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ㄴ’도 모르던 도시 직장인 셋이 뭉쳐 농사, 그것도 6차산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다. 2019년 경기도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이우석, 홍정기, 정해성 세 명의 농부는 완성도 있는 농업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공통된 생각으로 ‘팜아트홀릭’을 꾸렸다. 학생들을 위한 진로체험부터 잼과 배즙 등의 식품 가공까지 팜아트홀릭은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을 막 벗어날 무렵 탁 트인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도심형 농촌체험카페 ‘팜아트홀릭’. 블랙의 시크한 외관은 흡사 요즘 유행하는 베이커리 카페와 같은 예술적 감성이 묻어난다. 800평의 널따란 농장의 내부로 들어가니 제조시설과 다육식물, 체험형농장을 바삐 오가는 이우석, 홍정기 농부의 분주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재 성수기는 아니지만 올해 운영할 체험 프로그램 준비와 사업을 보완하는 시기라서 노동 강도는 덜해도 심리적 여유는 없는 편입니다. 배나무 전지, 전정 작업이 한창인 정해성 이사는 만나기 어렵지만 성수기가 되면 농장에 모이다보니 따로 시간 내지 않아도 수시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허브와 다육식물, 귀농 작물을 중점으로 시작한 팜아트홀릭은 홍정기 이사와 정해성 이사가 합류하면서 2019년에 본격화 되었다. 팜아트홀릭을 운영하는 이우석 대표와 홍정기 이사, 정해성 이사 모두 각기 다른 해에 귀농했지만 지난 2016년,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았던 농업기술센터에서의 만남 이후 운명공동체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대표는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어 가업을 잇는 것도 아니고, 관련 학교를 졸업해 판로개척이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왕초보 농사꾼으로 세 명 모두 그런 절박한 심정이 통했던 거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홍정기 이사 역시도 농사와는 무관한 전산과 출신에 잦은 야근을 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일상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질 무렵 친구의 귀농을 지켜보던 자신도 농부의 길을 다짐하게 되었다.
“흔히 생각하는 농사,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 번을 생각하고 또 다짐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이 있는 분야입니다.”
토마토 재배와 전반적인 농식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홍 이사를 비롯한 두 농부의 일은 철저히 분업화 되어 전문적으로 이뤄진다. 이 대표는 초창기부터 시작했던 다육 식물 재배 그리고 판로개척과 교육사업 일환인 진로체험을 담당하고, 배 생산 작업에 바쁜 정 이사는 1차 농산물 수급과 제품성 향상에 힘쓰고 있다.
혼자가 아닌 셋이었기에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농부가 된 후로는 아파야만 쉴 수 있는 게 전부인데다 수익도 미비해 생활도 힘들다보니 일손을 놓고 다시 도시로 발길을 돌리려 했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서로를 다독이고 새로 구축된 시설도 돌아보며 굳은 각오를 다지곤 한다고.
홍 이사는 “처음부터 믿고 변치 않으려했던 마음은 제 자신과의 약속이자,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올곧은 대표의 성품을 알기에 더욱 신뢰하고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역시도 자신의 까다로운 요구에도 믿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 있기에 힘든 순간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이 대표의 집안은 오래전 이농을 하신 부모님 세대까지도 농사일이 가업이었고,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반면 농업은 소중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기에 농업에 대한 평가 절하된 일반적인 인식을 마주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더구나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자신의 20대에서 얻은 경험은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꿈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서른 살 가까이 되어서야 제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시행착오를 소비자와 나누고 싶고 10대들의 직업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대표는 과거 자신이 겪었던 고민과 같은 일로 고민하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과 농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래서일까, 다육이 재배부터 진로체험, 가공식품까지 기본을 지키는 것은 물론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소비자의 눈도장을 찍게 한다. 비대면으로 직업체험을 했다는 한 블로거는 “농부가 꿈인 아들을 위해 다육식물 심기 키트를 선택했는데 이번 체험을 계기로 농부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집에서 비대면 체험을 하면 아무리 체험키트 구성이 잘되어 있어도 학부모가 신경 쓸 부분이 있는데 팜아트홀릭의 체험은 식물을 심을 때 책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는 신문지까지 포함되어 있어 너무 좋았다”고 감탄했다.
이 대표의 이런 우직한 섬세함은 가공식품 공정에서도 드러난다. 배도라지즙 제품의 경우 간편한 공정을 위해 청이나 건조도라지를 사용할 법도 하건만 이 대표는 단호히 이를 거절한다. 홍 이사는 “도라지를 세세히 씻다보면 너무 지치는 공정입니다. 그러나 편함을 위해 건조도라지를 사용하지 않는 이런 우직함이 제품의 품질을 좌우하고 소비자도 이를 조금씩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식물 재배에서 식품 가공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접근이 쉬운 토마토를 택했다. 농업인들의 필독서인 ‘농서남북’은 읽고 또 읽었다. 이론에 자신이 생겨도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와 경험부족은 냉정한 결과로 나타났다. 토마토 잼 가공사업을 시작하면서 완성품이 아닌 토마토 원물을, 가격으로 따지만 천만 원도 넘는 양을 전량 폐기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경제적 손실에만 그치지 않았다. 가공제품의 완성도 높은 공정을 위해 20시간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토마토 가공에만 매달린 적도 있었다. 병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제대로 쉴 수도 없는 게 농사일이었다. 이런 수고로움이 조금씩 쌓여 비약적인 발전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는 체험농장 부지에 식품제조시설이 새로 구축되었고, 정부지원으로 저온생산 공정 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홍 이사는 “‘농사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라며 자책하고 좌절한 적이 수십, 수백 번이었는데 그래도 조금씩 갖춰지는 시설과 제 손길로 재배한 토마토가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댓글을 보면 힘이 생긴다”며 농부의 미소를 지었다.
수입이 생기면 시설이나 프로그램 보완에 재투자하다 보니 아직은 매출보다 매입이 많은 실정인 팜아트홀릭. 욕심 많은 농부 셋이 모여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에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가공식품의 종류도 늘려야 하기에 올해도 세 농부의 손길은 분주할 듯하다. 특히 올해는 친환경농법인 아쿠아포닉스를 상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는 물고기를 키우는 양식(Aquar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를 결합한 기술을 뜻한다. 양식에 사용한 물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산양식과 농작물 재배가 함께 이뤄져 친환경적이다. 팜아트홀릭 이 대표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며 농사도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글 박시나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