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 업계는 유독 종사자 연령층이 높은 산업이다. 그래서 1999년생 박혁진 대표가 양봉 업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많은 사람이 놀라면서 주목했고 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양봉산업을 변치 않은 가치를 지닌 미래 사업이라고 말하는 젊은 양봉인 박혁진 대표를 만나보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다. 밖에서는 좀체 보이지 않는 곳, 아카시아가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깊은 숲속에 다다르자 마치 음악 소리처럼 붕붕붕~ 소리가 들려온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이 공간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 선인양봉·종봉원이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젊은 박혁진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이한다. 처음 양봉 사업을 시작한 게 2021년이니까 이제 겨우 2년 차 사장이다. 그러나 태도며 미소에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양봉산업을 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아버지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고등학교 시절 양봉업을 하고 계셨거든요. 보통 농가들이 대를 이어 오래도록 사업을 영위하는 것에 비해서는 집안 사업 이력이 길지는 않은 편이에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양봉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사실이지요.”
고교 시절, 한창 진로를 고민할 때 박혁진 대표는 아버지한테 딱 두 가지를 물었다고 했다. “직업적으로 양봉이 어떤지, 그리고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봤어요. 내가 만약 아버지를 따라서 양봉을 한다고 하면 추천할 거냐고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워라밸까지 가능한 삶이라며 추천한다고 명쾌히 답하셨어요.”
박혁진 대표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한국농수산대학교 산업곤충학과에 입학했고, 그 안에서 세부 전공으로 양봉을 선택했다. 한우학과가 평균 40명씩 한우전공자를 배출하는 데 비해 양봉은 자신이 유일했다고. “양봉 업계 평균연령이 65세 이상인 이유가 있어요. 기존에 하시던 분들은 계속 나이가 들어가시고 새로 유입되는 인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봉을 전공한 박혁진 대표는 대학에서 과 대표를 할 만큼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했고 공부 또한 열심히 했다. “2학년 때 실습을 농촌진흥청 꿀벌육종연구실로 나갔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이 제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양봉인으로서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할지 보다 분명하게 방향을 잡았어요.”
흔히 사람들은 양봉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꿀벌이 모아온 꿀을 채집해 판매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박혁진 대표의 양봉 사업은 여기에 하나를 더 얹는다. 바로 혈통 좋은 여왕벌을 길러 다른 양봉원이나 꿀벌이 필요한 농업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선 사업이지만 여왕벌의 품질은 꿀의 생산과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양봉인들이 순수 혈통을 가진 좋은 여왕벌을 확보하는 것은 농업에서 우수한 종자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박혁진 대표의 남다른 능력이 드러난다.
“힘 좋은 일벌 자식들을 여왕벌이 많이 낳아줘야 양봉농가 소득이 증대합니다. 그런데 여왕벌이 잡종인 수벌하고 교미하면 거기서 나온 일벌들은 좋은 유전형질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거기서 더 대가 내려가면 나중에는 순종이라고 볼 수가 없는 벌들이 계속 태어납니다. 당연히 힘이 약하고 꿀을 채집해 오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여왕벌을 순종으로 유지하는 작업이 꽤 까다로운데 저희 농가에서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체계적으로 키워서 판매를 하는 거죠.”
선인양봉·종봉원은 지난해 농촌진흥청과 합동 연구할 때 우리나라 순수품종인 장원벌을 갖고 와 키우고 번식시키면서 관련 데이터를 전달하고, 대신 장원벌 소유권을 갖는 등 기관과의 협력관계도 꾸준히 구축하고 있다.
사실 박혁진 대표가 꿀 생산과 함께 종봉, 즉 여왕벌을 키우는 것은 두 가지 수입원을 마련해 사업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다. 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습도와 후덥지근한 기온이 유지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요즘 같은 극심한 기후변화 시대에 농가 입맛에 맞는 날씨를 기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애들이 꿀을 채집하러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에 기온이 뚝 떨어져요. 올봄에 그런 날씨가 꽤 많았죠. 그럼 꿀벌들이 제대로 돌아오질 못합니다. 아카시아나무도 냉해를 입어 꿀을 아예 만들지 못하기도 하고요. 결국 꿀 생산 하나만을 바라보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커지는 거죠. 이 때문에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했습니다.”
박혁진 대표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고 있다. 바로 기후변화로 인해 꿀벌이 사라지고, 인류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대한 현실적 문제와 담론에 맞서는 일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꿀벌이 줄어들고 양봉농가가 피해를 보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고도의 산업화로 인해 일어나는 기후 문제는 당장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꿀벌의 상태에 집중하고 있어요. 응애라는 질병,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도 버틸 수 있는 건강한 아이를 만들어 이 위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넘기고자 하는 겁니다. 약한 애들이 아무래도 크게 반응하니까요.”
실제로 선인양봉·종봉원은 타 농원들이 꿀벌 개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었을 때 최소한의 피해로 지켜낼 수 있었다. 박혁진 대표가 받아놓은 특허도 꿀벌응애와 관련된 것으로 친환경 약재를 이용해 응애를 방지하고, 결과적으로는 꿀을 섭취하는 최종 소비자들의 건강까지 지켜내는 기술로 각광 받고 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당연히 양봉업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쉼 없이 이어지고, 꿀의 판매나 마케팅 방식도 트렌드에 따라 바뀌었다. 박혁진 대표의 역할이나 그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에 기인한다.
“양봉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사업입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요즘, 꿀에 대한 수요 역시 꾸준히 있고요. 제가 양봉업을 흔들리지 않는 미래산업이라고 보는 이유예요. 많은 젊은이들이 양봉업에 관심을 갖길 바랍니다.”
지구를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는 꿀벌, 그 꿀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양봉인 박혁진 대표. 이 둘이 닮은 것은 각자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이 아닐까? 박혁진 대표와 그의 꿀벌들이 만들어 낼 달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글 이경희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