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겨울은 아니지만 언제나 봄은 그립다. 문득 어깨를 내리누르는 두터운 겉옷의 무게. 꽃 피는 봄이 오면 이 거추장스러운 겨울옷을 벗어던질 수 있겠지. 혹시 조금 더 빨리 봄을 만나고 싶다면 한반도의 저 끝, 거제도로 가자. 도시는 한겨울이지만, 그곳에서는 유난히 맑은 쪽빛 바다를 마주하며 동백꽃이 피어난다. 붉은 동백의 생생한 기운은 한겨울 대지에 봄기운을 불어 넣는다.




마음에 담은 동백의 붉은 빛,
지심도

거제에서 뱃길로 15~20여 분을 달리면, 잔잔한 바닷길을 따라 지심도에 닿는다. 하늘에서 보면 한자인 마음 심(心)자를 닮아 이름 붙여진 섬이다. 이곳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들이 자태를 뽐낸다. 섬 전체가 동백나무 군락지여서 동백섬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 국내에서 동백숲이 원시 상태로 가장 잘 보존된 섬 가운데 하나이다.

지심도 동백은 전부 토종 동백이라 꽃봉오리가 작고 꽃이 예쁘다. 12월부터 4월까지가 지심도에서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시기. 그중에서도 성질 급한 애기동백들이 제일 먼저 빨간 꽃봉오리를 내밀며 봄을 재촉한다. 동백이 꽃봉오리를 터트리면서 지심도가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며 겨울을 저만치 밀어낸다.

동백섬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동백이 유명한 곳이지만, 꽃만 훌쩍 보고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심도는 남해안 특유의 상록활엽수림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으며,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희귀 식물과 멸종 위기종인 조류도 많이 서식한다.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포인트도 많아 사시사철 낚시꾼들의 발길도 유혹한다.






일 년 내내 꽃향기가 가득, 외도

거제에는 지심도 외에도 봄기운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해상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외도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진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위치한 외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 있는데 서도는 식물원과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있고 동도는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자연의 배경에 사람의 힘이 더해져 거제의 명소로 탄생했다.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던 부부가 풍광에 반해 정착하고 30년간 꾸준히 섬을 가꾼 것이다. 흔히 볼 수 없는 희귀 아열대 식물 740여 종으로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게 조성했다. 건물과 조경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한 해변을 옮겨 놓은 듯 가꾸어져 있다. 카페와 전시관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마련되어 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찍을 수 있는 촬영 포인트들이 있어 사랑하는 가족, 연인, 지인들과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자연이 빚어낸 경이,
바람의 언덕과 해금강

다시 해안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한다. 갈곶이라는 곳에 이르면 도장포마을의 북쪽 해안에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다.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이 민둥산을 마을 사람들은 바람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짧은 산책로를 지나 언덕 위로 오른다. 언덕 위에 우뚝 서보면 사람들이 왜 이곳을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는지 이내 알게 된다.
거센 바람이 있고, 바람길 너머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있다. 자칫 지나쳤더라면 거제의 또 하나의 모습을 놓쳤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하게 된다. 이국적인 모습의 풍차와 아담한 동백숲도 이곳의 멋스러움에 한몫을 더하며, 사진을 찍는 순간 그대로 엽서가 된다. 해금강은 금강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 바다에 있다하여 17세기 무렵부터 이름 불린 곳이다. 해금강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한다.

해금강은 십자동굴, 촛대바위, 거북바위 등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녔으나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신부바위, 해골바위, 돛대바위 등 수억 년 파도와 바람에 씻긴 형상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한다. 수십 미터 절벽에 새겨 놓은 만물상과 열십자로 드러나는 십자동굴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사자바위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자연이 피워낸 풍광과 인간의 힘으로 조성한 명소들이 어우러져 거제에는 겨울에도 봄이 만발한다. 쪽빛 바람에 실려온 따뜻한 기운이 붉은 동백의 개화를 재촉하는 곳. 거제에 가면 우리의 계절은 어느새 봄이다.






사람의 힘이 일군 변화,
거가대교 그리고 매미성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 이곳의 남쪽 바다는 지중해의 빛 못지않게 신비롭다. 거제는 수도인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과거에는 죄인을 가두는 유배지, 6·25전쟁 때에는 섬 전체가 포로수용소였던 아픔이 서린 곳이다. 하지만 이제 거제는 통영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연륙교가 있어 들어서며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오히려 그동안 곱게 보존되었던 천혜의 자연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여행지로 손꼽힌다.

그 일등 공신인 거가대교는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를 잇는다. 일부 해저터널로도 연결되는 거가대교는 국내 최대,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토목 기술의 집합체이다. 부산과 거제를 연결하며 사람과 사람, 삶과 가치를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가 되어주는 이곳의 경치도 볼만하다. 낮에는 눈앞에 확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드라이브할 수 있고, 다리의 화려한 조명과 밤바다가 만들어내는 야경은 아름답다.

거가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축조물을 만날 수 있다. 이름부터 재미있는 매미성이다.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평범한 거제의 농업인 한 명이 십몇 년째 맨손으로 성을 쌓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농사를 망친 그는 밭을 보호하려 돌을 쌓았다. 평범한 축대였어도 되었을 것을 벽과 망루의 모습을 갖춘 중세 유럽의 성처럼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매미성은 자연과 어우러진 조형미가 뛰어나 인생샷을 찍으러 찾아오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글 : 유현경
사진 : 김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