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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문어잡이 장 선장의 귀어일기

귀어인 장용호



때때로 삶은 우리를 낯선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은퇴 후 귀어 생활을 시작한 장용호 씨의 삶도 예상치 못한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저 바다가 좋아서 시작한 취미가 그를 귀어의 삶으로 이끌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때로는 거친 파도에 낙담하기도 하고, 만선의 기쁨에 웃기도 했던, 울고 웃는 장용호 씨의 귀어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이빙으로 시작한 울진과의 인연


영하의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타나 취재진을 반긴 장용호 씨는 롱패딩으로 중무장한 취재진이 무색하게도 날이 많이 풀렸다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거친 바닷바람에 익숙한 뱃사람 특유의 면모를 풍기는 장용호 씨. 그는 이제 귀어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귀어하기 전에는 다양한 일을 했어요. 대구 신협에서 근무하다가 무역업에 뛰어들기도 했고요. 전자 수리를 배워서 무선통신 회사에 다녔어요. 마지막으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다가 은퇴했지요.”

지금은 뱃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장용호 씨가 전자 기기를 수리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지만, 울진으로 오기 전까지 그는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일탈을 꿈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7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바닷가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귀어를 생각하고 울진에 온 것은 아니었어요. 어촌에서 사는 걸 동경하긴 했지만, 어업활동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저 바다가 좋아서 취미로 시작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소일거리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죠.”

장용호 씨는 몸이 좋지 않았던 아내의 요양을 위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주거 환경과 경제 사정을 고려한 끝에 울진 산포리에 이주할 수 있었다. 그 후 장용호 씨는 울진 바다의 매력에 빠져 틈만 나면 다이빙에 심취했었다고 전했다. 산소통 500개 분량을 사용했을 만큼 다이빙에 몰두해서 울진 바다의 지형을 모조리 외울 정도였다. 청정 지역인 울진 앞바다는 예전부터 전국의 다이버들에게 명소로 통했다. 해안을 따라 10여 곳의 다이빙 포인트가 산재해 있어 초심자들에게 제격인 수심 2m부터 전문가들이 주로 다이빙하는 30m 구간까지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도시 생활을 해오면서 사람에 치여 지쳐있었는데 울진에 오고부터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청정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죠.”







쉽지 않았던 귀어의 삶


오랜 기간 스쿠버 다이빙을 해온 장용호 씨는 자연스럽게 어업을 접하게 됐다. 안면을 튼 이웃들과 친해져 함께 바다에 나가 배 운전을 배우거나, 대게잡이 배나 자망배에서 그물을 당겨보고, 오징어잡이도 해보면서 점차 어업에 익숙해진 것이다.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업할 때 생기는 문제들을 스쿠버 다이빙으로 해결해드렸어요. 그 덕에 어민들과 친분도 생겼고요. 그렇게 자주 돕다 보니 나도 어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로작업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직장 생활보다 소득이 높다는 점도 솔깃했다. 그 결과 장용호 씨는 울진에 온 지 1년 만인 2014년에 귀어를 결심했다. 귀어 관련 기관을 찾아가 교육을 받았고 어선기술센터에서 귀어 정착 자금을 지원 받아 4.1톤의 어선도 구입했다. 하지만 무작정 도전한 어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배를 운전하는 지식이 있어도 파도와 바람, 주로에 적응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배 안의 수많은 기기 장비도 함께 운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귀어하고 난 뒤 2년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혼자서 배를 운용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배를 그냥 세워뒀죠. 당연히 수입도 없었고요. 그나마 스쿠버 다이빙을 해서 번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했고 2016년에 다시 배를 타고 나가 오징어잡이를 시작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오징어를 잡는 기계인 조상기를 빌려 어업에 나섰지만, 사용법이 익숙지 않아 첫날은 오징어를 거의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둘째 날부터는 조금씩 오징어를 잡아 올렸지만, 이번에는 오징어를 담는 법을 몰라서 경매사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할 것 투성이었다.









단지 속 기쁨, 전통단지 문어잡이


오징어잡이로 어업의 감을 터득한 후 장용호 씨가 도전한 것은 전통단지를 이용한 문어잡이였다. 보통의 문어잡이는 통발을 사용하지만, 통발을 사용한 어업은 별도의 허가가 필요했다. 게다가 통발을 걷고, 미끼를 넣어 재투망하는 과정은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반면에 전통단지 방식의 문어잡이는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데다 단지 안에 들어간 문어만 꺼내면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일손이 충분했다.

“첫 문어잡이에는 단지가 20개씩 연결된 틀 5개부터 시작했어요. 어디서 1대1로 교습을 받은 적이 없으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다른 어선이 투망한 곳 위에 투망을 하거나, 바위 지형에 투망을 해서 단지를 깨먹는 일도 허다했어요.”

몰랐던 문어의 습성도 문제가 됐다. 새 단지 안에는 문어가 잘 들어가지 않아서 11월에 투망한 뒤 1월에 되어서야 조금씩 문어잡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1월부터 3월까지 잡아 올린 문어는 800만 원의 수입을 기록했다. 문어잡이의 사업성에 희망을 본 순간이었다. 그 후 장용호 씨는 문어잡이용 전통단지를 연구하며 매년 틀 개수를 늘려나갔다. 지금은 문어잡이에 사용하는 단지가 90틀(단지 2천여 개)에 달한다.

귀어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장용호 씨는 새로운 도전도 꿈꾸고 있다.

“전통적인 문어잡이 방식이 사라지지 않게 지켜서, 앞으로는 전통단지 문어잡이를 나만의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울진하면 전통단지로 잡은 문어가 떠오르도록 울진군을 대표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연구 개발한 문어단지의 특허청 상표 등록과 디자인 등록도 마쳤다. 더 많은 사람에게 문어를 알리기 위해 온라인 판매망 조성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굳은 의지로 다져가는 귀어의 삶


장용호 씨는 귀어 생활에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업은 농업과 달리 실수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격양된 언어를 많이 쓰곤 해요. 그걸 받아들이고 어업을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적응하기 쉽지 않죠.”

귀어를 결심하고 어업을 배우러 왔다가 뱃사람들의 거친 언어에 마음이 상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 장용호 씨는 뱃사람들이 말은 걸어도 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차근차근 뱃일을 배워왔다.

귀어의 시작과 함께 배를 구입하는 것 보다는 귀어 관련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귀어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테스트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장용호 씨는 굳은 의지와 철저한 준비가 귀어의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귀어인에게 선배 어부로서 가르쳐줄 팁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장용호 씨에게 귀어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직장 생활과 달리 귀어 생활은 매일 반복되지 않아요. 파도가 높으면 며칠씩 어업을 쉬어야 하죠. 그럴 때 자기만의 리듬을 만드는 게 필수예요. 운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등 자기관리를 해둬야 어업을 시작할 때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요.”

귀어 생활에 있어 어업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어업을 하지 않을 때의 삶도 중요한 법. 투철한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거친 바다 위에서도 만선의 기쁨은 계속된다.











글 : 정재림
사진 : 이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