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산 전나무, 오레곤 소나무, 잣나무 등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식물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단연 인기인 종은 일명 ‘한국전나무(Korean Fir)’라고 불리는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토종 나무로 20세기 초 한라산에서 반출된 이후 품종 개량을 거쳐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사랑받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토종 구상나무는 지금,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 우리 나라의 특산종으로 한라산, 지리산, 무등산, 덕유산의 높이 500∼2,000m 사이에서 자란다. 유럽에서는 한국전나무로 부르며 크리스마스 트리로 애용한다.


학명 : Abies koreana WILS.
생물학적 분류 : 소나무과
개화시기 : 5∼6월



우리나라에만 사는 멸종위기종

토종 구상나무는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에서 2012년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척박한 고산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에서도 가장 많이 자라지만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등 해발 1,500~ 2,000m의 ‘아고산대’에서도 잘 자란다.
구상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바늘 모양의 돌기가 갈고리처럼 꼬부라진 모양을 뜻하는 ‘구상(鉤狀)’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설과 처음 발견된 제주도의 방언으로 쿠살낭, 성게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구상나무로 변화했다는 설이다. 두 가지 모두 나무의 생김새를 묘사하고 있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수로 소나무와 잘 구분이 되지 않고, 특히 분비나무와 아주 유사하지만 솔방울 조각의 끝이 아래로 젖혀지면 구상나무, 젖혀지지 않으면 분비나무로 볼 수 있다.

구상나무는 분비나무, 종비나무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들과 함께 기후변화의 척도가 되는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지정된 나무다. 해마다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계절 경계가 변화하는 등 우리나라의 기후가 급격히 바뀌면서 구상나무의 생태도 급변하고 있다.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큰 규모의 구상나무 군락지뿐만 아니라 어른 구상나무가 50그루 미만인 작은 숲 또한 소멸 위기에 처한 상태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리산의 구상나무 서식지가 1980년대에는 262ha였지만 20년이 지난 2000년대에는 216ha로 17.6%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원인

전문가들은 구상나무가 말라 죽어 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꼽는다. 특히 지리산에 자생하고 있는 구상나무의 경우 수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말라죽은 개체가 많다. 최근 한반도는 겨울철 평균기온이 점점 더 상승하고 있고 봄철에는 눈이 녹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또 겨울에 눈이 덜 내리고 봄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겨울 가뭄’도 구상나무가 말라죽는 원인 중 하나다.

구상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기후변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고 병해충들이 구상나무가 자랄 공간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던 다른 온대식물이 북상한다는 점이다. 다 자란 구상나무가 죽으면서 생긴 공간에 어린 구상나무가 자랄 수 있어야 건강한 구상 나무 숲이 유지될 수 있는데,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어린 구상나무가 자랄 공간에 온대식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문제가 곧 사람의 문제

토종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식물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기에 더욱 보호가 필요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후변화로 구상나무가 소멸 위기에 처한 일은 단지 하나의 종이 사라지고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양한 종이 서로 연결돼있는 생태계 전반에 걸친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구상나무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와 다르지 않다. 구상나무가 우리에게 던지는 기후변화의 메시지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글 : 김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