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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키우는 윤 농부의 귀농일기



<흙사랑 물사랑>은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지역별 귀농인을 만나 생생한 귀농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 같지 않은 인생살이.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살다 보면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간에 인생의 전환점이 한 번씩은 꼭 찾아오기 때문. 건설업으로 20년, 치열하게 살다가 귀농을 선택한 윤덕중 씨도 처음엔 그랬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치열한 경쟁 구조 그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선택한 귀농. 어느덧 농부 7년차에 접어든 그는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20년 삶을 뒤로하고 거창으로


내비게이션에도 잘 잡히지 않는 시골. 비탈길을 달려간 산 속에서 오늘의 주인공 윤덕중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취재진을 자신의 농장으로 인도하며 난로 앞에서 따뜻한 오미자차를 건네는 그는 이제 귀농 7년차다.

“귀농을 하기 전까지는 건설업에 20년간 몸담았어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곳이죠. 그래도 힘든 환경 속에서도 직원들 복지를 많이 챙겨주려고도 했고, 전세보증금 사기를 당한 직원에게 돈을 빌려준 적도 있고요. 하지만 너무 잘해준 탓이었을까요. 배신도 많이 당하고, 상대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경쟁 문화에 지치고 신물이 나더라고요.”

좋은 마음으로 베풀었던 호의는 상처로 돌아왔고, 끊임없는 경쟁 구조로 일에 지쳐있던 윤덕중 씨는, 그즈음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있을까 고민하던 중 농사를 떠올렸고 농사야말로 조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아래 귀농을 결심하게 되었다.

“귀농을 결심한 후 어디로 갈지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제 취미가 배낭여행하고 등산이거든요. 건설업에 종사 할 때도 20개국 정도 배낭을 메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위주로 여행을 했습니다. 백두대간을 오를 정도로 산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산이 좋고 사람이 없는 곳이 어디일까 찾아보니 거창이더군요.”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열다섯 개가 넘을 정도로 산이 유명한 거창. 동쪽으로는 지리산 북쪽으로는 덕유산 서쪽으로는 가야산 국립공원과 같은 큰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윤덕중 씨를 거창으로 이끌었다.










마음과는 달랐던 귀농살이


부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윤덕중 씨. 그는 농작물로 오미자를 택했다. “저희 오미자 농장이 해발 800m 정도인데요. 자생하는 오미자가 굉장히 많을 정도로 오미자를 기르기에 기후환경이 제일 적합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곳에 오미자 농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무농약 오미자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설렘을 가득안고 시작한 농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이란 시간은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귀농하고 처음에는 정말 일만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일만 했어요. 오미자를 심고, 파이프를 박고, 직접 풀을 뽑고 가꿨죠. 이렇게 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퉁퉁 붓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아침저녁으로 일만 하는 윤덕중 씨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어디서 농사를 짓다 왔느냐”할 정도였다고. 그만큼 결과도 만족스러웠으면 좋으련만, 윤덕중 씨의 노력과는 별개로 고난이 찾아왔다. 농사만 잘 지으면 끝날 줄 알았던 그의 예상과는 달리, 판매가 되지 않아 난항을 겪었던 것. “농사만 잘 지어서 좋은 오미자를 내놓으면, 상인들이 사주고 자연스럽게 다 팔릴 줄 알았어요. 착각이었던 거죠. 정성으로 키운 오미자는 팔리지가 않아서 창고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니까 반쯤 썩더군요.”

어떻게 판매를 할까 막막해 하던 찰나에, 윤덕중 씨는 자존심을 내려두고 지인들에게 “오미자를 좀 사달라”며 연락을 돌렸고, 기적적으로 오미자는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판매되었다.

“다 팔렸어요. 근데 이게, 지인들한테 판매하다 보니, 제값에 판매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지인들은 자기가 필요해서 오미자를 샀다고 생각 안하고, 도와줬다고 생각을 해요. 악순환이더라고요.” 윤덕중 씨가 오미자 구매를 요청했던 지인들은, 그의 오미자 완판 소식에 안하던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농사가 굉장히 잘 되었다고 소문이 나더라고요. 여기저기서 ‘동창회 모임에 돈 좀 내라, 딸이 결혼한다’며 돈을 요청했어요. 오미자 한 박스 팔고, 빚쟁이가 된 기분이었죠.” 귀농 3년차. 고생해서 키운 오미자를 판매해보겠다는 생각에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그의 통장 잔고가 점차 바닥을 드러내자 그는 농사를 잘 지어도, 판매를 다 해도 해결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윤 농부의 제2의 작물 ‘블로그’


다시 도시로 돌아가느냐, 다른 직업을 택하느냐, 농작물을 바꿔야하나 고민이 되던 때. 윤덕중 씨는 거창군 농업기술센터에서 ‘SNS를 통한 블로그 마케팅’ 교육을 알게 되었고,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교육을 받았다.

“귀농하기 전에 10년 이상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었어요. 근데 제 일기장과 다름없었어요. 제 소소한 일상을 올리고, 이웃도 맺지 않았죠.” 자신만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던 그는, ‘SNS를 통한 블로그 마케팅’ 교육을 계기로 블로그를 오픈했다.

“‘자연 품은 윤 농부네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오픈했어요. 이웃신청이 들어오면 수락하고, 이웃들하고 소통하기 시작했죠.” 그러기를 며칠쯤 지났을까. 10명 남짓이던 블로그 방문자 수는 100명이 되고, 1,000명이 되었다. “6개월이 지나니까 3,000명이 넘더라고요. 그 시기에 오미자 수확이 있었는데 오미자 수확 전에 주문으로 판매를 완료하는 일이 일어나더군요. 이게 블로그가 가진 위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운영으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게 된 윤덕중 씨. 그에게 블로그는 이제 정성 들여 가꾸는 오미자만큼이나 소중한 작목이 되었다.








윤 농부로 일구는 삶


잘 키운 블로그 덕분에 윤덕중 씨의 오미자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때, 전년 대비 매출이 40%가량 늘었다고 하니, 윤덕중 씨의 2020년은 풍년인 셈이다.

“코로나19로 오미자가 기관지나 폐에 좋다는 게 알려져서인지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비대면 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어려운 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실패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윤덕중 씨는 실패의 쓰디쓴 경험을 딛고, 달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거창은 귀농1번지라고 불릴 정도로 귀농인들이 많아요. 저처럼 처음에 좌절을 경험하신 분들도 많죠.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귀농을 계획 중인 분들이 있다면 이거 하나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판매에 주력하라’는 것을요. 귀농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시에 살다가 오시거든요. 누구보다 소비자의 정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소비자의 정서를 파악해, 판매에 주력하다 보면 쉽게 적응 할 수 있을 거예요. 농지를 산다거나, 집을 짓는다거나 하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요.” 귀농생활의 실패와 성공을 맛보았기에 그의 말이 신뢰가 간다.

농부의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하면 한가롭다. 일 년 내내 땀 흘려 키운 농작물을 모두 거둬들였기 때문. 하지만 이 겨울을, 농부는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겨울의 갈무리를 잘 해두어야 다음 계절에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잘 아니까. 윤덕중 씨 역시 같은 마음이다. 농부가 되어 맞는 7번째 겨울. 1년 농사를 갈무리하며 윤 농부는 새로운 열매를 위해 오늘도 땅을 일군다.











글 : 최선주
사진 : 정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