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를 짓는 농부라면 일 년에 반드시 한 번씩은 치러야 하는 못자리 만들기. 못자리는 볍씨를 모판에 뿌려 싹을 틔우는 작업으로, ‘못자리로 일 년 농사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한작 업이다. 또 못자리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마음 척척! 손발 척척! 힘들어도 웃음꽃 넘쳤던 못자리 작업 현장에서 청년농부의 행복한 미소를 보았다.
귀농 연차 : 3년 차
귀농 지역 : 경기도 화성 배미마을
귀농 이유 : 농사에 대한 비전을 발견했기 때문에! 또 자연,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재배 작물 : 친환경 벼
오늘은 못자리를 만드는 날이다. 장인어른이 만들어놓으신 비닐하우스와 올 봄 내가 새로 만든 비닐하우스 두 동에 총 2,400장의 모판으로 못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못자리 만들기는 두세 명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친인척분과 마을 형님 몇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작업에 필요한 볍씨, 상토, 모판 등을 하우스로 옮겨다 놓고, 비닐하우스 안에다 파종기도 설치해야 한다. 귀농 후 매년 하는 일인데도, 못자리 만들기처럼 큰일을 앞두고는 여전히 긴장이 된다. 날씨가 좋아서 참 다행이다.
10여 명이 모여 본격적으로 못자리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못자리는 ‘일 년 농사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독이 작업에 정성을 쏟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못자리 만들기는 파종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작업이 빨리 진행되는 편이다. 먼저 역할 분담을 했다. 파종기가 돌아가는 속도에 맞게 모판을 넣어주고, 기계에 볍씨와 유기농 상토를 채워주고, 다 채워진 모판을 옮기는 일을 마치 톱니가 굴러가듯 척척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파종기에 빈 모판을 올려놓자 궤도를 따라 이동하며 상토가 채워졌고 볍씨가 촘촘히 내려앉았다. 볍씨가 드러나지 않게 다시 상토를 덮고 물을 뿌리면 모판 하나가 완성된다.
비닐하우스 바닥에 천막을 깔고 완성된 모판을 열 장씩 두 묶음으로 하여 일렬로 배치해 정리했다. 바닥에 천막을 까는 이유는 잡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 일인 양 전력을 다했다. 모판이 2,400장이나 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하니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해야 해서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으나 모두가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장모님과 아내는 일하는 분들을 위해 물, 커피, 간식 등을 열심히 챙겨주며 일손을 거드셨다. 모판이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여가자 뿌듯함도 쌓여갔다.
못자리 만들기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정렬된 모판 위로 비닐과 보온재를 덮어 적정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식물도 마찬가지겠지만, 볍씨에 싹이 나려면 발아 온도와 습도가 특히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햇빛을 직접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비닐과 보온재를 덮는 작업이 마무리된 후 혹여 바람이 들어갈 만한 곳은 없는지 덮어둔 자리를 빙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 꼼꼼하게 확인했다.
모두가 서둘러 일을 한 덕분에 계획대로 점심 무렵에 일이 거의 마무리됐다. 이제 정리할 일만 남았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밥심’을 채울 때다. 화성 지역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맛집에서 육회비빔밥과 차돌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장모님표 김장김치와 열무김치가 입맛을 돋웠다. 과거에는 ‘새참’이라고 해서 집에서 직접 음식을 준비해 먹었지만, 이제 농촌도 배달음식이 활성화됐다. 열심히 일을 하고 먹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마을 형님께서 따라주신 반주 한 잔에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며 아내와 함께 황금빛으로 물들 가을 들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눈앞에 생생하게 풍경이 그려졌다. 오늘 정성 들여 뿌린 볍씨가 올 가을에는 더욱 풍성하기를, 오늘의 수고가 정당한 대가가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글 : 홍지성
사진 : 임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