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충북 보은지역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 농장의 대추나무에 청포도 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연한 녹색의 대추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대추나무 가지가 휘어지거나 찢어질 정도다. 보은의 보물인 대추로 더욱 행복한 이가 있다. 9년 전 귀농해 대추 농사를 지으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최봉언 씨를 만나 보았다.
충북 보은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분지 지역이다. 산이 많고 나무가 많으니 물과 공기도 맑다. 물과 공기가 맑으면 자라나는 음식의 원재료들도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충북 보은에는 맛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들이 많다. 보은에서 나는 다양한 특산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대추’를 들 수 있겠다. 2013년 귀농해 대추를 재배하고 있는 최봉언 씨도 대추에 있어서 만큼은 진심이다.
“귀농을 하기 전 대구에서 자영업도 해봤고 주류 회사에서 상무로 일하며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었어요. 스트레스가 심했죠. 각박한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즈음 제가 활동하고 있는 산악회 지인이 보은에 있는 대추농장에 데려갔어요. 대추의 부가가치가 높을 것이란 생각에 귀농을 준비하게 되었죠.”
대추 재배에 매력을 느낀 최봉언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대추 농사에 뛰어들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보은에 내려와 집을 짓기도 전에 밭을 사들여 대추나무 670주를 심었다. 지금이야 초보 귀농인들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도 농촌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건 아니다. 호기롭게 농사를 시작했지만 경험이 부족해 수확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최봉언 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보은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대추 관련 교육을 받으며 이론을 익혔고, 동네 주민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차근차근 농사를 배운 끝에 현재 6,500평 대추농장에서는 매년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봉언 씨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농사 기술을 체득하기 이전에 마을 주민들과 친분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귀농 적응에 실패한 이유가 주민과의 교류 실패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금은 마을 이장과 보은군대추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동네 주민들 속에 섞인 건 아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매일 그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모임이 있는 자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마을 주민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가장 힘든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이들은 언제나 마을 주민들이었다.
“기술보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게 더 어려워요. 저도 처음에는 낯선 주민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늘 웃는 얼굴로 대하고 마을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니 이젠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어요.”
최봉언 씨는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귀농을 하는 것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귀농을 결심하자마자 토지와 주택 매입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지역을 선정하더라도 살고 싶은 곳은 더 신중하게 결정하고 선택 후에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농사일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봉언 씨 또한 보은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다른 농가에서 일하며 대추 농법을 익힌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추에 대한 지식이 몸으로 터득되었다.
가을볕을 받아 적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대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알알이 맺혔다. 노지재배, 비가림시설 가릴 것 없이 모두 풍작을 이뤘다는 최봉언 씨는 지난여름 농사일로 고단한 시간을 보냈지만, 요즘 대추 수확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은 대추의 수확량 60% 이상은 생대추로 판매가 돼요. 생대추 당도는 28~30브릭스 정도로 매우 달아 과일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죠. 생대추 맛을 보면 아삭아삭한 식감에다 달콤한 맛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특히 우리 농장 대추는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인증을 받은 만큼 건강하게 자라 더욱 맛있어요.”
최봉언 씨가 애지중지 키운 신선한 생대추를 한 입 베어 물면 식감은 아삭하면서도 달콤함이 입안에 은은히 퍼진다. 다른 농장보다 당도가 높은 방아실농원 생대추는 보은대추축제와 산림조합에 납품해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귀농 9년 차가 되며 꾸준히 그의 대추를 찾는 고객도 늘었다.
시인 장석주는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대추가 붉게 익기까지 태풍, 천둥 등 고난을 겪은 뒤에서야 대추 한 알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대추 농사를 이어간 최봉언 씨의 삶 또한 달콤하게, 알맞게 익어가는 중이다.
충북 보은군 소여길 303
010-2515-6288
글 이선영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