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딸기 수출액이 최고치를 달성한 지금, 딸기는 대한민국의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을 제패한 겨울철 대표 과일로 자리잡았다. 1994년도에 귀농해 경기 포천시에서 딸기를 농사짓고 있는 일경농원의 길완일·이혜경 부부 역시 높은 원물 품질과 6차산업 경영으로 국내 소비자는 물론, 해외 관광객의 입맛까지 한껏 사로잡고 있는 중이다.
경기 포천시로 들어서자 서울보다 2~3℃ 훅 낮아진 냉기가 느껴진다. 강원 철원만큼이나 추운 곳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딸기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이 일경농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이미 느껴진다. 길완일 대표가 귀농을 결심하고 아내 이혜경 대표와 함께 서울에서 포천으로 주거지를 옮긴 때는 1994년이었다.
“저는 원래 농사를 짓고 싶어 했어요. 대학도 농대를 나왔는데 바로 농사짓지 못했던 이유는 아버님의 반대 때문이었지요. 힘든 일을 왜 자처해서 하느냐는 만류에 직장 생활을 10년쯤 했는데 결국 농사를 꼭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부부는 상대적으로 쉽다는 엽채류로 시작해 2008년에 본격적으로 딸기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포천에서 딸기농사를 짓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딸기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이 대부분 기온이 높은 남부지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추운 포천에서의 딸기농사란 시설비와 난방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껍질이 없는 딸기의 특성상 키우기도 관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난방은 열풍기와 보일러 두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고 하우스도 비닐과 수막비닐, 보온커튼 등 3중으로 보온해야 했어요. 공기와 땅 모두를 봄처럼 만들어야 딸기가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지난해에 비해 난방비가 2배씩 올랐기 때문에 정말 힘든 상황이죠.”
길완일·이혜경 부부는 처음부터 딸기에 관해서 만큼은 고집에 가까운 철학을 갖고 있었다. 생산성이나 수익 때문에 딸기의 품질을 저하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빨리 키우고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불을 많이 때고 물을 많이 주고 비료를 많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키우면 빨리 자라고 생산량도 늘어겠죠. 하지만 단점도 명백해집니다. 보통 사람들이 장마철에 과일을 잘 안 사먹잖아요. 단맛이 떨어지니까요. 같은 이유로 당도와 강도가 떨어지는 겁니다. 하우스 안에서 키워도 공기에 있는 수분까지 딸기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일경농원이 다른 곳보다 물을 덜 주고 덜 따듯하게 키우는 이유는 하나다. 추위로 인해 딸기가 익는 속도가 느려지면 단맛이 깊게 들고, 수확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면 양분이 축적될 시간이 충분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도 높고 강도가 단단한 딸기가 나온다. 타 브랜드에 비해 1000~2000원이 비싸도 이곳의 딸기만을 찾는 소비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다. 길완일 대표의 욕심은 더 있었다.
“제가 친환경 농사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약을 가능한 적게 쓰고 천적을 이용해 딸기를 키우고 있어요. 제가 방금 비닐하우스 안에서 뿌리고 있었던 게 딸기를 궤멸시키는 해충인 응애를 박멸하기 위한 천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공호르몬이 아닌, 벌을 비닐하우스에 풀어 꽃을 수정시키고 뿌리파리를 잡기 위해 황색 트랩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체험 도중에 그냥 따먹어도 되고, 흐르는 물에 2~3초만 씻어도 충분하다는 길완일 대표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일경농원이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안정적인 상황에까지 온 배경에는 10년 전부터 시작한 체험농장, 즉 6차산업에 있다. 포천에서 최초로 시작한 딸기체험농장의 성공은 이혜경 대표의 공이 컸다. 다양한 마케팅전략은 물론, 딸기 따기 외의 쿠키 만들기, 잼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을 자자하게 탔고 무엇보다 딸기 자체가 맛있어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한 이혜경 대표가 결국 퇴사를 하고 체험농장에 올인하기 시작한 지 벌써 5~6년 됐다니 6차산업은 부부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수입원이 된 셈이다.
“체험농장은 1~2년 운영하다가 그만두는 농장주분이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렵습니다. 사실 포천 지역은 딸기 출하만으로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요. 생산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서 5000원 받을 상품을 저희는 7000원~8000원은 받아야 해요. 그런데 사실 시장에서는 그렇게 받아주지 않아요. 결국 그걸 상쇄하는 게 6차산업인 셈이죠.”
일경농원의 6차산업에는 특이점이 있다. 바로 해외관광객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저희는 여행사와 연계해서 외국인 관광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딸기가 동남아시아에서 워낙 비싸고 인기가 좋은 과일이라 비행기표만 예매해서 당일 관광을 하러 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또 저희 농장이 포천에서 가장 큰 관광지인 아트밸리와 허브아일랜드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에 관광버스를 타고 코스로 저희 농원까지 포함시켜 쭉 여행을 하는 거죠.”
체험농장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일경농원은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딸기를 고슬이라는 신품종으로 바꾼 것. 고슬은 2016년 농업진흥청에서 새롭게 개발한 것으로 여타 품종보다 빨리 심어 빨리 수확할 수 있으며 잘만 키우면 1년 내내 수확도 가능하다. 새콤한 맛과 향이 일품이며 무엇보다 체험농장을 길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부부는 고슬을 키우기 위해 컨설팅도 받으며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재 일경농원의 6차산업은 체험농장을 넘어 가공산업으로까지 확대되어 있다. HACCP인증까지 받아 잼과 청을 직접 생산한다. 이는 봄 딸기와 상품 가치가 떨어진 딸기, 체험농장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딸기까지 모두 사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주요 수단으로 소비자는 물론, 지자체와 학교급식, 군납, 공공기관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밝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2023년 계획은 별다른 게 없이 현재 하고 있는 걸 제대로 변함없이 잘 하고 싶어요. 키우는 딸기가 병 없이 잘 크길 바라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체험농장도 더 잘되길 바라요. 딸이 본격적으로 합류하면 인터넷 판매를 통해 가공제품 사업 역시 활성화시켜 볼 생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원물, 딸기의 품질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길완일·이혜경 부부. 이들에게 딸기는 키우기 까다로운 어려운 대상이지만 동시에 긍지가 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지표임에 틀림 없어 보였다.
글 이경희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