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일은 ‘마음’이 하는 일이라 했다. 1세대 캘리그라퍼 이상현 작가는 손수 글씨를 쓰면서 표정을 만들고 감성을 덧입힌다. 영화와 드라마 타이틀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 글씨의 멋과 맵시를 널리 알리고 있다. 그가 붓을 드는 이유는 명료하다. 전통 서예가 단지 옛것에 머무르지 않고 오래도록 굳건한 생명력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칭찬의 힘은 가히 세다. 장난기도 심하고 집중력도 좋지 않았던 아이는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피아노 학원에서 건반 위에 올라서는가 하면 주산학원에서는 주판을 롤러스케이트처럼 타고 다녔다. 어린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서예학원을 권유했다. 꾸중을 듣던 아이는 뜻밖의 칭찬을 받으면서 글씨 쓰기의 즐거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먹을 가는 게 지루하기만 하더라고요. 어느 날, 벽에 낙서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칭찬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흰 벽을 검은색 벽으로 바꿔보라고 하셨죠. 제게 목표가 생긴 겁니다. 그날 이후 학교 수업을 마치면 달려가서 벽을 칠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일정하지 않고 얼룩덜룩하게 칠해진 거예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단다’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서예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학교 공부보다 붓을 잡고 글씨 쓰는 시간이 더 행복했습니다.”
단 2년 만에 전국학생대회 1등을 거머쥐는 등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스 안에서 “우리나라에 서예과가 있대”라는 아주머니들의 대화 내용을 우연히 듣고는 목표를 서예과로 삼았다. 대학 입학과 졸업을 거친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동양미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전통예술은 전통을 하는 사람들만의 잔치일까?” 전통예술도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스물여섯의 청년은 디자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묵향이 짙게 밴 우리 글씨가 들어간 한국적인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유명한 기업과 광고회사를 찾아다니며 숱하게 문을 두드린 결과 드디어 기회가 닿았다. 식품기업의 제품 이름을 시작으로 출판, 영화 타이틀 등을 작업하며 다양한 분야로 반경을 넓힐 수 있었다. 그간 고딕체와 명조체로 불리던 글씨에 전에 없던 새로운 옷을 입히며 참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상현 작가는 영화 〈타짜〉, 〈복수는 나의 것〉,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을 비롯해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스스로를 글씨에 감성을 덧입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글꼴에 미묘한 표정을 부여한다.
“단순히 손맛으로 작업하는 게 아닙니다. 작업하는 과정 동안 대상과 충분히 교감이 되어야 합니다. 시의 제목이라면, 시인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지었으며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고민합니다. 강하고 힘차게 혹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표현할지 결정하지요. 영화 타이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포 장르라면 공포스럽게, 멜로 장르라면 멜로답게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품과의 교감을 통해 내 마음이 동요되는지 살핍니다. 캘리그라피는 곧 마음인 셈이지요.”
영화 〈타짜〉 작업을 위해 도박장에서 지낸 일화는 그의 작업 의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갖고 있던 비상금을 모두 가져가 게임에 참여하며 도박꾼의 심리를 읽고자 했다. 작업실에 돌아와 제자들을 불러 화투를 쳤는데, 최고의 패인 ‘삼팔광땡’이 나온 게 아닌가. 웃으면 티가 날 테고 오버해서 행동하면 들킬까 봐 조용히 있다 자신 있게 화투장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그 순간에 ‘아, 자신감이구나!’라고 느꼈다. 조금도 지체할 틈 없이 직접 돌로 찌어 만든 칡뿌리를 들고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은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해를 품은 달〉의 경우 대본을 읽으면서 한 시대의 훌륭한 임금을 만드는 여성의 힘을 강조하고자 했다. 달을 손으로 떠받드는 형상을 구현하면서 여성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았다. 이 밖에도 구글이 한글날을 기념해 검색창 로고를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훈민정음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한글의 오방색을 적용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국내 1호 캘리그라퍼인 이상현 작가는 디자인 시장에서 처음으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업계에 서예 용어를 사용하자 올드하다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다. 인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래어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캘리그라피를 순우리말 ‘멋글씨’로 바꾸는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의 서예를 널리 알리기 위한 공연도 이어가는 중이다. 커다란 붓을 들고 역동적으로 힘차게 글씨의 한 획 한 획을 써 내려가는 퍼포먼스는 전통 서예를 대중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 무대는 국내외를 넘나든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아리랑을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호주 달링하버에서도 독도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힘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유행과 문화는 다릅니다. 이제는 캘리그라피가 유행이 아닌 문화로 오래오래 정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서예가 대중과 더욱 가까운 전시 기획, 공연예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나아가겠습니다.”
서예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이어가겠다는 이상현 작가. 동시에 ‘가장 나다운’ 작업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자신의 색깔과 정체성이 온전히 녹아든 개인전을 준비할 계획을 밝혔다. 자신이 지은 글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전통은 영원한 현재라는 말이 있다. 과거부터 이어진 우리 문화가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숨 쉬고 발현되며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상현 작가가 믿는 서예의 힘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우리 글씨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며 시대와 어우러지는 오늘날의 풍경 말이다. 전통 서예의 굳건한 생명력을 잇는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글 김주희 사진 전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