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면의 블렌딩

농어촌 체크인

공장에서 키우는 고기,
배양육

우주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식량이다. 영화 ‘마션’에 나온 것처럼 주거 가능한 기지를 만들려면 식량을 스스로 조달해야 할 텐데, 식물은 어떻게 한다고 해도 고기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 사람도 간신히 싣고 갈 우주선에 가축과 건초의 자리를 내기는 어려울 터다. 그래도 명색이 인류를 대표하는 탐사대인데, 신선한 스테이크 한 번쯤 먹는 사치는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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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을 피하는 고기, 환경을 위한 고기

신선한 고기를 마치 농작물처럼 재배하겠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SF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처럼 보이지만, 국제특허를 받은 지 벌써 24년째 접어드는 제법 오래된 기술이다. 199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빌렘 판 알렌 교수가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고 국제특허를 출원한 바 있다.
판 알렌 교수의 발표 이후,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배양육에 주목했다. 거의 모든 동물은 섭취한 음식물의 40% 정도만 활용할 뿐, 나머지는 배설물로 내보낸다. 따라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상위 단계로 갈수록 에너지 효율은 떨어진다. 즉 곡물보다 고기를 생산하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육류 생산을, 가축을 키워 도축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고기 세포를 배양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최대 96%의 온실가스와 45%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유통 경로가 짧아진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오늘날 육류 가격의 상당 부분은 유통과 가공이 차지한다. 만약 배양액에서 키워내는 육류가 널리 보급된다면 축사에서 도축장으로, 도축장에서 가공공장으로 보내는 복잡한 과정 대신 소비지 근처의 위생적인 ‘고기 공장’에서 키워낸 고기를 근거리 운송하면 되니 운송에 드는 에너지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배양육은 저탄소 발전원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지속 가능한 육류 생산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위생적이며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장점은 우주 시대 장기간의 우주여행이나 행성 기지에도 적합한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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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육의 선구자, 판 알렌 교수. 그는 생명의 희생을 최소화한다는 신념에 따라 배양육 기술을 개발했다.
© NewHarvest

높은 이상, 차가운 현실

이처럼 각광받는 배양육이지만, 처음에는 뜬구름 같은, 먼일처럼 여겨졌다. 2013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마르크 포스트 교수가 세계 최초의 배양육 패티를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배양육이 실제 고기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패티 1인분에 자그마치 25만 유로, 우리 돈으로 당시 3억 3천만 원이나 들었다는 사실에는 더 놀랐다.
가격이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배양육을 만드는 데 무척이나 손이 많이 가는 데다 들어가는 재료도 비쌌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주로 근육조직으로, 근세포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근세포는 분화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 활발하게 증식하지 않는 데다 근세포가 일정하게 층을 이루도록 성장시켜야 한다. 미생물을 배양하듯 세포를 배양액에 넣은 ‘수프’ 상태로는 온전한 고기를 만들 수 없는 셈이다.
포스트 교수는 이를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했다. 우선 임신한 소를 도살하거나 소의 태아가 유산할 때 얻을 수 있는 소의 태아 혈청(FBS)을 배양액으로 사용해서 성장인자를 풍부하게 공급했다. 한편으로는 충분한 양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배양한 세포 일부를 분리하여 다시 처음부터 배양함으로써 여러 층의 근육조직을 층층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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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포스트 교수가 선보인 배양육 패티 © Mosameat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처럼 복잡한 과정 때문에 초창기 배양육은 형편없는 수율을 자랑했다. 근육줄기세포 하나를 FBS에서 배양하면 10억분의 3~4g 정도의 근육조직을 얻는다. 100g을 만들려면 100억 개가량의 근육 줄기세포를 배양해야 한다. 배양육 패티를 선보였을 때, 포스트 교수 연구팀은 2만여 개의 근육조직을 모아야만 했다.
기대를 모았던 에너지 효율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UC데이비스의 연구에서는 배양육 생산 공정이 전통적인 축산업 대비 4~25배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연구에서는 배양육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만 고려했기에 적게 측정됐지만, 배양육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원료, 유통 및 가공을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을 고려하면 전통적인 축산업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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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교수가 활용한 배양육 공정. 동물에서 근육을 추출하고 조직 줄기세포를 분리해 낸 후,
소 태아 혈청을 배양육으로 사용해 한 층씩 성장시켜야 한다. © Maastricht Univ.

두 가지 혁신이 불러온 배양육 르네상스

학계는 일부 조심스러운 입장인 데 반해 시장은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배양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경제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 ‘미트 패리티’라는 말이 있다. 배양육의 경제성이 점점 향상되어 축산육을 웃도는 시점을 말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한국 한정으로 2022년부터 부분적으로 미트 패리티가 달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21년 12월, 한국의 배양육 스타트업인 ‘셀미트’가 배양육 독도새우를 선보였다. 2022년 7월에는 시식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식회에서 셀미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독도새우 배양육의 생산 단가가 100g당 500원이라고 한다. 발표대로라면 국내 유통 가격의 절반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해조류를 이용하여 배양육을 만드는 국내 스타트업, ‘씨위드’는 2021년 2월 배양육 소고기 단가를 100g에 2,000원까지 끌어내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수준이면 국내 유통되는 한우와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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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셀미트가 시식회에 선보인 독도새우
배양육을 이용한 새우튀김과 새우버거. © 셀미트

포스트 교수 이후 불과 10년 만에 이처럼 극적으로 단가가 낮아진 이유는 배양육의 두 가지 문제가 나름 해결됐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미국의 배양육 기업인 모사미트가 대량생산 가능한 ‘무혈청 배양액’을 내놓으면서 높은 가격의 주원인인 FBS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배양액을 바꾼 것만으로 기존 방식에 비해 생산 단가가 1/88까지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식용 물질로 만든 입체구조의 뼈대에 근세포를 배양하거나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근육조직을 재현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생산 효율도 크게 높아졌다.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싱가포르는 2020년 12월 세계 최초로 닭고기 배양육 판매를 승인했다. 현재는 미국의 잇저스트만 시장에 진출했지만 초기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육류 전문 레스토랑인 후버스가 출시한 메뉴에 고객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고객들은 대체로 ‘진짜 닭고기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2021년 이후 여러 스타트업이 배양육 시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셀미트와 씨위드를 비롯하여 스페이스에프, 팡세, 다나그린과 같은 기업들이 배양육 기술을 내세워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2022년부터는 롯데, 풀무원, 한성기업과 같은 대형 식품기업들도 기술제휴를 통해 배양육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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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퓨처미트 테크놀로지스가 생산한 배양육 양고기로 만든 요리. 최근에는 배양육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 퓨처미트

남은 과제는 생산량이다. 잇저스트는 닭고기 배양육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2023년 현재 기준 싱가포르 현지에서 생산 가능한 양은 한 주에 2~3kg 정도에 불과하다. 배양육 메뉴를 선보인 후버스 한 곳에서만 소비되는 닭고기양이 한 주에 4,000~5,000kg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현재의 수천 배에 이르는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축산업과의 관계도 풀어야 할 숙제다. 식물성 대체육과 달리 배양육은 일종의 ‘회색지대’다. 배양육은 대체육과 달리 기존의 육류 제품과 직접 경쟁한다. 배양육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전통적인 축산 육류 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양육은 기존 축산업에 의존하기도 한다. 무혈청 배양액을 사용하더라도 고기를 배양하려면 주기적으로 실제 가축으로부터 근육 줄기세포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산업과 배양육이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는 현재로서 가늠하기 어렵다. 배양육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시장인 만큼 배양육이 시장에 어떤 충격을 몰고 올지, 기존 축산업은 어떤 사업 방향을 모색해야 할지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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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씨위드는 해조류로 만든 구조체를 활용하여 실제 소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내는 데 성공했다.
© 씨위드

김택원(동아에스앤씨 수석연구원,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