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가을이 깊어지면 농부의 손길은 또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일 년 농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추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청년농부 홍지성 씨가 추수를 하는 날. 풍요로운 가을, 수확의 기쁨이 가득했던 현장으로 가보았다.
벼 타작은 나락에 물기가 없고 논이 말라야 수확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추수할 시기는 다가왔는데 며칠 동안 비가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속을 끓였다. 날이 추워지면 서리가 내리고 알곡이 땅에 떨어지므로 제때에 추수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며칠을 기다리다 드디어 맞은 ‘추수하는 날’. 오전 일찍부터 시작된 추수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이어졌다. 알이 꽉 찬 벼이삭을 보니 흐뭇한 마음이 든다. 농사는 농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하늘의 뜻이 있는 법이다. 올해는 또 올해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콤바인이 논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벼 타작이 시작된다. 콤바인 기계를 살 만큼 아직 땅이 넓지 않아 추수 시즌이 되면 동네 형님 댁의 콤바인을 빌리고 그 대신 형님네 일손을 거들어준다. 형님이 콤바인을 운전하며 벼를 베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보고 싶은 황금 들녘이지만 이제는 거두어 들일 때다. 콤바인은 알곡은 알곡대로, 지푸라기는 짚단으로 따로 엮어 뱉어낸다. 추수하는 날에는 콤바인이 ‘열일’을 한다.
콤바인이 걷어온 알곡을 커다란 마대에 연결해 담는 일은 내가 맡았다. 알곡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마대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희열이 느껴진다. 마대 속 알곡을 손으로 한 움큼 떠 보았다. 튼실한 알곡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트럭에 마대 2~3개가 쌓이면 건조장으로 이동시키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추수철이라 건조장에는 이미 많은 마대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조장은 나락을 잘 말려주는 역할을 한다. 건조장에서 일하는 형님들이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형님들에게 가서 나도 인사를 건넸다. 한 형님이 “여기서 일 좀 하라”며 빗자루를 손에 쥐어주신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웃들 덕분에 웃는다.
점심 이후 시작한 논은 일이 다 끝나가고 있었다.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 알곡 떨어진 볏단이 가지런히 누워 있다. 볏단은 추운 겨울 소들의 귀한 식량이 된다. 추수가 끝나면 볏단을 모두 모아 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제 또 다른 논으로 이동할 차례다. 해가 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늘은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날보다 분주한 날! 일 년 동안 땀 흘려 농사를 지었고, 그 소중한 결실을 맺는 날! 수확의 기쁨은 열심히 농사를 지은 농부가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특권 아닐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이 겸손하고, 더 많이 배우며, 초심을 잃지 않는 농부가 되겠다는 나의 다짐.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며 또 한 번 가슴 속 깊이 새겨본다.
글 : 홍지성
사진 : 이승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