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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갈등의 중심,
도시재생의 ‘비상구’가 되다

부천 아트벙커 B39






윈스턴 처칠은 “사람이 건물을 짓고, 다시 그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건축물과 사람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다. 그중에서 도시 기간시설은 조금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도시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람들에게 ‘혐오 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눈총받던 곳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곳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부천 아트벙커 B39’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진화하는 도시와 혐오 시설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사이에 자리한 부천시는 수출입의 요지라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경인공업지역’의 대표 도시로 성장해왔다. 많은 생산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이 발달한 부천시는 상대적으로 타 도시보다 면적은 좁지만 인구 밀도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1990년대부터 추진된 중동 신도시와 오정구의 산업 단지에 기업들이 앞다퉈 입주하면서 ‘부천 테크노파크’가 조성되었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이 부천시를 찾아 정착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며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급히 삼정동에 대규모 쓰레기 소각장이 세워졌을 정도였다.



B39 로비를 지나면 현재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 시작된다


사람이 많은 도시는 변화가 빠르고, 여러가지 문제도 수면에 오른다.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설 때만 해도 이곳은 열병합발전소와 공장 시설만 있던 외곽 지역이었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아파트 단지와 맞붙게 된 것이다. 게다가 소각장은 환경적으로도 결함이 있는 시설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른바 ‘다이옥신 파동’이다. 이를 다시 정비하고 가동을 재개했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지역 주민들의 소각장 폐쇄 운동은 장기간 이어졌다. 결국 이곳을 대체할 소각장이 다른 곳에 지어졌고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문을 닫았다.




시민과 행정부 합의의 결실


목적에 따라 건물을 지으면 관련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이에 따라 건물과 주변 환경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작게는 가정집부터 시작해 미술관, 더 나아가 거대 산업 단지와 신도시까지 그 이미지는 오랫동안 지역의 키워드로서 사람들에게 깊게 인식된다. 이렇게 고착화된 인식을 과감하게 깨고 발전시켜야 할 때가 온다면, 건축물은 어떻게 변모해야 할까.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의 변신 사례가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모든 장비와 기기를 그대로 보존해 소각장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중앙제어실


아트벙커 B39의 탄생은 ‘폐쇄한 쓰레기 소각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논의로 시작되었다. 폐소각 시설 재생은 세계적으로도 실시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면밀하게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를 분석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부천시민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용됐다. 이처럼 ‘도시재생’이라는 목적과 ‘문화예술공간’이라는 기능 그리고 시민의 여러 의견까지 모두 품어낸 부천 아트벙커 B39는 쓰레기 소각장 폐쇄 8년 만인 2018년 6월 정식으로 개관했다.




건축·도시재생의 단면


부천 아트벙커 B39를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하면 ‘압도적인 공간감’이다. 지역에서 발생한 모든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던 곳이었던 만큼 내부 공간도 모두 넓고 깊다. 부천 아트벙커 B39는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했다. 특히 쓰레기를 연소시킨 후 재를 보관하는 벙커 공간은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방문객은 벙커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한눈에 구경할 수 있다.

벙커는 이곳을 대표하는 공간이자 이름이다. ‘B39’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소각장의 벙커 높이(39m)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을 지나는 39번 국도는 사람과 콘텐츠, 그리고 장소를 연결한다는 의미도 내포돼있다. 39앞에 붙은 B는 부천과 벙커의 ‘B’를 뜻하기도 하지만 ‘Borderless (경계가 없음)’의 ‘B’를 뜻하기도 한다. 모두 붙여 읽으면 ‘비상구’와 발음이 비슷한데, 이는 삶에 지친 주민들에게 문화적인 ‘비상구’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느낄 수 있다.



1. B39는 부천과 벙커의 'B', 소각장의 벙커 높이(39m)의 의미를 가져와 이름 붙였다.
2. 공기탱크와 파이프라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인송풍실은 전시나 공연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벙커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대체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기능만 바뀌었다. 건물 내에는 두 개의 전시장이 있는데, 하나는 주 전시장인 ‘MMH(멀티미디어홀)’이다. 쓰레기를 수거한 트럭이 들어오는 반입실이었던 이곳은 이제 여러 예술 거장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반입실 때 사용하던 커다란 철문 입구를 그대로 활용하여 마치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 다른 한 곳은 벙커와 로비를 지나 쓰레기를 소각하던 소각조의 벽을 허문 야외 공간 ‘에어갤러리’다. 입구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 햇볕 아래 여러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인송풍실과 기계실이었던 공간을 재구성해 만든 B39 CAFE


다른 공간들도 시원시원한 공간이 돋보인다. 유인송풍실의 일부를 철거하고 만든 카페는 세미나와 대규모 이벤트를 열 정도로 넓다. ‘퍼블릭 갤러리’라는 이름의 미술전시공간이 별도로 있지만 카페 안에서도 소규모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건물 2층에는 스튜디오·세미나실·강의실 등이 있어 공간 대여와 시민교양수업 등을 운영한다.



1. 에어갤러리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햇볕 아래에서 미술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2. MMH(멀티미디어홀)에서 전시 중인 <두 개의 귀환_서문>,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부천 아트벙커 B39는 매우 기묘한 공간으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도시에서 발생한 쓰레기 소각의 과정을 학습함과 동시에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또 그 안에서 교육과 창작 활동이 일어난다. 문화 시설과 쓰레기 소각장의 공존은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조금 더 깊숙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혐오 시설의 모습도 우리의 도시이고 현실이다. 그리고 부천 아트벙커 B39는 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어 더 많은 이들이 찾고 감명을 받는 문화 시설로 거듭났다. 건축물과 도시를 재생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들을 부천 아트벙커 B39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글 : 김부국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