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윙” 귓전을 울리는 꿀벌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벌통을 조심스레 연다. 나뭇잎을 태운 연기로 꿀벌을 진정시키자 육각형 벌집을 빼곡히 채운 수백 마리의 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과 꿀벌의 공생으로 채밀한 꿀을 따는 최새봄 씨의 달콤한 여정이다.
푸르른 산이 둘러싸고 있는 공터 아래 펼쳐진 야트막한 평지, 이 아늑한 터에 자리한 최새봄 씨의 양봉장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벌통이 놓여 있다. 본격적인 채밀 기간이었던 4월 중순부터 8월까지 그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양봉장에 도착하면 벌통을 열어 보고 봉군의 상태를 꼼꼼히 살핀 후 벌통 내부가 더우면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추우면 담요를 덮어 따뜻하게 만들었다. 개체수가 늘어나 집이 좁아 든다 싶으면 얼른 소초광(꿀벌이 집을 짓는 기초가 되는 파라핀을 섞어 만든 판)을 넣어 벌들이 벌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꿀을 채밀하다 보니 한여름이 금세 지나갔다.
“꿀을 따는 시기가 이른 봄에서 늦여름 사이거든요. 벌도 저도 가장 바쁜 시기에요. 2월 중순이면 벌을 깨우고 산란을 시작하는데 저도 그때 시작이고, 12월 말이면 월동에 들어가서 벌의 한 해 살이가 끝나야 저도 비로소 방학이죠.”
수레바퀴가 돌 듯 연중 스케줄에 따라 도는 것이 양봉업이기 때문에 최새봄 씨는 최근 몇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밀원수 확보·이동, 병해충 예방, 채밀, 소분, 월동관리 등 그의 손길이 안 닿는 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꿀 생산이 끝나 월동 준비를 하고 있어요. 추운 겨울을 잘 나도록 방역하고 벌통 밑에 포근한 볏단을 깔아주고 비닐 막과 담요를 덮어주지요. 이때 꿀벌은 꿀을 가져올 수 없으니 화분떡 같은 식량도 공급해 주어야 해요. 시기를 잘 보내야 기온이 따뜻해지는 2월에 여왕벌이 몸을 키우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할 수 있어요. 그래야 5월부터 다시 채밀을 시작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꿀벌응애류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는 방제 작업이 한창이죠.”
벌꿀에 대한 최새봄 씨의 생각은 확실하다. 믿을 수 있는 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양봉을 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따라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벌꿀을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꿀벌을 키우고 벌꿀을 생산한다. 그렇기에 최새봄 씨는 자연 그대로의 꿀과 로열젤리만을 취급한다.
겉으로 보기에 꿀은 다 비슷하고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생산 과정에 따라 생꿀, 농축꿀, 사양꿀로 구분한다. ‘사양꿀’은 벌통에 호스를 깔아 설탕물을 계속 먹여 만든 꿀이다. 말 그대로 사육하는 것이다. 이틀에 한 번씩 벌통에서 설탕 꿀을 빼내 열처리를 통해 농축하면 보통 3~7일 안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외국의 값싼 꿀이나 설탕으로 만든 사양꿀 등에 밀려 우리나라 천연꿀 소비가 그리 좋지 않아요. 가격이 더 나가는 만큼 질이 좋은데, 사람들은 그저 비싸다고만 생각하죠. 저희는 수분을 기계로 날리지 않는 생꿀(숙성꿀)을 수확하고 있어요. 꿀 성분이 다 같고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데 사실 같을 수가 없잖아요. 소비자들도 자신이 먹는 꿀이 어떤 꿀인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최새봄 씨는 의무적으로 원산지를 표시하는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양봉인도 자신 있게 꿀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꿀과 양봉산물을 생산해도 소비가 안 되면 의미가 없죠. 벌꿀에 대한 소비자 신뢰성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발생되다보니 ‘천연 벌꿀 생산’을 강조하며 네이버 스토어팜과 라이브커머스를 활용해 적극 홍보하고 있어요.”
최새봄 씨에게 이제 꿀벌은 삶 그 자체이다. 곤충에 불과했던 꿀벌이 삶을 온통 바꿔 놓았다. 종일 꿀벌을 생각하고 철마다 꿀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듣고 꿈꾸게 됐다. 꿀벌이 날갯짓해야 세상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꿀은 꿀벌 공동체가 모든 것을 다 건 노동의 결과예요. 작은 날갯짓으로 하루에 수백 번 오가며 찾아 모은 숨결의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꿀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며 자연 자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 합니다.”
청년 양봉가로 최새봄 씨는 확실한 목표만큼이나 고민도 깊어졌다. 농가 소득과 생태 환경의 주요 고리 역할을 하는 양봉산업이 해를 거듭할수록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시적인 지원보다 양봉산업이 처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꿀벌의 눈으로 보면 삶과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벌 치는 게 직업이지만 벌을 보호하고 벌과 함께 생태계를 지킨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어요. 벌이 위협을 받으면 자연 생태도 어려움에 놓이게 돼요. 그만큼 양봉산업이 중요한 이유죠. 벌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환경을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어요.”
수천 마리의 꿀벌과 함께 한 일 년. 최새봄 씨의 시간의 결도 촘촘하게 채워진 벌통의 꿀벌처럼 달콤하고 풍성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벌을 키우는 집사로 그의 벌들이 준 귀한 선물이다.
“올 한 해를 뒤돌아보니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내년 연말에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더 열심히 준비해 일 년을 채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큰 욕심 내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꿀벌과 공생하는 삶을 채워나갈 것이다. 벌들의 시간, 그 속에 나의 삶이 있을 것이다.”
글 이선영 사진 이정도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