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면 대파인데 먹으면 달달한 양파 맛이 나는 마법! 국산 양파를 품종 개량하여 개발한 국내 토종 작물 양대파의 마법이다. 당진에서 양대파 농사를 짓는 물조리자리 영농조합법인 김도혜 대표는 양대파 재배기술로 특허를 출원하여 주변 농가와 상생하고 K-농작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태풍이 한반도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여름내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였다. 하늘이 한 뼘은 높아지고 제법 청명해진 것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충남 당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도혜 대표는 10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인 양대파 농사를 위해 남들보다 먼저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양대파는 10월에서 5월이 제철이에요. 양대파 농사를 짓지 않는 한여름에는 상추나 가지, 고추 같은 작물을 키우고 있어요. 판로를 찾기 어렵고 시장에 나가도 제값을 받기가 어려워 지금은 농장을 찾는 지역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싱싱한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농장을 찾은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테랑 농사꾼 아버지의 눈에는 마땅한 판로도 없이 수익성 없고 품이 많이 드는 채소를 키워 저렴한 가격으로 나눠주다시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지만, 김도혜 대표의 의중을 알기에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사실 양대파는 시설하우스 내에서 일 년 내내 재배가 가능합니다. 수확한 양파를 휴면타파하기 위해 저온 저장을 했다가 시기에 상관없이 저장고에서 꺼내서 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두 달, 겨울에는 세 달 정도면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판로만 있다면 일 년 내내 양대파를 생산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양대파의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아 지금은 제철에만 키우고 있어요. 농장에 찾아오는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양대파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상추나 가지 등의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양대파는 구가 형성된 양파를 5~7쪽으로 분열시켜 재배하는 형태로 뿌리부터 잎까지 섭취 가능하다. 생긴 건 대파와 비슷하지만 양파 향과 맛이 나는 양대파는 대파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양파처럼 달달한 맛을 낸다. 고기를 구울 때 곁들이면 달큰한 맛이 일품이고 아삭한 식감이 좋아 장아찌나 김치로 담가 먹어도 맛이 좋다. 채소를 먹지 않는 아이들도 골라내지 않고 잘 먹어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고 파인다이닝 쉐프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 고급 식재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7년 전 김도혜 대표가 재배 방법을 개발하여 특허를 낸 신작물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맛보면 또 찾을 수밖에 없을걸요”라고 말하는 김도혜 대표의 얼굴에 양대파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김도혜 대표는 충남 예산에서 양파 농사짓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청년농부가 되었다. 양파는 그해 작황에 따라 가격 낙폭이 크고 공급량 조절에 실패할 경우 갈아엎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김도혜 대표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을 모두 지켜보며 자랐고, 출하를 기다리다 싹이 나면 버려지는 양파가 아까워 양파에서 자란 싹으로 동생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양대파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음식을 먹을 때 파를 다 골라내고 먹는 동생이 양파 싹을 잘 먹는 것을 보며 양대파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고, 경호원을 꿈꾸던 여고생은 그렇게 양대파 재배 기술 연구에 뛰어들었다.
김도혜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양대파 연구를 시작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양대파 재배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였다. 특허는 선진화된 기술을 인정받아야 하며 경제성, 차별성, 특이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양대파는 일 년 동안 2~3차례 재배가 가능하여 경제적이고 맛의 차별성과 특이성으로 특허 취득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가정에서 양파를 오래 보관하면 싹이 자라는데, 개량을 통해 양대파로 품종 개발을 한 것은 김도혜 대표가 처음이다.
양대파는 시설을 굳이 크게 하지 않아도 되고, 병충해에도 강해 약을 거의 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산량이 확대되거나 규격 미달로 상품성이 없어 처분해야 했던 양파를 양대파로 키울 수 있어서 양파 농가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김도혜 대표는 특허 출원 후, 한국농수산대학교 채소학과에 입학해 양대파 재배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고, 현재 물조리자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양대파 재배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깜깜한 밤하늘의 길라잡이가 되는 물조리자리처럼 함께하는 농가들의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현재 20개 정도의 농가가 물조리자리 영농조합법인과 뜻을 같이하고 있죠. 양대파에 대한 특허권을 제가 가지고 있지만, 양대파를 함께 기르는 주변 농가에 로열티를 받지 않고 있어요. 조합에서 판로를 개척하여 유통 과정을 돕고 농가 소득을 보장해 주며 함께 상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물조리자리 영농조합의 양대파는 롯데마트, 롯데슈퍼, GS, 홈플러스, 마켓컬리 등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에서 만날 수 있다. 재작년 60t 정도 생산하여 조합 매출 3억을 찍은 이후 양대파를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서 수익도 늘고 있다. 한 번 맛보면 또 찾을 수밖에 없다던 김도혜 대표의 말처럼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양대파가 조금씩 입소문이 날 무렵 시장에 카피 제품이 나와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지자체 이름을 걸고 대량으로 시장에 유통되다 보니 김도혜 대표가 혼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품성이 좋지 않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 양대파의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양대파를 스페인 채소 칼솟으로 소개하며 우리나라 채소가 아닌 외국 채소의 아류로 만들어 버린 것은 김도혜 대표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김도혜 대표는 이런 양대파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전국 축제를 다니며 양대파를 홍보하고, KBS 인간극장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으로 고군분투하였다.
“양파에서 난 싹으로 양대파를 재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TV에까지 출연하며 양대파가 스페인 칼솟에서 가져온 게 아닌 국내 토종 채소라는 것을 알리려고 했던 것은 양대파 농사를 함께 짓고 있는 농가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어요. 지금도 시장에 유사한 양대파 제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오로지 물조리자리 영농조합법인에서 출하되는 양대파만이 우수한 품질의 원조 양대파입니다.”
김도혜 대표는 당진을 중심으로 양대파 축제를 넘어 농업인의 축제를 열고 농업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특히 토종 작물인 양대파를 전 세계에 K-푸드의 대표 작물로 알리고 싶은 원대한 계획도 있다.
“지금은 양대파를 조금 더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농장 옆에 쇼룸을 만들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와서 양대파를 직접 수확하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거예요. 앞으로 법인을 더욱 안정시켜 함께하는 농가가 정당한 가격을 보장받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양대파 많이 사랑해 주세요!”
글 양지예 사진 김종남 영상 장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