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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던 도시 문화를 ‘Play(재생)’ 하다

전주 팔복예술공장






모든 사람마다 그들의 역사와 드라마가 있듯, 마을과 도시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대가 있었다. 황량한 공장들이 위태롭게 늘어서 슬럼화 되어가는 전주 팔복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곳에 ‘팔복예술공장’이 새롭게 들어서며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카세트테이프 폐공장을 개조해 문화와 예술을 ‘Play’하는 공간으로 조성한 팔복예술공장은 지역 문화예술을 ‘재생’시키며 전주와 팔복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정지된 공간, 팔복동


팔복동은 전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이자 산업화의 물결이 일던 1970년대 전주를 대표하는 경제 발전 선두주자였던 곳이기 때문이다.산업화의 물결이 일던 1960년대부터 팔복동은 큰 변화를 맞는다. 한국전쟁 후 여러 경제부흥정책이 시행되면서 이곳에 공단이 들어선 것이다. 농업 중심의 마을이 제조업으로 변화하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팔복동으로 모였고, 한적했던 농촌 마을에 공장과 쪽방촌이 넘쳐났다. 등록된 거주 인구만 수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전주의 역사와 경제를 대표하던 팔복동도 격변하는 국내 산업 구조의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1990년대부터 제조업이 쇠퇴의 길을 걷자 폐공장과 극심해진 환경오염만 남긴 채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팔복동은 그렇게 약 30년의 세월 동안 시공간이 멈춰진 채 서서히 녹슬어가고 있었다.



전주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팔복동의 역사를 간직한 팔복예술공장. 시간이 멈춘 듯 옛 공장 모습 그대로다


기억을 재생하다


사람이 없는 건물은 기능과 의미를 상실한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 약 25년 간 팔복동 산업단지 중심에 있던 ‘썬전자 카세트테이프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18년부터 테이프 대신 예술과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신했고, 노동과 생산의 굴레를 벗어나 함께 만들고 즐기는 예술놀이터가 되었다. 바로 팔복예술공장의 탄생이다.

팔복예술공장은 지역의 남는 공간을 재활용했다는 의미 그 이상을 갖는다. 전체 외견을 보면 넓은 부지에 서 있는 공장건물들을 안전하게 보수만 하고 사실상 그대로 두었다. 단지 잔디를 깔고 건물을 잇는 컨테이너 박스 몇 개가 추가로 놓였을 뿐이다. 내부도 옛 공장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았다. 편의시설을 제외하면 당시의 공장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1. 세월이 흘러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공장 출근부는 아직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2. 햇볕을 가리는 천막조차 예술작품이다. 모든 공간이 방문객의 발길을 오래 잡아 둘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대신 담장을 모두 허물고 곳곳에 다양한 미술, 조형 등 예술작품들을 전시하며 사람들을 반긴다. 잊힌 장소를 다시 복원해 과거의 기억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재생’하는 것. 팔복예술공장은 폐공장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부터 미래의 주역이 될 아이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단순히 공간을 새롭게 꾸몄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지는 않는다. 그래서 팔복예술공장을 설립한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은 공간이 가진 특별한 ‘기억’에 가치를 뒀다. 폐공장 부지 활용 방안을 수립하기에 앞서 카세트테이프 공장을 가동하던 당시의 기록을 수집하는 한편 이곳에서 근무했던 공장 노동자와 주민을 만나 공간의 복원과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전문가와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수십 차례의 회의를 거치기도 했다.

우선 과거 팔복동에 살았던 시민들에게 팔복동 산업단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한편, 많은 이들에게 이곳이 재생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연, 전시, 컨퍼런스 등의 활동을 펼쳤다. 1년 동안 주민들이 폐공장을 찾아 과거를 추억하고 예술가는 공간을 새롭게 창조할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휘황찬란한 건물만 세웠다면 그 공간이 품었던 기억들은 사라지고 만다. ‘재생(再生)’이란 그저 물리적으로 새롭게 단장하는 일이 아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탄생했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생(Play)’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팔복예술공장은 이런 사전 작업을 충실히 이행한 뒤에야 공사를 시작했다.




문화예술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다


개관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으며 기대를 받아온 팔복예술공장은 많은 이들의 바람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개관했고, 연간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전주의 대표 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팔복예술공장의 A동 ‘예술창작공간’은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 연구실, 카페, 옥상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창작스튜디오는 작가의 작품활동공간이자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B동 ‘예술교육공간’은 예술가를 꿈꾸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꿈꾸는 예술터와 창작예술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장 어느 곳을 둘러봐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예술작품이 곳곳에 있고, 어디서든 사진을 촬영하고 SNS에 올릴만한 독특한 공간이 즐비하다. 한없이 진지하게 작품을 봐도 좋고 그저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충분하다. 상설전시 작품에서는 경제 발전 이면에 있던 옛 공장 노동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다양한 특별전도 열려 매번 찾을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두가 보고, 체험하며, 즐기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공장 안에 위치한 카페 '써니'

새롭게 태어난 팔복예술공장의 다음 목표는 전주와 팔복동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특히 한때 사람이 북적였던 옛 팔복동이 시대가 변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변두리가 된 사실을 기억하고, 지역 문화예술 콘텐츠를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창작과 예술교육을 동시에 진행하며 예술가와 관람객을 꾸준히 불러모으는 한편, 지역 문화예술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행사를 진행한다.

전시실, 예술을 실험하는 랩실, 교육용 스튜디오, 커뮤니티 공간인 카페, 기록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브 자료실, 운영 수익에 필요한 아트숍, 아이들을 배려하는 놀이터가 한데 모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미술관도, 학교도, 전시관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온전하게 갖춘 곳. 그러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전주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면 팔복예술공장도 방문해보자. 낯설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풍경이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1. 팔복예술공장은 예술인들에게 창작스튜디오 공간을 대여하고 작품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 아이들은 옛 공장 건물 벽을 캔버스 삼아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예술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글 : 김부국
사진 : 봉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