 봉지 사서 일단 요기부터 해결하는 것이 바로 오일장의 재미가 아니던가. 이른 아침임에도 장터는 여기저기 안부를 묻는 소리와 물건값을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값싸고 품질 좋은 싱싱한 농산물이 많아 장날이면 늘 북새통을 이루는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은 발길 옮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장터는 광주, 나주, 장흥, 보성이 맞닿아 있어 다양한 농수산물로 넘쳐난다. 여기에 신안의 젓갈과 천일염, 무안의 양파, 고흥의 마늘, 벌교의 꼬막 등 전남지역의 내로라하는 농수산물이 집결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싱싱한 해산물과 과일, 할머니들이 가져온 고추, 오디, 상추 등 각양각색 농산물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역시 호남제일장으로 손색이 없다.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난장을 펼친 할머니들이다. 큰 시장 내부에는 할머니들 100여 명이 줄줄이 노상을 펼쳐두고 고추, 옥수수, 대파, 마늘 등 직접 심어서 키운 자식 같은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말만 잘하면 1만 원짜리도 5천 원에 살 수 있을 만큼 인심도 넘쳐난다.
“오늘은 사람이 적은 거여. 어쩔 땐 손님보다 할머니들이 더 많기도 한당께.”
40여 년째 화순오일장에서 직접 기른 농산물을 판다는 김연옥 할머니가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장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장 구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두 손 가득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전라남도 화순은 고대 원시사회 유적인 고인돌공원 등 고대의 유적을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자, 바로 지척에 대도시인 광주를 끼고 있어 광주의 위성도시로도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은 매달 끝자리 3일, 8일에는 오일장이 서는 전통시장이자 평소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지금은 현대시설로 바뀌며 과거 옛 전통시장 이미지는 많이 희석됐지만 여전히 장터는 흘러간 오랜 세월만큼이나 숭고한 지역민들의 애환과 숨결을 그대로 품고 있다.
2008년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이란 이름으로 바뀌기 전, 1964년 화순전통시장으로 개장한 이곳은 길바닥 장터 마당이 펼쳐졌던 시기까지 더하면 조선시대 말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깊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던 지강 양한묵 선생께서 1919년 3·1운동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집결시키려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은 상인들의 정감 있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반찬 삼아 화순만이 간직한 역사와 문화를 한 번에 느끼고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교육 현장이다.
판소리 단가 ‘호남가’에는 “능주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금산인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붉은 꽃은 바로 복숭아꽃을 말하는데 오래전부터 화순이 복숭아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자료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봄이 되면 화순 곳곳에 복사꽃 융단이 깔린다. 여름철로 접어들어 복숭아 수확철이 되면 화순 관내 도로변에는 복숭아 가판대가 즐비하게 늘어선다.
복숭아가 알맞게 익은 계절인 만큼 장터도 온통 복숭아 향기로 가득하다. 전남 최대 복숭아 산지답게 여기저기서 핑크빛 물결이 요동친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과즙이 터져 나오는 복숭아는 여름의 대표 과일이자 여름의 맛이다. 특히 맛과 향도 뛰어난 화순 복숭아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해 전국에서도 인기가 많다. 복숭아 향을 맡고 있자니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또 여름이 지나갈 터이다.
“집에 있으믄 뭐하것소. 건강을 생각해서 나오제라. 손주 용돈도 줘야허고…. 그라도 이렇게 벌어 아들 시명이나 대학에 보냈고마.”
한낮의 무더위에도 이 마을, 저 마을의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장터에는 들고 나온 갖가지 보따리들의 속내가 풀어지고 색색의 파라솔이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할머니들의 얼굴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주름진 얼굴 위로 오랜 세월 가족만 생각하며 견딘 시간의 무게가 걸린다. 고단한 삶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복숭아 향처럼 달콤한 꿈을 품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세월을 엿보며 오일장을 떠났다. 뜨겁게 피어나는 여름의 절정이다.
Ⓒ화순군
고인돌유적지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도곡면 효산리에서 춘양면 대신리 일대로 넘어가는 3km 거리에 596기가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 유적지 가운데 유일하게 채석장을 갖추고 있으며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운주사
운주사
운주사는 천왕문이 없고, 사천왕상도 없고, 울타리도 문도 없는 독특한 사찰이다. 오직 수많은 불상과 탑이 가득하다. 한때는 천개의 불상과 탑이 있어 천불천탑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석불 93구와 석탑 21기가 남아 투박하고 독특한 미감을 선보인다.
글 이봄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