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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홍 따라 시장 유람


덜덜덜, 잉잉, 치익치익…. 아침부터 방앗간에서 떡을 뽑는 소리가 시장 입구까지 흘러나왔다. 잘 말린 고추를 이고 온 상인이 가마니를 열자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솔솔 풍겨오는 참기름 꼬신내와 커다란 솥에서 피어오르는 육수 연기가 사방으로 하염없이 퍼져나갔다. 사과부터 딸기, 오미자, 소고기, 돼지고기까지, 거창의 명물인 5홍은 물론 각종 먹거리와 의류, 건어물, 곡류에 이르는 다양한 물품이 즐비한 거창전통시장. 가는 걸음걸음마다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 나와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한 시장 유람. 이날은 더욱이 평범한 시골 살림까지 구경할 수 있는 오일장이 열리는 운수 좋은 날이었다.








언제나 문전성시

조선시대 말 합천, 함양, 산청 등 인근 지역의 장꾼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던 거창전통시장. 당시 군 단위 지역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의 시장이라 약장수, 차력사, 사당패들이 몰려들어 온종일 들썩거렸다.


세월이 흘러 거창전통시장의 거창했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많은 상인들이 지역의 농수축산물을 판매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매달 1과 6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오일장은 직접 재배한 채소를 들고 오는 할머니들과 지방을 도는 장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새통을 이룬다.







거창의 부엌

거창전통시장이 먹거리가 풍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영남 내륙 산간지방에 위치한 거창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일교차가 크고, 여기에 토양이 비옥해서 농사를 짓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바람도 맑고 물도 깨끗해 거창 땅에서 나는 농작물은 모두가 청정먹거리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 제례 및 혼례 문화가 많아 정과, 부각 같은 음식들이 많이 판매되어 왔다. 또 웅장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덕유산이 인접해 있는 것 역시 다양한 농산물을 접할 수 있는 이유다. 덕(德)이 많아 너그럽고 넉넉한 산이라는 덕유산(德裕山)의 이름처럼 덕유산 자락에서 나는 산나물과 약재들이 풍부한 거창전통시장. 그래서 거창을 ‘영남의 곳간’, 더 나아가 ‘전국의 곳간’이라 부르는 지도 모르겠다.





시장의 역사와 함께한 집들도 많은데, 족발집이 대표적이다. 30년이 넘게 족발 삶는 육수를 버리지 않고 계속 끓여서 사용해 왔다는 얘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 치느님이시다~’ 치킨 가게 앞에서 잠시 멈춰버린 시장 유람. “한 번 무봐라. 억수로 맛있데이.” 뜨끈한 돼지국밥부터 기다란 꼬챙이에 꿴 어묵까지, 거창전통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하지만 오늘 저녁은 바삭하게 튀긴 치느님을 영접해볼까.







투명한 병에 담긴 참기름과 들기름이 줄을 지어 정렬한 채 손님을 기다린다.
깨를 볶아 식히고, 곱게 빻아 찧고, 힘을 가해 짜내는 과정을 거쳐 그 수고로움 덕분일까. 시장 안은 오늘도 고소한 향기가 넘실댄다.










오복(五福)을 품은 오홍(五紅)

거창전통시장은 청정자연에서 자란 산나물을 비롯한 먹거리로 넘쳐나지만, 그중에서도 다섯 가지 빨간 먹거리가 유명하다. 바로 사과부터 딸기, 소고기, 돼지고기, 오미자까지 다섯 가지 붉은색의 식품이 그것. 예로부터 붉은색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색으로 여겼으니, 거창전통시장의 오홍은 그 자체로 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오홍의 첫 번째는 사과다. 거창은 대륙성 기후로 일교차가 커 사과의 당도가 높고, 토질 또한 약산성이라 사과와 잘 어울린다. 거창의 사과농가는 모두 고지대에 있는데, 일조량이 많은 데다 일교차가 커서 사과를 키우기에 제격이란다.


사과만큼이나 딸기도 시장 곳곳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딸기 또한 거창의 큰 일교차와 약산성의 토질 덕분에 키우기에도 적합하다고. 최근 딸기농가에서는 유기농딸기, 유황딸기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딸기의 맛과 다양성을 높여 더욱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거창전통시장의 많은 가게 중 손님들로 줄지어 있던 곳이 바로 정육점이다. 거창에서는 소와 돼지에게 암을 예방하는 3대 식물 중 하나인 쑥을 먹여 키웠는데, 소고기는 ‘애우’, 돼지고기는 ‘애도니’라는 특산품까지 개발해 사람들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애우와 애도니를 사러 멀리에서 올 정도라고 하니 그 맛이 가히 기대된다.


마지막 오홍은 바로 오미자.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는 습기가 적당하고 비옥한 골짜기에 무리를 지어 분포한다. 거창은 오미자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지녔다. 특히 가북면의 해발 600~800m 고랭지에서 자란 오미자는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情 담아가요~

매달 1일과 6일은 거창전통시장의 오일장이 열리는 날로 텃밭에서 키운 호박잎, 늙은 오이, 무시래기 등 시골 살림이 총출동한다. 보자기에 고이고이 싸온 채소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친 어르신들. 어르신들은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하나둘 화톳불 앞에 모여 언 손을 녹이고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농담을 주고받는 장터의 소란스러움이 정겹기 그지없다.


시장 입구에서 벌어지는 상인과 손님의 팽팽한 신경전도 흥미롭다. “싸게 줄게 사이소. 싱싱타.” 한 옥타브쯤 올라간 상인과 덤을 얻으려는 손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흡사 싸움의 현장 같기도. 결국 오가는 실랑이 끝에 봉지에는 ‘덤’이라는 이름의 ‘정’이 담기고야 만다. 판매 열이 올라가도 야박해지는 법이 없는 시장의 인심. 거창전통시장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또 다시 시장으로 이어지나 보다.


탁! 탁탁! 탁탁탁! 시장 한쪽에선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도마 위에서 생선을 토막 내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주머니의 능숙한 칼질이 마치 산간을 누비는 검객처럼 멋있게 느껴진다.


시장 곳곳을 누비며 종일 촬영을 하니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취재팀에게 귤을 건네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정이 듬뿍 담긴 말랑말랑한 귤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글 : 박영화
사진 : 정우철
영상 : 고인순
자료 : 거창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