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농사꾼이셨다. 집에 계시는 시간보다 들녘에 나가 밭일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지금처럼 봄이 오면 잰걸음으로 발길을 더욱 재촉하곤 하셨다. 눈을 뜨면 호미와 바구니를 옆에 끼고 아직 어둠이 모두 가시기 전부터 마치 밭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엄마는 허리가 휘도록 일만 하시는 농사꾼이셨다.
그런 엄마는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엄마가 꿈꾸고 살아왔던 농촌과 농업은 늘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시에 살면서도 가꾼다는 것을 잊지 못하는 나는 엄마의 품속과 같은 농촌의 생활이 봄이 되면 그리움과 사무침으로 다가와 기흥저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흥저수지와 연접한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216번지 일대는 요즘 엄마의 농촌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아침 물안개가 살포시 피어오를 즈음 모자를 눌러쓴 동네 어르신, 어린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나 다님 직한 중·장년, 그리고 장애우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곳은 비가 많이 와도 저수지가 넘치지 않도록 잠시 물에 잠길 수 있는 홍수면적으로 평소에는 물이 차지 않아 농사를 짓기도 하는데, 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용인시가 손을 잡고 어지러워진 쓰레기를 치우고 시민농장을 조성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홍수면적 부지에 텃밭을 조성하고 도시농업관리자를 채용하여 도시농부학교, 어린이농부학교 등 교육용 텃밭과 장애인 전용 텃밭을 운용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농작물 체험교육을 통해 농업의 소중함과 채소 등 먹거리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고, 청·장년층에게는 도시농업을 통해 귀촌과 귀농을 꿈꾸게 하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걷고 있노라면 무단 경작과 쓰레기가 난무하던 저수지의 한 귀퉁
이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담소도 나누면서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딸기, 파 등
농작물을 키우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지역발전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함께하는 시민농장으로 잘 탈바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고향 엄마가 자동차 트렁크에 배추와 호박, 콩, 쌀 등을 가득 채워주시던 모습처럼 시민농장 도시민들도 작물을 잘 키워 텃밭을 찾는 이웃끼리 잘 가꾼 농작물을 서로서로 나누면서 마음을 한가득 채워가는 지역 거버넌스가 활성화되길 응원해 본다.
글 최귀철(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 사업운영부장)정리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