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면의 블렌딩

농어촌 체크인

지키고 보전해야 할
‘국가중요농업유산’과 ‘세계중요농업유산’

국가중요농업유산이란 무엇인가

전국 곳곳에는 그 지역의 환경과 자연 여건에 맞추어 적응하며 일구어 온 농업의 전통과 문화가 남아있다.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와 변형, 그리고 멸실이 있었지만, 농촌의 곳곳에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보석 같은 농업문화가 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대대로 전승되어 온 지혜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땅을 일구고 경작하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삶의 방식들이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인류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영위해 온 농경 활동의 역사 속에 수 세대에 걸쳐 축적된 전통 지식 및 실천을 토대로 한 농업시스템을 농업유산이라 부른다.
우리나라는 2012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지역의 환경·사회·풍습 등에 적응하면서 오랫동안 형성해 온 유형·무형의 농업자원 중에서 보전할 가치가 있는 농업자원에 대해 지정한다. 역사성과 지속성을 가진 농업 활동으로 농산물의 생산이 지역 주민의 생계유지에 이용되고 있는지, 고유의 농업기술 또는 농업 활동과 연계된 전통 농업문화가 이어지고 있는지, 농업 활동과 관련된 특별한 경관을 형성하고 생물 다양성의 보존 및 증진에 기여하는지,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이를 아끼고 가꾸고 있는지를 두루 검토해 보고 그 내용이 국가대표급이면 지정하게 된다. 2013년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밭담을 시작으로 지난해 서천 한산모시 전통농업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총 18군데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그간 지정된 국가중요농업유산을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특정 작물의 재배나 이를 가공한 특산물 생산을 오랜 기간 이어온 경우이다. 구례 산수유 농업, 담양 대나무밭, 금산 인삼 농업, 하동 전통 차 농업, 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완주 생강 전통 농업시스템, 상주 전통 곶감, 그리고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는 특별한 시설이나 농업환경을 조성한 유형이다.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밭담, 의성 전통수리 농업시스템,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시스템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특정한 농업환경에 적응하면서 이루어 온 지역의 특별한 총체적 농업방식이다. 울진 금강송 산지 농업과 울릉 화산섬 밭 농업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 국가중요농업유산 속에는 해당 작물을 재배하는 지식과 경험이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오고 있고, 농업 활동과 동화된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또한 환경에 순응하거나 대응하여 특별한 시설을 조성하기도 하고 심지어 주거유형에까지 영향을 주는 등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청산도 구들장 논

청산도 구들장 논

제주 밭담 농업시스템

제주 밭담 농업시스템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원래 농업유산제도는 UN 산하 국제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가 2002년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 제도를 도입한 데서 출발한다. 이 제도는 UN이 주창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농업 부문 프로젝트의 하나로 시행되었다. 일반적인 농업유산의 개념에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의 이념을 추가하여 새롭게 농업유산을 정의하고 이 제도를 시작한 것이다. 세계중요농업유산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인류의 농업 활동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전통적 토지이용시스템과 이로 인해 형성된 경관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식량과 농업을 위한 생물 다양성과 유전자원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도모하는 것인데 전통적 농업시스템, 고유한 경관, 생물 다양성은 세계중요농업유산을 구성하는 세 가지 주요 핵심 요소를 이룬다.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가 생물 다양성과 천연자원의 보존 및 지속 가능한 사용을 강화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줄여 그 결과로써 식량 안보와 빈곤 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2023년 6월 현재 전 세계 24개 나라에서 74개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이 등재되어 있으며 15개 지역이 등재 지정을 위한 소정의 절차를 밟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섯 군데가 지정되었는데, 2014년에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 밭담이, 그리고 2017년 2018년 2020년에 하동 전통 차 농업, 금산 인삼 농업, 담양 대나무밭 농업이 각각 등재되었다. 그리고 울진 금강송 산지 농업이 최근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구례 산수유 농업이 준비 중에 있다.
지정된 세계중요농업유산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척박한 토지나 부족한 물 등 열악한 환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안된 고유한 농업 방식들이다. 우리나라 청산도의 구들장논, 중국의 하니 다랑이논, 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 오아시스 시스템, 물 위에 인공섬을 띄워 농업을 하는 멕시코의 치남파 시스템 등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특수한 윤작기술이나 수확기술처럼 특별한 농법을 지닌 농업시스템들도 지정되었다. 인도 카시미르 지방의 사프란 재배, 이탈리아 아씨씨와 스폴레토 지역의 올리브 농업, 일본 시즈오카의 와사비 재배, 그리고 금산의 인삼 재배 등이다. 이밖에 임업과 농업, 어업과 농업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되는 영농시스템들도 지정되었는데, 탄자니아의 키함바, 중국 저장성 롱시안의 물고기 농업 시스템, 일본 쿠니사키반도 우사 지역의 임업 농수산 통합시스템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구례 산수유 농업

구례 산수유 농업

담양 대나무밭템

담양 대나무밭

금산 인삼 농업

금산 인삼 농업

하동 전통 차 농업

하동 전통 차 농업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와 유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제도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제도가 있다. 두 제도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제도 중 자연유산은 대체로 자연적 생성물을 대상으로 하고 문화유산은 인공과 자연이 결합된 유적지를 주 대상으로 한다. 이에 반해 세계중요농업유산은 농림어업활동에 의해 인공적으로 형성된 생산 활동 지역이 과학적, 심미적,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존할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농어업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주민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또한 그 결과로써 생물 다양성의 증진이 촉진되어야 하는 점을 중시한다.
그밖에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에 추가한 복합유산과 문화적 경관 제도가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현재 농어업 활동이 진행되고 있어야 하고 주민과 환경의 동반적 적응 과정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복합유산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문화적 경관은 세계중요농업유산과 많이 유사하지만 문화적 경관이 유적을 중심으로 한 경관을 보다 강조하는 데 반해 세계중요농업유산은 생산 및 생활 시스템과 생태적 특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울진 금강송 산지농업

울진 금강송 산지농업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부안 유유동 양잠농업

울릉 화산섬 밭 농업시스템

울릉 화산섬 밭 농업시스템

국가중요농업유산은 정지된 유물이 아니라 동적인 유산이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정지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동적인 유산이다. 즉 농업유산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유산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여전히 농업 활동을 유지하고 생계에 도움을 받고 있을 때 농업유산으로 지정된다. 이러한 특징을 FAO에서는 동적 보전(dynamic conservation)이라 부른다. 동적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농업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으며 바로 그 동적인 상황 때문에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농업유산의 가장 큰 특징이다. 농업에서 원형을 보전하여 지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현재의 방식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적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농업유산제도는 원형 보전과 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보전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지향한다.
대부분 국가중요농업유산의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다. 유산은 개인이 지니고 그 편익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셈이어서 국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매개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이다. 농업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데에는 많은 수고와 노력, 그리고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이 수반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부담은 해당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해당 유산은 금방 위험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농업유산 소유자가 새로운 농업 여건 변화에 직면하여 농업유산을 보전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용도로 전환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보전하는 데 따른 이익이 다른 용도로 전환했을 때보다 크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농업유산이 지속 가능하게 보전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우리 사회가 나누어 부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입장료를 내거나 직불금을 지급하거나, 혹은 농업유산브랜드가 붙은 제품에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나아가 농업유산지역에 대한 관광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의성 전통수리 농업시스템

의성 전통수리 농업시스템

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

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이유직(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농업유산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