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 씨는 현재 강원도 인제군에 머물고 있다. 산나물을 공부하기 위해 그가 강원도 인제군에 정착한 지 올해로 3년째. 평생 음식 공부를 해왔지만, 그에게 한식은 끝이 없는 탐구의 대상이다. 한식을 알아야 한국을 알고 우리를 안다고 말하는 그. 음식이 곧 우리고 우리가 곧 음식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우리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놀랍게도 강원도 인제군은 서울에서는 진 지 오래된 꽃이 아직 한창이었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점점 웅장해지는 산세를 보며 강원도에 온 것을 실감했는데, 여전히 길가에 또록또록 매달려 있는 꽃송이들을 보자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는 봄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씨는 40년 넘게 지냈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3년 전부터 강원도 인제군에서 지내고 있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강원도 인제군의 산자락에서 얻을 수 있는 수십, 수백 종류의 산나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음식평론가로서 여전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산나물연구실습소를 운영 중인 그는 인제군의 지역발전분야 대외협력관이라는 직함까지 더해 현재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일간지 기자 출신의 음식평론가로서 음식 공부에만 3, 40년 공을 들인 그는 ‘음식이란 무엇인가, 한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 안에서 《한식을 위한 변명》,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등 총 6권에 달하는 책을 펴내며 우리 한식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삼시세끼 한식을 먹고 있지만 사실 한식을 잘 모릅니다. 한식은 중국, 일본 음식과 완전히 다른 음식이고 세계에 있는 그 어떤 음식과도 매우 다릅니다. 된장 같은 발효음식이 우리 음식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사실 된장은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청면장(중국 된장)이 있어요. 된장을 두고 우리만의 고유음식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거죠.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1978년에 벌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간장 마케팅 회사를 세웠을 정도로 아주 일찌감치 산업화를 시작했거든요. 우리가 우리끼리 ‘우리 간장은 맛있어’ 할 때 일본은 이미 자국의 간장을 세계에 홍보하고 팔기 시작했던 거죠. 제가 한식 공부를 쭉 하다 보니까 우리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음식들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비빔밥입니다. 비빔밥의 가치를 알고 이를 정확히 설명한 인물은 뜻밖에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에요.”
황광해 씨는 백남준 선생이 1993년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을 예시로 들었다.
(전략) 대전엑스포 현장을 거닐면서 절로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비빔밥 문화이다. 즉 정보량이 폭주하는 현대전자문명에서의 명쾌한 해답이 혼합매체(Mix Media) 정신이다. / 우리나라는 멀티미디어에 자신을 가져도 됩니다. 비빔밥 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니까요.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알아요.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지요. 프랑스 비평가 장 폴 파르지에도 한국의 또는 백남준의 심볼은 비빔밥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비빔밥은 참여예술입니다. 다른 요리와 다르게 손수 섞어 먹는 것이 특색이니까요. 비빔밥 문화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안성맞춤이지요. 전자매체의 세계가 되어서 제일 덕 보는 것이 아마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게 자료를 찾아보면 1993년 무렵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이미 비빔밥을 아는 한국 민족이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선두가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비빔밥은 하나의 그릇 안에 밥과 다양한 고명, 장을 넣고 비빕니다. 담긴 재료들은 섞이고 부딪치면서 간이 배고 나물에는 밥의 기운이 배어들어요. 비빔밥은 그렇게 충돌하고 융합해 제3의 맛을 내는 음식입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다 뒤섞여서 나타났듯이요. 우리 역사를 찾아보면 15세기 무렵에 이미 ‘혼돈반’이라고 해서 비빔밥을 먹었던 기록이 있어요. 쌈밥도 마찬가지죠. 다양한 재료를 쌈에 싸서 먹으니 씹는 순간 바로 비빔밥이 되는 겁니다.”
황광해 씨는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를 체득하고 활용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라는 게 결국은 비빔밥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대로 앱을 다운받거나 내키는 대로 빼버리면서 내가 운용하기 편한, 나만의 운영체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비빔밥의 ‘융합’이 적용되고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변형’ 또한 스마트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황광해 씨는 우리가 스마트폰 강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며 “음식문화는 결국 우리의 정체성이다”라고 말한다.
황광해 씨는 우리 음식문화에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바로 산나물이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시집가기 전에 산나물 100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먹는 산나물 종류가 그렇게 많았고 살림하는 여자들에게 산나물은 아주 중요한 식재료였다는 소리지요. 우리 역사를 설명할 때 흔히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겁니다. 세계사를 보세요. 모든 나라들은 전부 궁핍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 유럽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대기근은 전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산나물을 먹지 않았어요. 먹을 수 있다는 걸 모르니까 못 먹은 거죠. 그런데 우리만 유독 ‘왕은 호의호식하고 백성은 가난하고 먹을 게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고들 해요. 우리는 먹을 게 없어서 산나물을 먹은 게 아니라 원래 산나물을 알고 잘 먹는 민족이었던 겁니다.”
황광해 씨는 우리의 단군신화를 보면 농경민족(환웅)과 수렵민족(곰)이 합쳐지고 단군을 통해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이 형성됐다는 것을 예시로 들며 우리에게는 산나물을 채취하고 먹는 DNA가 있음을 역설했다.
“홍대에 가면 세계의 모든 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식으로 변형되어 있어요. 우리는 떡볶이 하나를 먹어도 그냥 시키지 않아요. 계란 하나를 더 주문해서 넣고 떡을 추가하기도 하고 어묵을 빼기도 합니다. 그럼 주인아주머니는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기막히게 알아듣고 주문대로 내어주죠. 한때 모든 음식에 치즈를 넣어서 치즈떡볶이, 치즈닭갈비, 치즈라면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식문화에서도 다양성을 즐기고 한편으로는 변형을 하지 않으면 못 견뎌요. 그게 바로 우리에게 산나물을 먹게 하는 겁니다. 산에서 나는 나물도 맛이 다 다르거든요. 제가 이곳 인제에서 먹어본 취나물만 해도 7, 8가지가 돼요.”
같은 취나물이라도 곰취, 수리취, 단풍취, 미역취 등의 맛이 다르고 계절마다 맛이 다르다. 잎이냐 뿌리냐 줄기냐에 따라서 그 맛이 또 달라진다. 씁쓸하고 달착지근하고 쓰고 개운하고 화한 산나물을 즐기는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 민족이 맛의 다양성을 얼마나 즐기고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빔밥과 산나물이라는 두 개의 음식을 놓고 황광해 씨가 풀어주는 이야기는 실로 방대하고 깊었다. 한민족의 태초부터 근대의 역사,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의 역사까지 관통하는 그의 박식함은 새삼 우리가 한식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반성하게 했다.
“일본은 변하면 죽는 줄 알고,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 민족이에요. 때문에 우리 음식도 계속해서 바뀌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식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알게 되면 우리 사회, 우리 사람들이 보이니까요.”
글 이경희 사진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