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오르고, 강물에 발을 적셔본다. 잠시 숨을 고르거나 넋을 놓기도 한다. 순간의 행복을 기록한다. 주변에서 즐길 거리를 천천히 찾아가는 삶, 더할 나위 없다. 여기, 시골에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보낸다. 소박한 우리만의 시간이다. 이처럼 여행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가끔은 편리한 도시의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2020년부터 장기화된 팬데믹과 무관하지 않다. 오랜 시간 사회적 단절과 제약으로 몸은 물론 마음의 병도 생겨났기 때문. 도시의 경제적 타격과 고립감은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도시를 떠날 수 없는 현대인, 전원생활의 안식이 더욱 소중해지는 이유다.
러스틱 라이프는 ‘시골 특유의’ 뜻의 러스틱(Rustic)과 ‘생활’의 뜻인 라이프(Life)의 합성어로 도시를 떠나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고 편안함을 즐기는 시골향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한동안 여행객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호캉스 대신 ‘촌캉스’(촌+바캉스)를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실제 SNS에 #논밭뷰 #촌캉스 등을 검색하면 1만 건이 넘는 결과가 나타난다.
편리함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안식의 시간을 보낸다. 인파로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역을 찾아가는 여행 대신 나만의 여행지를 찾는다. ‘물멍’(물을 보며 멍 때리기), ‘숲멍’(숲을 보며 멍 때리기)등 그저 자연을 보기만 하는 순간이 여행의 테마가 됐다. 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와 편안함을 즐기는 삶, 균형 있는 라이프의 본질이다.
동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해 강원도 구석구석을 흐른다. 강물은 영월의 마을을 크게 돌아 한반도의 모습을 빚기도 한다. 동강 기슭에는 한반도뗏목마을이 있다. 이곳을 여행한다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뗏목을 타 보자. 뗏목은 한반도 지형을 한 바퀴 돌며 넘실댄다. 동강에 발을 담가 보니 온몸에 시원한 감각이 퍼진다. 여름의 열기를 이렇게 넘긴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의 뜻을 지닌 별마로 천문대가 있다. 국내 시민 천문대로서는 가장 성능이 좋은 천체 관측용 망원경을 갖췄다.
장소 본연이 주는 기운이 있다. 인간의 간섭이 사라진 곳에 자연이 스스로 치유해 복원된 곳, 운곡람사르습지가 바로 그렇다. 과거 습지를 개간해 계단식 논으로 사용했으나 1980년대 초, 댐 건설로 인해 방치된 이곳은 자연의 힘으로 일어섰다. 주민들이 떠난 지도 어느덧 40여 년째. 운곡습지는 언제 사람이 살았냐는 듯 울창하다. 현재 한반도 토종 야생식물을 비롯해 희귀 동식물 830여 종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한다.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 습지와 운곡저수지를 보존하기 위해 최소한의 탐방로만을 남겨두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느린 산책의 묘미로 마음을 사로잡는 곳, 하중도생태공원으로 가자. 의암호 섬에 조성된 이곳은 수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과 섬 안을 걷는 산책로가 있어 천천히 걷기에 좋다. 날씨에 따라 수변 위로 떠오르는 잔잔한 물안개를 만나면 어느새 평온을 되찾게 된다. 호수의 윤슬이 찬란한 빛을 뿜는다. 곳곳엔 은은한 온기가 그득하다. 활기를 원한다면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까지 연결하는 3.61km의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를 타보자. 국내 최장의 케이블카로 발아래엔 의암호가 눈앞엔 삼악산이 있어 물멍, 숲멍을 동시에 선물한다.
덕유산 깊은 골짜기,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 있다. 고즈넉한 매력을 지닌 이곳은 은진임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이래 내리 이어진 숲옛마을이다. 주변에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던 갈계숲이 있다. 덕유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소정천이 갈라지며 자연스레 생긴 조그만 섬 위에 조성된 갈계숲은 수령 200~300년의 소나무와 물오리나무,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울창함을 이룬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우거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새들의 지저귐, 흐르는 물소리를 느껴본다. 한여름이 주는 위로다.
충남 보령에는 머드 축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은 산속의 매력은 그보다 다채롭다. 태백산맥 오대산에서 갈라져 뻗은 차령산맥이 빚어낸 성주산자연휴양림은 산을 오르지 않아도 두세 시간을 넉넉히 산책할 수 있는 길고 깊은 오솔길을 뽐낸다. 입구에서부터 숲속관찰로, 자드락길, 편백나무 숲, 피톤치드 오솔길 등이 이어진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좋다. 완만한 숲길이 쭉 뻗어 있다. 숲길을 걷다가 힘이 들면 곳곳에 있는 데크에 누워보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편백나무가 빼곡히 그득하다. 그 온기에 마음의 피로가 사라진다.
무려 천 년의 역사가 달하는 곳, 상림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신라시대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부임했을 당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 1.6km의 숲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상림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특히 여름이 더 좋다. 다양한 이끼류가 가득한 이끼원과 130여 종의 연꽃, 연잎에 고인 물방울이 청량함을 더한다. 천년의 숲을 노닐면, 마치 터널 속에 있는 느낌이다. 수백 년 이상 뿌리를 내린 거대한 나무들이 연두색과 초록빛을 고요히 섞어 이파리 그늘을 만든다. 짙은 풀 내음이 사방을 가득 메운다.
글 정수희 사진 웰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