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홍수와 가뭄, 폭염 등으로 지구 환경이 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팜이 대세로 떠오른 요즘, 해발 320m 첩첩산중의 지리산 뱀사골 자락에서 스마트한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로포닉스(분무수경재배)를 활용해 채소를 기르는 ‘김준섭, 성경미’ 부부. 이들의 귀농생활을 들여다보았다.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산세를 따라 천왕봉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보면 실상사 인근 지리산살래농장과 만나게 된다. ‘산내면’에 속해 있지만 사는 사람들 모두 ‘살래면’이라고 말한다는 그곳에서 김준섭, 성경미 부부는 지리산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지리산살래농장’을 만들어 귀농했다.
천왕봉을 바라보는 데 자리한 농장은 일천여 평 부지에 600평 규모의 재배동과 육묘동 등 총 3동의 하우스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생산하는 작물은 무농약 샐러드 채소인데, 하반기엔 공심채 위주로 계약생산할 예정이다.
농장을 찾아가는 동안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유난히 맑다 싶었는데, 농장의 채소들 모두 ‘먹는 물 수질검사’ 적합 판정을 받은 지하수를 사용해 에어로포닉스 방식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에어로포닉스는 농작물 뿌리에 직접적으로 물과 양액을 섞어 분무하는 농법으로 토경재배의 5% 이하라는 적은 양의 물을 사용해 3배가량의 많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김준섭 대표는 처음부터 에어로포닉스로 농사를 짓겠다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 생각했던 방식은 아쿠아포닉스였어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싶었기 때문에 발품을 팔며 그쪽 분야를 많이 알아봤는데, 귀농 직전에 최종적으로 시설을 만들려고 하니까 설치 비용이 상당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에어로포닉스를 찾게 되었죠. 설치 비용도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고 에너지도 더 적게 쓰는 방식을 찾은 겁니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가능하겠다 싶어 에어로포닉스로 농사를 짓는 분한테 직접 가서 배우고 우리 농장에 맞춰 만들게 되었습니다.”
2020년 귀농한 부부가 합심해 만든 농장은 모든 것이 친환경적인 사고로 이루어졌다. 에너지를 적게 쓰기 위해 모터를 동시에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었고, 지하수를 이용해 냉난방을 하고 있다. 또 채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양액을 데우고 식히는 시스템도 공기열히트펌프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내년에는 저탄소 인증농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부부가 산내면에 정착하게 된 것은 사회주택 때문이었다. 사회주택 관련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준섭 대표가 농촌형 사회주택 부지로 예정되어 있던 산내면을 둘러본 뒤 먼저 자리를 잡고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추진되던 일들이 무산되면서 농사도 짓고 일자리도 나누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는 계획은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김준섭 대표는 살래농장을 만들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농업교육도 듣고, 농사짓기도 하며 이곳에 정착했고, 아내 성경미 씨와 아이들도 함께 이주하게 되었다.
사실 김준섭 대표는 일식 요리사 출신이다. 젊은 시절엔 컴퓨터 관련 일도 조금 했었고, 결혼 후엔 일식 요리사로 일하다 독립해 복어요리점도 운영했다. 그리고 몇 해 동안은 건설업과 인테리어 일도 했는데 그렇게 다양한 직업들을 거치며 지금의 농부가 되
었다.
“인생이 참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짓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모든 경험이 농사짓는 데 모두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 덕분인지 그는 농장시설 중 하우스만 시설업체에 맡기고 나머지는 아내와 아들, 동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컨설팅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화해 새롭게 만들다 보니 힘도 들고 몸도 축나긴 했지만, 이러한 소식을 듣고 기술을 배우러 오겠다는 이들이 생겨 요즘은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올해는 작년 대비 매출이 많이 줄어 고심했는데, 한 쌀국수 체인점으로부터 공심채 계약재배를 제안받아 가을부터는 공심채를 주로 생산할 예정이다. 농장을 짓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친환경 관련 농사 정보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고민했고, 농장시설과 관련된 설비를 직접 하다 보니 어깨에 탈이 나기도 했다.
“무농약인증 친환경채소, 지리산 뱀사골 청정지역 재배 같은 말을 하면 모두들 채소가 잘 팔리고 제값 받고 파는 줄 아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편이 아니에요. 사실 친환경 농사지어서 직거래하지 않는 이상 제값 받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요.”
이렇듯 농사짓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부부는 고3인 아들에게 농부가 되라고 설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부란 직업이 정말 괜찮은 직업이기 때문이란다.
“돈 많이 벌고 좋은 차 타는 그런 의미에서 괜찮은 직업이란 게 아니라, 사계절을 몸으로 받아내며 식물을 키우다 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알 수 있게 되는 그런 직업이니까요. 앞으로 기후 위기로 먹을 것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 현실에서 농부란 결국 생명을 잇는 직업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농부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좋은 직업이지요.”
오래전 귀농을 결심하고 큰딸이 대학에 가면 시골로 가자는 계획을 실천해 귀농을 실현한 김준섭, 성경미 부부. 부부는 정성 들여 키운 쌈 채소를 지역사회에 기부하며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 스티로폼 박스나 개별포장 대신 종이상자에 포장한 뒤 뿌리 처리를 해서 2주 이상 보관이 가능한 채소로 만들었다.
농산물을 나누는 방식과 태도에서도 이웃 사랑과 생명 존종의 마음을 엿보게 하는 김준섭, 성경미 부부는 오늘도 ‘하루 8시간 주5일 노동’의 농사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반려견 오백이와 반려묘 후추, 소금이와 함께 농부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글 문진영 사진 홍승진 영상 장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