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다. 권현준 작가에게 여행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795일 동안 55개국을 여행한 권현준 작가의 거침없는 여행기를 들어본다.
2017년 2월, 군대를 막 전역한 스물세 살의 청년 권현준은 인천공항에 서 있었다. 3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여행의 설렘으로 들떠있는 수많은 사람 틈에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배낭을 둘러맨 그는 홀로 마음이 복잡했다. 불확실성과 방황을 껴안은 채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한 세계여행은 이미 스무 살 때 결심한 일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절친들 속에서 딱 중간 정도 성적을 내던 그는 대학에 가면서 성적표의 등급처럼 인생의 등급이 나뉘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잣대로 봤을 때 좋은 대학을 간 친구들을 이길 수는 없겠구나 하고 낙담도 했다. 그러던 중 친구와 유럽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생각의 전환을 이끈 디자이너 ‘김리을’을 만났다. 지금은 한복 정장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로 유명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김리을은 달랐다. 같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는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 홍보영상을 찍으며 여행하고 있었다. 멋져 보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만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
“변하고 싶었습니다.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했죠. 그런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세계여행을 결심했습니다. 더 큰 세상에 나아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자, 부딪혀 보자, 내 길을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결심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경비 3,600만 원을 모은 청년 권현준, 드디어 세계여행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첫 번째로 그가 도착한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항공권이 13만 원으로 제일 싸다는 이유였다. 처음 계획했던 기간은 3년. 그 외에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3년간 세계여행을 갔다 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하는 부푼 기대와 꿈을 안고 떠났지만, 첫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동남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3년을 계획하고 오니 숙제가 많이 남은 것 같은 느낌에 즐겁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책 출간을 목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사진이나 영상에 집착하다 보니 여행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곳에서 3개월쯤 지났을 땐 더 이상 새롭지도 않았다. 그간 꿈꿔 온 여행이 아니었다.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 투어를 함께 하기도 하고, 외국인들과 같이 여행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국인들이랑 여행하면 결국 한국 사회 안에서의 이야기들과 관습들에서 맴돌고, 외국인들이랑 여행하면 식성이나 취향이 맞지 않아 일부러 맞춰야 하는 일들이 다반사였어요. 그런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뭔가 나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는 여행을 해야겠다, 이후 나를 더 외로움에 가둬 놓고 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도전이 시작됐다. 다른 여행자들과 조금 결이 다른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해발 5,416m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토롱라 패스를 넘기도 하고, 보통 6개월 정도 소요되는 미국 서부 종단을 106일 만에 해내기도 했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300km 거리를 106일 만에 종단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최단 기록이었다. 2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양치도 못하며 극한에 몰렸다. 종단 중에 두 번이나 곰을 만났지만, 무사했던 일화로 인해 그의 별명은 ‘럭키가이’가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스쿠버다이빙 강사, 발리와 호주에서는 서핑 강사를 하며 세계 일주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우간다에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가는 버스를 타고 현지 사람들과 뒤섞여서 빈대(bedbug)와 싸우며 58시간을 이동했던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3년을 계획했던 여행은 경비가 모자라서 2년 만에 끝이 났어요. 오랫동안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 오면 정착을 잘 못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여행을 통해 저의 진짜 모습,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권현준 작가는 ‘세계여행을 통해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저는 제가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행하면서 보니까 제가 정말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혼자 음악을 듣고, 생각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때더라고요. 제가 여행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많이 가진 사람도, 커플도 아닌 자녀를 데리고 온 부부였어요. 스쿠버 강사를 할 때 아빠가 아이들에게 레귤레이터를 물려주는 모습을 봤는데,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세계여행을 떠나서야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세계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에게 강연을 하고 책도 출판했다. 어릴 때 좋아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최근 아들도 얻었다. 그의 평생 반려자는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산티아고 순례길, 미국 7,000km 자전거 횡단의 주역, 자연 여행가 이은지 작가다. 누구보다 그의 도전을 잘 이해해 주고,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이다. 변한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많은 것이 변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산이나 캠핑을 많이 갔어요. 한 번은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날이 캄캄해지는 거예요. 아버지가 초조해하면서 길을 찾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 와중에도 아들인 제가 무서워할까 봐 괜찮다, 아빠가 있잖아, 하고 안심시켜 주셨어요. 이런 경험들이 저를 모험가로 만든 것이 아닐까요? 저도 아들에게 무엇이든 도전하고 해낼 힘을 주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어요.”
권현준 작가는 아직 도전하고 싶은 일이 많다. 지금은 크로스핏 운동선수로 활동하며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여행을 통해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 전에 지금 몰두하고 있는 크로스핏 선수로서 한국 1등을 달성하고 싶은 목표도 있다. 사업도 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강연도 계속하고 싶다. 그렇게 평생 도전하며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IF NOT NOW, THEN WHEN?”
글 양지예 사진 봉재석 여행사진 제공 권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