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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게꾼들이 만든 장터 울진 바지게시장


조선시대 지게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던 지게꾼들 덕분에 장날이면 사람으로 북적이던 시장. 신선한 해산물과 갖가지 물건들이 펼쳐진 장날이면, ‘무엇을 살까’ 고민하며 흥이 절로 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장 한가운데서 익어가는 풀빵과 호떡, 어묵을 손에 쥐고 뛰어노는 아이들, 맛 좀 보고 가라는 상인들의 목소리. 울진바지게시장의 장날은 추운 겨울에도 한 없이 따뜻하다. 대게 철을 맞아 먼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울진바지게시장, 코로나19로 한동안 열리지 않던 장날이 운 좋게도 이날 열렸다.








울진에서 가장 큰 시장

울진바지게시장은 조선시대 선조가 재위(1567~1608년)하던 시절부터 열려왔다. 당시에는 초장, 중장, 종장으로 3일간 장이 열렸는데, 초장은 울진읍 성내에서 열리고, 중장은 성 밑에서, 종장은 지금의 호월리 무월동과 도청동 사이에 있는 ‘종장이들’에서 열렸다고 한다.


현재 울진바지게시장은 울진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울진군청과 인접한 시가지 중심에 위치해있다. 매월 2일과 7일에 장이 서는 5일장으로, 지역 주민들은 직접 재배한 싱싱한 현지 특산물과 인근 바다에서 잡아온 다양한 해산물들을 판매하고 있다. 뻐끔- 뻐끔- 살아 숨쉬는 생선들과 빨간 울진대게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물류의 허브, 바지게꾼

백두대간의 동쪽에 자리한 울진은 1963년에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강원도와 경상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커다란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내륙지역과 물자교류를 위한 보부상의 활동이 활발했다. 그들이 메고 다니던 지게가 싸리나무 등을 엮어 만든 ‘바지게’다. 바지게꾼이라고 불리던 보부상들은 험한 산길을 오가며 내륙으로는 소금과 미역, 각종 수산물을 공급했고, 해안 지역으로 쌀과 옷감 및 각종 농산물을 나르며 유통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오랜 세월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울진시장의 별명은 ‘바지게시장’이 되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

울진바지게시장에는 오래된 점포가 많다. 젊은 시절 울진으로 시집을 온 아주머니는 이 장터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식당을 하다가 지금은 과일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는교? 서울서?” 하고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21년 전 명예퇴직을 하고 장사를 하기 위해 수산물이 싱싱한 곳을 찾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아저씨는 울진 자랑에 입이 바쁘다.


“울진 여는 공기도, 물도 좋제. 청정 지역 아닌교? 사람들은 억수로 순하제.”





시장을 걷다 보면 싱싱한 해산물 냄새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상인 아주머니들은 사소한 농담에도 웃음이 터지고, 오가는 대화 속에는 따뜻한 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빠알간 울진대게의 참맛

울진하면 대게 아닌가? 생선가게 한편에 있는 수조는 물 반, 대게 반이다. 수조 속에서 긴 다리를 펼친 채 자태를 뽐내고 있는 빨간 울진대게가 탐스럽다. “대게 실한 거로 하나 주소.” 손님의 주문에 가게 주인은 대게 다리를 잡아 펼쳤다. “좋제?” 제철을 맞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가 집게발을 좌우로 흔들어댄다. 대게를 쪄서 집에 가져가려는지, 가게에서 쪄달라는 손님. 주인 아저씨는 물을 뜨겁게 데워 대게 입에 붓는다. “대게는 뜨거운 물로 기절시켜서 쪄야제. 안 그람 다리가 다 떨어지뿐다.” 능숙한 솜씨로 대게를 기절시킨 아저씨는 찜기에 대게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찜기를 열자 허연 수증기와 대게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시장 거리로 퍼져나갔다. 다리를 톡 분질러서 살만 쏙 빼내 먹는 대게 맛을 상상하니 군침이 돈다. “못 참겠다, 오늘 저녁은 울진대게다!”












시장의 변신은 무죄

울진바지게시장은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전통시장 희망사업 프로젝트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는 지역의 역사·문화·관광자원을 연계하여 상거래와 지역 특성을 즐기고 관광할 수 있는 지역명품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사업 선정을 계기로 울진바지게시장은 낡고 오래된 시장이 아니라 깨끗하고 볼거리가 많은 재미있는 시장으로 거듭났다.


점포 앞에는 상인의 사진이 박힌 포스터가 걸려 있고, 알록달록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간판에는 인상적인 문구들이 적혀 있다. ‘미소는 마음을 열게 한다’, ‘후회는 낭비 인생은 투자’,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 ‘아낌없이 주는 바다’. 상인들의 좌우명을 적은 것인지, 어디선가 들어본 문구를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마음에 드는 문구가 적힌 점포는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와 같은 문구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는 공간, 울진바지게시장이다.







글 : 염세권
사진·영상 : 고인순, 이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