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사찰 문화재구역 관람료 징수 사건을 다루자 실제 유사한 있었던 천은사에도 재차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은사(泉隱寺)는 828년 신라시대에 창건한 천년 사찰이다.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처음에는 ‘병든 사람을 샘물로 치료했다’는 전설로 인해 감로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1679년 조선시대 ‘샘이 숨었다’는 뜻인 천은사로 바뀌었다. 천은사는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사찰 옆으로 펼쳐지는 등 고요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매표소, 이곳은 탐방객들과의 갈등이 잦았다. 철거한 매표소가 있던 861번 지방도로는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하기에 노고단을 가기 위해선 이곳에서 문화재구역 관람료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천은사는 합법적으로 관람료를 받았지만, 이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의 파급력은 강했다. 이 갈등의 시작은 1980년대 초 861번 지방도로가 생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61번 지방도로는 군사정부 시절인 1980년대 초 정부가 사전 협의 없이 천은사 사유지에 만든 비포장 군사작전도로였다. 이후 정부는 1987년 관광 자원 개발 목적으로 군사도로에 포장도로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천은사 스님들이 수행하는 방장선원의 바로 뒤를 통과하는 길이었다. 방장선원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보조국사, 나옹화상 등이 수행한 도량이지만 길목을 지나는 차량소음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해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사유지에 길을 낸 것을 대신해 사찰 소유지와 문화재를 보존하라는 명분으로 문화재구역 관람료와 국립공원 입장료 합동 수렴(收斂)하도록 했다. 이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 천은사는 문화재구역 관람료만 받게 되면서 갈등이 더 깊어지게 됐다.
1987년부터 시작해 32년간 이어진 갈등은 천은사의 본사인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과 당시 천은사 주지 종효스님의 대승적 차원인 결단과 한국농어촌공사를 포함한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 천은사 등 8개 관계 기관의 협력으로 2019년 4월 29일, 매표소가 철거되고 문화재구역 관람료가 폐지되면서 해결되었다.
한국농어촌공사를 포함한 8개 관계 기관은 천은사운영기반조성사업 및 탐방로 정비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관계기관 협의회를 구성·운영, 천은사의 문화재구역 관람료 폐지 업무협약 및 정보 교류 등 행정 협의를 이어나갔다.
2019년 12월부터 시작한 협의회는 2021년 12월을 끝으로 2년 동안 운영됐다. 한국농어촌공사 구례지사장을 포함해 천은사, 전남도청, 구례군청, 지리산국립공원으로 구성돼 연 4회(1월, 4월, 7월, 9월) 등 필요시 수시로 만나 천은사 문화재구역 관람료 폐지 업무협약 체결과 협약이행 사항을 점검했다. 더불어 천은사 운영기반조성사업 등 관련사업 기술자문, 인허가 협의, 지리산 권역 관광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 발굴 및 지원 협의, 천은사 권역 관광활성화를 위한 홍보·제안 등 천은사 운영 활성화를 위해 함께하기로 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천은저수지 주변 토지 무상 사용 협의, 천은저수지 주변 관광활성화 사업 발굴 및 지원을 도맡았다. 여러번의 소통을 거치는 등 적극 행정을 통해 지리산권 관광활성화를 도모한 이들은 문화재구역 관람료 폐지 업무협약 등을 기념하기 위해 천은사와 천은저수지 주변에 상생의 의미를 담은 ‘상생의 길’을 조성, 2020년 12월에 개방했다. 매표소가 철거되면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 사랑받고 있는 천은사 상생의 길인 것이다.
매년 관람객 5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는 천은사. 현재 천은사 주지 대진 스님은 한국농어촌공사에 바라는 점으로 천은저수지의 정화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천은저수지는 매우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농어촌공사의 부지이기에 천은사에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천은사가 더욱 좋은 경관이 되도록 1년에 한 번 이상 정화 등을 비롯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국농어촌공사와 천은사가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와 각 지자체, 천은사가 함께 이룬 상생의 선례는 더욱 단단하게 이루어져 특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천은사는 운치가 가득한 곳입니다. 천은사의 은은 ‘숨을 은’을 뜻하지만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으로 연꽃이 피는 곳이고, 물이 많은 곳이지요. 주된 기능은 선수행을 하는 곳입니다. 불교적 의미로 ‘샘의 지혜’를 뜻하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천은저수지가 있어 아침 물안개가 지리산을 넘어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쉼의 공간이자 물이 주는 따뜻함으로 풍광이 잘 어우러져 좋은 곳입니다. 천은사와 천은저수지의 상생으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상생의 길은 지리산 탐방객과 사찰 간 문화재구역 입장료로 인한 논란이 32년 만에 해결되면서 불교계와 정부, 지자체가 화합으로 만든 탐방로이자 천은저수지의 둘레길이다. 상생의 길은 정부와 지자체, 사찰, 국민 간 상생을 도모한 모범 사례로 손꼽히며, 2020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한국경관학회장상을 받았다.
길은 청류계곡에서 흘러든 물을 저장한 천은저수지의 둘레를 따라 쭉 이어진다. 3.3km로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의 3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쉼과 문화를 담은 나눔길, 자연의 모든 생명을 품다는 뜻을 지닌 보듬길, 모든 사람이 더불어 함께하다는 상징을 지닌 누림길로 이루어져 있다.
상생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의 모든 생명을 품은 듯 평온한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천은저수지의 둘레길인 보듬길과 누림길은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돼있다. 이곳은 천은저수지로 1983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조성했다. 예전에는 식당, 여관 등이 자리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수달과 원앙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이자 쉼터가 되었다.
저수지의 물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일부는 감로천으로 흘러 섬진강과 합류해 끝없이 이어진다. 천은저수지와 함께 가을의 짙은 길목을 누려 본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데크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유로움에 빠지고 만다.
곳곳에 있는 현판 글이 따뜻하다.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으로 내게 주어진 한가지를 못 해서는 안 되겠지요. 내 앞의 그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데크길을 나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저수지 둑길. 천은저수지 수면 위로 하늘이 담겼다. 가을하늘을 살포시 덮은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서두를 것 없이 바람 따라 움직이는 잔물결, 그 위로 가을빛을 머금은 윤슬까지.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살피며 살아가라는 진리가 물 속에 있었다.
글 정수희 사진 봉재석 인터뷰 원고훈(한국농어촌공사 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