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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면의 블랜딩

익숙한 발견 우리 로컬

허물어진 우리의 근현대사, 다시 태어난 도시에 깃들다

대전광역시 소제동

옛 시절, 수많은 사람이 오갔으나 점차 쇠퇴해갔던 대전시 동구 소제동은 현대도시의 ‘탄생’ 못지않은 의미를 안고 새로운 활기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을씨년스러웠던 텅 빈 관사는 다시금 예술과 커피, 이야기로 가득 채우며 도시재생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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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옆 동네 철도관사촌을 아시나요?

대전역 인근에 있는 소제동은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1시간가량, 부산역과 광주송정역에서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대전역 1번 출구 동광장으로 나와 10여 분 걸으면 소제동 초입이다.

일제강점기의 소제동은 밤낮으로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동네였다. 인근 대전역의 철도 건설을 위해 모인 기술자와 노동자, 일본 관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철도관사촌이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 전국에서 손꼽게 규모가 컸던 소제동의 관사촌은 철도가 건설되는 동안 최고의 호황을 누렸으나 끝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철도는 완공됐고, 대한민국은 광복의 기쁨을 맞았으며, 일본 관료들과 기술자들은 소용을 다 하고 차례대로 관사를 떠났다. 노동자들 역시 일감을 찾아 다른 지방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제 역할을 다한 소제동은 그렇게 쇠락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철도관사촌은 빠르게 무너져갔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드물게 되었다. 총 100여 채에 달했던 관사는 어느덧 40여 채만 남으며 슬럼화가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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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멋에 현대의 향을 새기다

그러던 소제동에 2017년 무렵, 변화의 태동이 일어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상징과도 같은 소제동을 이대로 버려둘 수 없었던 것. 외관만 보자면 낡디낡은 회색빛 동네지만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소제동은 근현대사와 현대사가 뒤섞인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회색빛 기와, 넓은 안마당, 적산가옥 등 소제동을 특징짓는 수많은 이야기는 소비 공간과 예술 공간이 되기 충분했다. 동네의 빈집이 무려 50%에 달했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끌어내 새로운 색을 입히겠다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소제 컨테이너를 들러보면 좋겠다. 오렌지색 벽간판과 컨테이너는 소제동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2020 도시기억프로젝트 <소제>’에 대한 기록이 빼곡하다. 과거 소제동의 관사 미니어처,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의 인터뷰, 소제동과 잘 어울리는 음악, 3D로 구현한 지도 등 이곳에서 삶의 정점을 보냈던 사람들의 추억이 한데 모아져 기억과 역사를 상기시킨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카페 풍뉴가(풍류가)는 그림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이곳의 상징이 된 대나무 숲은 그 옛날 이곳에서 살았던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심었던 것. 노부부가 이곳을 떠나신 후 무려 15년을 빈집으로 방치됐지만 긴 시간 동안 노부부를 대신해 주인 노릇을 한 것은 대나무 숲이었다. 입구 가운데 길을 두고 양쪽으로 높이 치솟아 있는 대나무 숲은 서로를 위한 노부부의 마음에 낭만과 운치를 더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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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를 향해 다시 움트는 봄

대부분의 관사촌 건물은 낙후되고 허물어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지만, 관사16호는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았다. 그 상징성을 잘 살리기 위해 개발 당시 최대한 인위적인 손길을 가하지 않고 과거 모습을 되살려, 지금은 주기적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등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갈증을 적셔 준다. 바로 옆에 자리한 라운지엑스 바앤드립에서 커피를 구매하면 관사16호에 방문이 가능하다. 라운지엑스 바앤드립은 로봇이 내려주는 드립커피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떠오른 곳이다. 그라인더에 갈린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포트를 데워서 3번의 드리핑하는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무심히 바라보며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단다. 한겨울에는 추위로 인해 야외에서 마실 엄두가 나지 않지만, 봄이 되면 자갈이 촘촘하게 깔린 안마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100년 전 그 세월 속으로 되돌아가 보자.

천천히 산책하듯 거니는 소제동의 겨울 정취는 춥지만 정감 어리다. 맨 꼭대기 나뭇가지에 한두 개가 겨우 남은 감나무,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돌담길, 회색빛 기와에 소복이 쌓인 낙엽과 눈, 햇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다니는 고양이들, 거대한 수목들까지. 어쩌면 사회적·경제적 논리에 얽매여 사라졌을지도 모를 동네였던 소제동이 다시 천천히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근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역사가 다시금 태어나고 있다. 미래를 향해 걷는 우리의 발걸음에서 한몫을 차지한 채 묵묵히, 당당히 말이다.

관사16호 복합문화공간

대전광역시 동구 수향길 19 본관

이경희 사진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