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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확보의 새로운 길

지하수 개발사업



한국농어촌공사의 113년 역사를 되짚어본다. 이번 달에는 1960년대 진행된 지하수개발사업에 대한 이야기다. 지하수개발은 가뭄에 속수무책이었던 농업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혁신적 도전이었다.


농업용수 개발사업

시대가 흐름에 따라 농경기술도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업용수 확보가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1960년 이전의 벼농사는 가뭄에 속수무책이었고,
비가 오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그르치기 일쑤였습니다.

1965년, 우리는 농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가뭄에 대응할 수 있는 농업용수를 개발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양수장, 저수지, 보 등 사업을 세분화하여 추진했고,
특히 지하수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첨단 조사장비를 통해 지하수를 조사하였고,
수년에 걸친 노력으로 관정과 집수암거 등을
5만 5,072개소에 설치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지하수개발사업은 매년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숭고한 도전은
가뭄이라는 자연재해조차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962년의 가뭄과 1963년의 보리 대흉작은 식량수급에 적지 않은 차질을 가져왔고 1964년에 발생한 영남일대의 가뭄은 지하수를 이용한 농업용수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고조시켰다. 정부는 서부 경남 지역의 농업용 지하수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가뭄의 양상과 농업용수개발 가능성을 시설별로 구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1965년 6월 전천후 농업용수원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지하수 조사기술의 체계화가 시도되었고, 조사·개발 장비 및 기술 도입이 이루어졌다. 1965년에서 1967년 사이에는 개발가능지역 조사와 함께 개발 대상지역의 기초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농업용수원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 기존의 크고 작은 수리사업이 농업용수원개발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양수장, 저수지, 보, 집수암거, 관정 등으로 사업을 세분화했다. 이와 함께 지하수개발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뒤를 이었다. 심한 가뭄 하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는 농업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하수 착정 현장
1960년대 진행된 지하수개발사업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설비였던 전탐기, 시추기, 착정기 등을 동원해 진행되었다.






지하수 지질조사
지하수는 산지·구릉·저지 등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질학적인 면에서도 충적층·홍적층의 신생대 제4기 지층을 비롯하여 제3기 지층, 중·고생대에 생성된 고결암·화성암 등에도 존재한다.





1965년 8월부터 지하수조사에 착수하였는데, 전탐기, 시추기, 착정기 등 당시로서는 첨단 조사장비를 하나하나 갖추어 가며 진행되었다. 이후 1969년 1월 <지하수개발공사>가 발족되어 1970년까지 관정·집수암거 등을 총 5만 5,072개소에 설치, 22만 8,024ha의 논에 관개용수를 공급하였다. 이후 1970년 2월 지하수개발공사와 토지개량조합연합회가 통합하여 <농업진흥공사>가 발족하면서 지하수개발사업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접어들었다.



글 : 염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