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면의 블렌딩

삶의 곁에 사람

“우리 궁궐은 우리의 정신입니다”

이향우 문화재지킴이

궁궐에 가면 궁만큼이나 사람들이 집중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궁궐해설사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속한 시각에 등장해 관람객들을 타임머신을 탄 듯 조선시대로 안내하는 그들은 궁궐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사)한국의재발견 소속 문화재지킴이로 수많은 궁궐해설사들을 양성하고, 현장에서 관람객들에게 궁궐이 품고 있는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향우 선생을 만나보았다.

교사에서 문화재지킴이로 거듭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주말, 창덕궁은 우산을 쓴 채 오가는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무리는 치켜든 우산이나 둘러 입은 우비가 번잡스러울 법도 한데 옹기종기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들이다. 궁궐해설사를 둘러싼 이들은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는데, 시종일관 반짝거리는 눈으로 창덕궁에 서린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이채로우면서도 흐뭇하다. 그 모습을 또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향우 선생이다. 23년간 몸담아왔던 교직에서 퇴직한 이후 지금껏 궁궐지킴이,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는 그에게 이 같은 풍경은 볼 때마다 색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저는 1999년에 23년간 몸담아왔던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했어요. 조각가로서 제 작업에 더 몰두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가 평소에 저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 있었습니다. 내게 만약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기회를 찾겠다는 것이었어요.”
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목욕이나 식사 봉사 같은 육체적인 봉사는 엄두를 못 냈지만, 그는 당시 설립한 지 갓 1년이 됐던 (사)한국의재발견의 회원이었던 터라 그 인연을 시작으로 궁궐에서 일반 관람객을 상대로 궁궐 해설을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궁궐 해설을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이향우 선생도 꼬박 3개월을 수험생처럼 궁궐 공부에 매달려야 했고, 이 과정을 끝내고 시험도 봤다. 면접까지 거쳐 궁궐 해설을 하게 됐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궁궐에 대한 정보와 새로운 사실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해설사들과 함께 공유하고(지금도 그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궁에 대한 지식과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한 노하우도 습득해야 했다.
“해설이라는 게 사실 교사라는 직업과 좀 닿아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 아는 것을 제대로 전달해 줘야 하는데, 호흡이 불안정하거나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한다면 아무래도 전달력이 떨어지잖아요. 하지만 교사는 일단 그런 면에서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연령대도 지식도 천차만별인 관람객들을 두루 이해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궁궐의 전통적인 역사 용어는 어른들한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거든요.”

민간외교의 선봉에 서다

쉽게,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전달하는 궁궐 이야기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궁궐 관람은 그 의미와 깊이가 남달랐고 당연히 재미있었다. 정해진 시간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이가 모여들었는데, 보람과 성취도 그에 따라 커져만 같다. 긴 시간 궁궐 해설을 하다 보니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많이 생겼다.
“처음 궁궐 해설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과연 저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까, 하는 의구심 어린 눈길을 많이 받았어요. 관람객들도 궁을 안내해 준다고 하니 돈을 줘야 하는 거냐고 물어오셨고요. 사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고 자긍심이 부족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궁궐 해설을 하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불어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요.”
이향우 선생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두 명의 관광객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들어온 5살짜리 꼬마였어요. 놀이동산이나 공원을 마다하고 궁궐을 자청해서 찾아온 어린 친구였지요. 엄마가 되려 아이에게 이끌려 궁에 온 경우였는데, 어찌나 눈을 빛내면서 해설가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던지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 니다.”
또 한 명은 유럽에서 날아온 벨기에 여성이었다. 기술 자문을 위해 한국에 출장을 왔던 그가 한국어 해설 시간을 기웃거리던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줄까요?”라는 말을 건넸던 것으로 시작된 인연. 이향우 선생은 그에게 1인 해설을 자청해 궁궐 구석구석을 돌면서 곳곳에 깃든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나중에는 자신도 벨기에까지 날아가 그 여성과 그 가족들을 만나고 마찬가지로 벨기에의 유적지를 안내받으며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벨기에 친구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민간외교의 무게가 다시 한번 느껴진다.

365일 다른 우리 궁궐, 자주 찾아와 주세요

이향우 선생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궁궐 해설을 하면서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도서 시리즈를 꾸준히 펴냈다. 경복궁, 창덕궁, 종묘, 덕수궁, 창경궁, 문양 여행까지 활자로 서울 5대 궁궐과 그 외 문화유산을 두루 돌아보면서 대중들에게 재미와 역사를 함께 선물해 온 그에게 이 책 작업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우리 궁궐이나 문화유산을 알려주는 가이드북, 소개 책자 등은 굉장히 딱딱하게 쓰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가깝게 두고 자주 보게 되는 책은 아니었지요. 저는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미술 전공자로서 궁궐에 굉장히 자주 오고 또 궁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조금 더 남다른, 깊이 있는 관점으로 보게 됐고, 이를 글로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향우 선생은 책을 집필하면서 청덕궁 내 선정전에 얹힌 청기와를 만든 염료와 관련된 《광해군일기》의 기록이 잘못 기재되어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발굴학자, 국립중앙박물관 복원팀, 기와를 만드는 도공까지 만나 문의하고 공부했다는 그의 열정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무수한 시간을 궁궐에서 보내며 수많은 관람객을 만나고 있는 그는 2023년 현재, 강성해진 대한민국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 실감하는 인물이다. 중국, 일본인에 국한됐던 예전과 달리 이제 동남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랍 등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은 우리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궁에 얽힌 역사나 문화 이야기에 한껏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경계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궁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에 대한 우려이지요. 실제로 과거에는 미스코리아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향원정 다리에 줄지어 서서 사진을 찍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야말로 맥락 없는, 의미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이벤트였지요. 바라는 게 있다면 문화기획자들이 궁궐 행사를 기획할 때는 궁 관계자들과 사전에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이향우 선생은 우리 시대의 궁은 ‘우리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대대로 이어 내려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궁이라는 것이다.
“우리 궁에 자주 오세요. 궁은 한번 와본 걸로는 부족한,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가진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궁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경희 사진 홍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