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허리를 하얗게 물들인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고소한 결실이 맺힌다.
서늘하고 마른 토양에서도 잘 자라 예로부터 산간지방 사람들에게 유용한 곡물인 메밀이다.
메밀은 ‘산(山)’을 뜻하는 ‘뫼’에 ‘밀’이 더해서 생긴 말이다. 옛날부터 메밀 혹은 모밀이라 불렀다. 현재 표준어로 정착한 것은 메밀이고, 모밀은 황해도나 경기도 등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로 남았다. 과거 사람들은 메밀꽃이 피는 모습을 ‘메밀꽃이 일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관용구는 흰 파도가 철썩이는 광경을 비유하는 말이었는데, 메밀꽃이 흔히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한 입 먹기만 해도 더위를 달래는 여름 별미 중 하나가 메밀막국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메밀의 제철을 여름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메밀의 계절은 바로 지금, 겨울이다. 추울 때 결실을 맺어야 맛이 좋은 메밀은 늦가을에 수확한다.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햇메밀은 그래서 겨울에 가장 맛이 좋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겨울에 서민들의 배를 두둑하게 채워준 작물도 이 햇메밀이다.
햇메밀은 묵은 메밀보다 초록빛이 돌며 메밀 특유의 향긋함이 좀 더 진하다. 또한 묵은 메밀에 비해 찰기가 있어 전분을 거의 섞지 않아도 면을 뽑을 수 있다. 한겨울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메밀면이 진짜 냉면이라는 실향민의 주장이 일리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엔 냉장 보관과 도정 기술이 발달해 햇메밀과 묵은 메밀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진짜 메밀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겨울에 메밀막국수를 찾는다.
메밀은 싹부터 꽃, 그리고 껍데기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이로운 곡물이다. 메밀싹은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입맛을 돋우며 어느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마치 팝콘을 연상시키는 하얀 메밀꽃은 차로 즐기기에 제격이다. 껍질이 단단한 통메밀을 그늘에 바싹 말려 달달 볶은 다음 보리차처럼 끓이면 구수한 맛이 난다. 통메밀의 껍데기를 벗긴 메밀쌀을 잘 말려 곱게 가루를 내면 면, 만두피, 수제비 등을 만들 수 있다. 껍데기는 그늘에서 잘 말린 뒤 베갯속으로 사용하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재료: 메밀가루, 김치, 당면, 마늘, 부추, 두부, 소금, 설탕, 참기름, 간장, 깨소금
글 임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