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로 만든
건강하고 맛있는 찐빵

슬지제빵소 김슬지 대표





슬지제빵소는 100% 우리 농산물만을 사용한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철학과 독창적인 아이디어, 지역 상생 역할 덕분에 2019년에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촌융복합산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멋진 경관을 구경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찐빵을 즐길 수 있는 곳, 슬지제빵소에 다녀왔다.



농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농촌융복합산업

‘농촌융복합산업’은 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바탕으로 식품 또는 특산품을 제조하고 가공하는 2차 산업과 유통, 판매, 문화, 체험, 관광, 서비스 등을 아우르는 3차 산업을 복합적으로 연계·제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1차, 2차, 3차 산업을 모두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농촌 6차 산업’이라고도 부른다. 농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렇게 생산된 가치를 다시 농촌과 농업으로 환원시키는 산업 모델이다.

농촌융복합산업이 잘 진행되면 농가의 판로가 다양해지고, 생산한 농산물의 장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도 수월해진다. 결과적으로 농산물 소비량이 증가하고 농가의 소득이 증가해 농업과 농촌 전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체험과 관광 등 3차 서비스를 통해 농촌과 보다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좋은 농산물과 건강한 농업의 가치를 직접 확인한 소비자는 건강한 소비를 지속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농촌융복합산업의 원활한 운영과 발전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물론 개별 농가가 성공적으로 성과를 내기까지는 어려운 점도 많다. 농사에서부터 상품 기획과 생산, 홍보와 유통, 체험 또는 관광까지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고 요구되는 역량도 커진다. 많은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고, 지역 내 다양한 연계와 관련 부처의 지원도 필요하다. 농촌융복합 산업을 추진하려는 농가를 돕기 위해 많은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여러 지원 정책을 제공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인의 농촌융복합산업 참여를 촉진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2013년부터 ‘농촌융복합산업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개최해 왔다.

2019년 경진대회에는 전국 1,600여 업체가 참가를 신청했으며, 기존 농업·농촌 자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결합해 뛰어난 성과를 거둔 10개 업체가 농촌융복합산업화 우수사례로 최종 선정되었다. 이 중 ‘지역 농가와 상생’, ‘100% 우리 농산물로 만든 특허 받은 찐빵’, ‘지역 관광 자원과 융합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임’이라는 평가와 함께 우수상을 받은 한 청년 농업인이 있다. 바로 슬지제빵소의 김슬지 대표다.






대를 이은 경영 철학과 새로운 아이디어와의 결합

슬지제빵소는 부안에서 20년 가까이 찐빵을 만들어 온 가족 기업이다. 부안 시장 인근에서 찐빵을 만들어 팔던 부친의 ‘슬지네찐빵’을 김슬지 대표가 이어받았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찐빵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 뒤를 이어 찐빵을 팔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고향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다녔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부모님의 건강 악화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지자 부모님은 도움을 청했고,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짐을 싸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을 돕겠다는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빵 굽는 일부터 경영까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당장 가게 경영난이 문제였다. 김 대표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우리 농산물로 만든 찐빵을 고집해왔고 이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 밀 가격이 수입 밀보다 비쌌고, 팥소도 우리 팥으로 직접 만들어 쓰니 수입산 팥으로 만들어진 가공품을 사서 쓸 때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었다. ‘찐빵은 저렴한 간식’이라는 인식이 많아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도 없는데 우리 농산물을 고집하려니 원가가 높아 이윤이 별로 남지 않았다. 우리 밀을 사용해 만든 빵의 식감도 문제였다. 우리 밀은 기본적으로 수입 밀보다 글루틴 함유량이 적다. 이 때문에 우리 밀 사용 초기에는 빵이 부드럽지 않고 뚝뚝 끊어지며,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다.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성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드는 일까지. 고향으로 내려온 김 대표 앞에는 커다란 숙제가 잔뜩이었다.

김 대표는 아버지와 머리를 맞댔다. 함께 가게를 꾸려나가는 초기에는 갈등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 농산물만 사용해서 맛있는 찐빵을 만든다’는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팥을 발아해 팥소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고, 우리 밀의 특성을 보완하고 쫀득한 빵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우리 농산물을 함께 사용하며 연구했다. 이런 시도는 우리 밀 종자가 계속 개량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결국 2014년 전라북도 농업 기술원의 ‘농식품 및 아이디어 가공제품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대회에서 받은 상금의 일부는 반자동화를 위한 제조시설에 투자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카페를 조사하고 디자인과 인테리어 자료를 모았다. 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공간마케팅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물은 세련된 내부 인테리어가 특징인 2층 카페가 됐다. 건물은 곰소 염전의 경관과 어우러지며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멋진 건물과 주변 풍경에 지나가던 손님들이 발을 멈추고 하나둘 가게로 들어왔고, 그렇게 방문한 손님들이 찐빵과 음료가 맛있다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찐빵 판매를 넘어 지역 상생까지

제빵소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면서 김 대표의 아버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김 대표의 동생들이 손을 보탰다. 우리 농산물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찐빵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형제들이 힘을 합쳐 메뉴를 개발하고 가게를 운영해 나갔다. 특히 새로운 메뉴 개발에 힘썼는데, 크림치즈나 생크림, 팥과 오디를 찐빵과 음료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하루에 두어 개 팔리던 크림치즈 찐빵과 생크림 찐빵은 이제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대표 메뉴가 됐고, 직접 만든 팥소와 전북의 오디를 활용한 팥크림우유와 오디봉봉은 인기 메뉴로 등극했다.

손님은 점점 늘어났고 이제 슬지제빵소는 연 1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부안의 명소가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우선 밀과 팥, 오디, 뽕잎 같은 지역 농산물의 소비량이 증가했다.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인근 농가에서 농산물 상당량을 수매하게 된 것이다. 2018년 기준 연간 우리 밀 15톤 이상, 우리 팥 18톤 이상, 우리 쌀 5톤 이상을 사용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을 도내 농가에서 수매한다. 부안을 찾는 사람들 또한 늘었다. 제빵소를 찾는 고객의 약 90% 정도가 타 지역에서 방문한 이들로 인근의 곰소 염전도 찾아가고 젓갈 거리도 들르며 소금이나 젓갈을 구매하기도 한다. 슬지제빵소로 일종의 관광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인근 지역에서 학생 체험 학습을 오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농촌융복합산업이 뭔지, 농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다양한 미래가 있는지 설명해요. 보다 체계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체험장을 새로 만들 계획이고요." 새로 짓는 체험장 한편에는 농산물을 위탁·판매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지역 농산물 판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한편 김 대표 가족은 장학금을 기부하고 ‘송산효도마을’에 꾸준히 찐빵을 전달하는 등 봉사도 꾸준히 해왔다. 김 대표는 “부모님이 부안에서 찐빵 장사를 하셔서 저희 형제자매가 무사히 자랄 수 있었고, 부안군 나누미근농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닐 수 있었어요. 감사한 마음에 부모님이 봉사와 기부를 시작하셨고, 이제 우리가 이어받아 하고 있죠"라며 지역 사회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농업과 농촌융복합산업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농업에는 분명 희망이 있고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밝게 웃는 김 대표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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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희화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