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만점 반찬으로만 여겨지던 버섯이 ‘과자’가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버섯재배 후계농이 된 믿음영농조합법인의 윤영진 대표. 그는 표고버섯재배에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도입하고, 해외 쇼핑몰에 버섯스낵을 판매하는 등 포화상태의 국내 버섯 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판로 개척으로 블루오션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는 봄, 강진을 찾았다. 청자와 다산 선생으로만 기억되던 ‘남도 답사 1번지’가 버섯스낵을 개발해 외국으로 수출하는 한 농부로 인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화제의 중심엔 강진에서 나고 자란 윤영진 농부가 있다. 그는 강진 토박이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버섯재배 후계농이 되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버섯을 재배하셨어요. 그때는 영지버섯을 재배하셨는데 아버지의 영지는 A급이어서 영비천을 만드는 곳에 납품하기도 했고, 슬라이스를 해서 포장해 유통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직접 유통에 뛰어 드신 아버지가 중간 업자의 마진이 크다는 걸 아시고는 영지에서 표고로 전향하셨어요. 당시 영지버섯을 재배하던 농가들은 모두 연작피해로 병을 얻어 그만두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론 저희만 살아남게 되었죠. 그렇게 아버지 곁에서 버섯 키우는 일들을 보고 자랐어요. 함께 영업도 하고 운전도 하면서요.”
아버지의 버섯 농사를 함께 하며 자란 윤 대표는 운명처럼 버섯농장의 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윤 대표가 내내 버섯만 보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 웹툰을 공부했고,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당연한 수순처럼 어머니와 함께 농장의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대표직을 맡게 됐어요. 처음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부담감도 크고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사실 많은 후계농이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다는데, 저는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일은 당연히 버섯 재배로 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윤 대표는 식구들의 생계가 걸린 버섯 농사를 이어가는데 별다른 고민 없이 임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국내 버섯 시장이 그것이었다. 그는 국내 버섯 시장의 침체에 맞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제품 다양화는 물론 새로운 판로 개척에서 가격 하락에 대응하는 차별화 전략까지 여러 고민이 시작되었다.
윤 대표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0년부터다. 그즈음 그는 미국의 대형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 자신이 개발한 버섯과자를 판매하며 화제를 모았다. 다른 농산물들과 달리 버섯을 활용해 과자로 만든 사례는 드물었기에 신선한 아이디어란 평가를 받으며 건강 열풍을 타고 인기를 얻었다. 사실 윤 대표가 버섯과자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당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딸 때문이기도 했다.
“2018년도 즈음이었어요. 제가 대를 이어 버섯 농사를 짓는데 제 딸이 버섯을 안 먹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왜 버섯이 싫은지 물었더니 말캉거리는 식감 때문이래요. 그래서 그 식감을 변화시키고 싶었죠. 그리고 대중적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스낵의 형태로 버섯을 확장하고 싶었어요.”
윤 대표가 처음 버섯스낵을 고민할 당시엔 국내에 버섯으로 스낵을 만든 사례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해외 사이트를 돌며 비슷한 대조군들을 찾아 주문해 먹어 보고 원하는 식감과 맛을 찾기 시작했다. 또 국가식품클러스터(현 한국식품산업진흥원)의 청년식품창업Lab에 참가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후 멘토링 등을 통해 시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고 6차 산업 인증과 관련한 패키지, 브랜딩 사업 등에 선정되며 ‘페이버립스’를 10개월여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운이 맞았던 것 같아요. 페이버립스(Favorips)는 Favorite(매우 좋아하는)와 Chips(바삭한 과자)의 합성어예요. ‘건강하고 맛있게 먹는 야채 칩’을 의미하죠. 제가 직접 재배한 버섯을 저온 진공 후라잉 공법으로 처리한 뒤 천일염으로 맛을 내는 방식인데, 짭조름한 맛의 주전부리로 인기를 끌게 됐어요.”
페이버립스는 이후 국내 유명 백화점의 팝업스토어에 참가해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하노이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 등에 참가하며 국내외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2020년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 입점을 필두로 2021년엔 유럽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 타오바오를 비롯해 베트남 하노이 등에도 수출하게 되었다.
“페이버립스를 수출하게 되면서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수출유망중소기업 인증을 받게 되었는데, 아마 그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도 지난 2월에 두바이를 다녀왔고, 다음 주엔 런던에 갈 예정인데 앞으로 수출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해요.”
사무실 벽에 걸린 다양한 인증패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윤 대표는 더 많은 사람에게 페이버립스를 알릴 예정이라며 희망찬 계획을 밝혔다.
믿음영농조합법인은 가족 법인으로 운영 중이다. 어머니와 누나, 윤 대표가 함께 일하며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꿔나간다. 비닐하우스 2개 동에서 1만여 개의 표고버섯 원목을 재배하는데, 해외 출장이 잦은 윤 대표는 2018년부터 스마트팜을 도입해 하우스 덮개를 걷어내고 물을 뿌리는 등의 일들을 스마트폰으로 연결해 진행한다. 또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도입해 참나무 원목이 아닌 배지 버섯재배를 실험 중에 있기도 하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첫 번째가 농지 구입 문제에요. 컨테이너 팜은 그런 부분에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컨테이너 팜을 사용해 농사를 짓게 되면 수직으로 쌓을 수 있다는 장점과 기후변화에 상관없이 1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윤 대표는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컨테이너 팜을 임대해 사업을 확장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으며 버섯재배 키트를 개발해 학생들의 체험활동에 이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저는 앞으로 농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요식업계에 백종원 씨가 등장함으로써 요식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그쪽 생태계에 변화를 주었잖아요. 저도 제 활동들이 농업에 대한 인식 변화에 영향을 주고 생태계에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윤 대표는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버섯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려 수출에 관심을 갖고 해외시장에 자꾸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달 페이버립스를 들고 두바이를 찾았던 그는 거리에서 K-팝이 울려 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는 K-푸드, K-팜도 수출 되는 날이 오리라 꿈꿔보게 되었다. 유년 시절 영지버섯을 재배하다 표고버섯으로 남들보다 먼저 전향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선견지명처럼 그 역시 새로운 개척 정신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농업의 미래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글 문진영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