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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비우고

그들이 사는 세상

모든 소중한 것은 길 위에

여행작가 태원준

오래도록 길 위에 머문 사람에게서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여행에 대해 말하는 순간에도 여행을 떠나 있는 ‘뼛속 깊이 여행자’ 태원준 작가를 만났다.

어머니와의 여행으로 바뀐 삶의 지도

무릇 여행자의 표정은 이토록 매혹적인가. 대한민국 162곳을 여행하겠다는 목표로 현재 121곳이 넘은 도시를 여행 중인 태원준 작가의 표정이 한껏 자유롭다. 그동안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새겨지기라도 한 듯 그의 얼굴이 한여름 태양 아래 빛난다.

그가 여행작가로 이름을 알린 것은 10년 전 어머니와 함께 525일간 70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하면서부터다. 60대 엄마와 30대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기는 세 권의 책으로 나왔고,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조금은 특별한 동행으로 삶이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짧은 시간을 사이에 두고 소중한 사람 둘, 남편과 어머니를 보낸 엄마의 슬픔을 여행의 힘으로 치유해 주고 싶었어요. 마침 어머니의 예순 번째 생일도 겹쳐 환갑 기념으로 세계여행을 계획했죠.”

단, 어머니와의 세계여행에는 옵션이 붙었다. 서른 살 아들인 자신과 함께 걷고, 버스 타고, 도미토리에서 생활하는 배낭여행이 그것이다. 고생길처럼 보이는 여행을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잡아챈다. “재밌겠다. 가자.” 모자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달이나 될까 싶었던 여행은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궁금해지는 시간”을 만난 어머니의 의지로 계속됐다. 슬픔에 빠져있던 엄마가 길 위에서 다시 웃기 시작했다.

“칭다오에서 시작해 런던으로 끝나는 장장 10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남미 여행을 8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어머니와 지구 한 바퀴를 돈 셈이죠. 여행을 마치고 깨달았어요. 제 여행의 DNA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걸요.”

삶이 여행이 되는 순간, 지금

매순간 여행이 아닌 적이 없던 태원준 작가는 2020년 유럽을 여행하던 중 코로나19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뒤로 3~4개월 동안 엄청난 슬럼프가 찾아온다. 한 번도 여행을 쉬어본 적이 없는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시련이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은 늘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듯 삶은 그에게 좌절할 시간을 그리 길게 주지 않았다.

“우연히 캠핑카를 구입해 국내여행을 시작했어요. 처음으로 간 곳은 충북 진천으로 2박 3일 동안 15군데 정도 여행지를 돌았죠. 그러다 문득 ‘우리나라가 총 162개 시군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여행지 베스트 10과 맛집 베스트 5를 꼽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쳤어요. 그렇게 전국 여행이 시작된 거죠.”

그는 국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하루 2만 보는 기본에 150km가 넘는 운전은 필수였다. 그렇게 일 년 반 가까이 국내의 대부분을 여행했고, 올가을이면 울릉도를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전국을 다녀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행작가를 국내에만 가둬두니 벌어진 일이라며 웃는다.

“실제로 삶이 여행이 되어버린 시간이에요. 도시 별로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남짓 머물렀죠. 현재까지 22개월간 3천여 곳을 기록했어요. 사진은 기본이고 영상과 타임랩스, 드론까지 동원해 기록으로 남겼어요. 제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아카이빙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제 외장하드는 거의 보물이 되어버렸죠.”

오늘도 길 위에서 시작되는 삶, 그리고 여행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 태원준 작가. 그는 푼돈이 모일 때마다 전국을, 목돈이 모일 때마다 세계를 누비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늘 그의 삶에 여행이 있었다. 그러다 어머니와의 세계여행으로 그의 삶의 여정도 달려졌다. 취미가 직업이 되어 여행을 이야기하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강연을 잡는 기준도 천상 여행자다. 가보지 않은 먼 지방일수록 우선순위가 된다. 독자를 만나러 가는 길 또한 그에겐 여행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사랑하는 만큼 순간순간에 성실하다. 여행의 순간과 장면을 꼼꼼히 기록하고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통해 경험을 나눈다.

“최근 예산보부상박물관에 갔는데 보부상 삶의 모토가 ‘길 위의 삶’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내 삶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가 있을 때면 ‘매일 떠나는 남자’라고 나를 소개해요. 서울에 집이 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길 위가 내 집이죠.” 여행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설렌다는 그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한다. 여행은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만나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는 과정이라고. “천천히 도시를 느끼고 사람을 만나며 배우는 것들이 많아요. 소중한 것은 모두 길 위에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에요. 그걸 찾기 위해 떠나는지도 모르죠. 그게 바로 여행이 주는 마법 같은 선물이 아닐까요.”

이선영 사진 유승현 여행 사진 제공 태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