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부터 유러피안 채소까지, 선택하는 작물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하래원 김형래 대표. 그의 성공은 시장의 변화를 한발 앞서 예측하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이제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힐링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니즈에 따라 유러피안 채소 농장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평택에 위치한 친환경 엽채류 농장 ‘하래원’을 찾았다. ‘하래원’은 여덟 개의 하천을 뜻하는 평택의 옛 지명 ‘하팔현(河八縣)’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예로부터 지형이 평평하고 물이 풍부하여 주민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전해진다. 평택에서 나고 자란 김형래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도우며 성장했다.
“부모님이 농약사를 운영하시면서 조그맣게 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모판을 나르고 농사일을 도왔어요. 그래도 직업으로 농사일을 하려고 생각하진 않았죠. 어릴 때부터 기타를 좋아해서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음악을 하다 보니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그만둔 후에도 농업이 차선책은 아니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미군기지 인근에 살다 보니 영어라도 배우면 굶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호주·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선진 농업 현장을 경험했고 주중에 열심히 일하면서 주말에는 취미를 즐기는 여유롭고 부유한 농업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공부 못 하면 농사지어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막연히 농사는 돈 안 되고, 힘든 직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농업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농업에서 미래를 본 거죠. 워킹홀리데이 때 만난 외국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네가 직업을 선택할 때 꿈이 없으면 지금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하는 일을 찾아서 해봐라. 그러면 나중에 빛을 볼 것이다’라고 하셨대요. 그 친구는 할아버지 말을 떠올려 배관공이 됐고, 호주에서는 꽤 대우받으며 일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는 농촌에서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농업이 인기가 없지만, 미래에 분명 각광받는 직업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귀농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평택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일구던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농업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농업대학에 입학했고, 교수님의 영향으로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딸기 농사는 첫해부터 대박을 쳤고 200평에서 시작해 1,500평까지 확장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평택에는 미군 기지가 있어 외국인과 해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주로 먹는 샐러드용 채소가 없어서 고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더불어 딸기가 불티나게 팔려나갈수록 생산량이 못 따라가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그는 1년에 한두 번밖에 수확하지 못하는 작물이 아닌 여러 번 수확이 가능한 작물을 고민하게 됐고, 지역 소비층이 원하는 샐러드용 채소로 눈을 돌렸다.
“원래 샐러드용 채소 재배는 딸기농장 구석에서 소규모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온라인마켓과 미군 부대에 납품하게 됐고, 찾는 곳이 많아지면서 딸기 농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샐러드용 채소인 유러피안 상추를 재배하기 시작했죠.”
김형래 대표의 선견지명은 탁월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지면서 매년 상추 파동이 일어났고 해가 갈수록 아삭아삭하고 단맛이 나는 샐러드용 채소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유러피안 상추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현재 하래원은 5,874㎡(1,780평) 규모의 하우스에서 12가지 유러피안 상추와 허브류를 ‘박막식 수경재배’ 방식으로 재배한다. 박막식 수경재배는 흙을 사용하지 않고 물과 수용성 영양분으로 만든 배양액 속에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말한다. 하래원은 1년에 5~60톤을 생산하여 마켓컬리, GS프레쉬 등 온라인마켓뿐 아니라 미군 부내 내 식당, 대형마트, 로컬마켓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수확하는 과채류와 달리 유러피안 상추는 한 달에 한 번씩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매출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그가 2018년 유러피안 상추 재배를 시작해 빠른 시간에 안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전략이 주효했다. 우선, 하래원에서는 ‘상추를 재배해 상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추를 재배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상추를 수확해 그대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이파리가 큰 것은 모둠쌈을 만들고, 작은 이파리는 샐러드믹스를 만들어 포장해 납품한다. 상추를 이파리 한 장 한 장 따지 않고 포기째 수확해 냉장고에서 최대 2주까지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수확은 했는데 납품처가 없어 물량을 버리게 되는 로스율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두 번째, 하래원의 상품은 구성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로메인의 경우 보통 많이 먹는 푸른색 로메인뿐만 아니라 적로메인을 섞어서 샐러드믹스를 조합하고, 뿌리를 잘라 포기째 포장해 통으로도 납품하여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 무엇보다 모종 기르기부터 재배, 수확, 포장, 출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전 과정에서 무농약 생산이 가능하고, 수경 재배한 덕에 수확한 뒤 세척하지 않아도 깨끗하다는 장점이 있다.
“저희 하래원은 수확한 채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소매상과 직거래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아침에 수확해 포장하여 오후에 출하하는 방식으로 품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형래 대표는 지난해 농업인의 날 행사에서 농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처럼 자타 공인 젊은 농업인으로 성공했지만,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채소 농장을 중심으로 식당과 카페 등을 열어 플랫폼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농장과 쌈밥집을 함께 운영하기 위해 5,500평 규모의 부지를 임대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소비자들이 농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시식도 하면서 다양한 채소를 경험한 후 식당으로 이동해 농장에서 생산된 채소를 즐길 수 있는 코스를 만들 계획이다. 이후에는 더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해 농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즐겁고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것, 이것이 김형래 대표의 더 큰 꿈이다.
“하래원은 현대인들의 텃밭이 되고 싶어요. 지역이 개발되고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흙을 밟고 싱싱한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것이 어렵게 됐잖아요. 저희 하래원은 소비자의 식탁까지 건강하고 싱싱한 채소를 전달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와서 직접 체험도 하고 여가도 보낼 수 있는 텃밭 같은 곳이 되고 싶습니다.”
김형래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은 충분히 미래를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젊은 농업인으로 미래가 촉망되는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 양지예 사진 봉재석 영상 전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