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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여행

내포 천주교 순례길



커다란 변화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종교의 자유는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는 새로운 종교의 등장을 국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목숨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됐다. 조선시대 내포지역 순교자들이 박해를 받았던 당진과 서산의 순례길을 찾아가 봤다.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함께하는 순례길


“사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책을 통하여 성교회의 도리를 찾아 구한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옵니다.” 1811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교황에게 올리는 서한에 적혀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시작된 것은 특별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서양에서 양력 계산법과 기하원본, 천문, 지리, 양명학, 천학(天學), 수학 등 다양한 학문 서적을 들여와 강학했고, 학문의 대상이었던 천주교는 점차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진과 서산이 위치한 충남 서북부 지역은 바다가 육지로 만입하는 내포지역이다. 이곳은 서양 선교사들의 주된 진입로이자 천주교 전파를 위한 활동 무대로 적합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1821~1846)가 탄생한 당진은 천주교 역사상 가장 많은 신자와 순교자가 배출됐으며 천주교 유입 초기와 박해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 순례길인 당진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 합덕제 중수비, 원시장·원시보 우물, 무명순교자의 묘를 거쳐 신리성지에 이르는 13.3㎞ 코스다. 매년 20만 명의 천주교 신도와 순례객들이 ‘한국의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이곳을 방문한다.

종교인에게 성지순례는 신앙생활의 일부이지만 천주교인이 아닌 일반 관광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는 역사·문화적 요소가 풍요로울뿐더러 순례길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순교자의 흔적을 따라 묵묵히 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는 종교적 깨달음을 얻고, 누군가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솔뫼성지의 입구. 입구의 조형물은 山(뫼 산)자를 형상화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당진 버그내 순례길


버그내 순례길의 첫 코스인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산(뫼)을 이루고 있다’하여 ‘솔뫼’라고 이름 붙여졌다.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1906년 당시 합덕성당의 크램프 주임 신부가 김대건 신부 순교 60주년을 맞아 생가 유적지를 재현했고, 1946년 순교 100주년 때는 동산과 순교 기념비가 세워지며 이때부터 소나무 군락지를 중심으로 솔뫼성지가 조성됐다.

충청남도 문화재 제146호인 김대건 신부 생가는 천주교 유적지로는 처음으로 국가 사적지(제529호)로도 지정됐다. 생가터를 지나면 작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고즈넉한 모습의 소나무 군락과 잘 정비된 길이 조화롭다.



1. 소나무 숲과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있는 솔뫼성지
2.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기념해 세운 동상

솔뫼성지에는 지난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흔적도 남아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에는 당시 교황의 기도문을 조각한 비석과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입구 쪽에는 지난 2017년 지어진 성전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이 자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3주년을 맞아 축성된 것으로, 고요하고 웅장한 자태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 합덕성당

합덕성당은 당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자 충청도 최초의 본당으로 1866년(고종3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 합덕성당에 피신해 있다가 체포됐다. 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목재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과 아름다운 조경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국적이다. ‘사람이 만일보천하를 다 얻을지라도 제 영혼에 해를 받으면 무엇 하리오.’ 성당 제대 위의 글귀를 되뇌며 다음 순례지 복자 원시장(베드로)·원시보(야고보) 우물로 걸음을 옮겼다.



1. 무명 순교자의 묘 입구에 스탬프 투어함과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다
2. 내포지역 첫 순교자인 원시장(좌)과 그의 사촌 동생 원시보(우)

우물은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하며 공동체를 지탱한다. 생명력과 정화력이 있어 신성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순례자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우물을 찾는다. 성동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샘으로, 내포지역 첫 순교자인 원시장과 그의 사촌 동생 원시보가 이곳 출신이다. 순례자들은 순교자들이 마셔온 샘에서 마음을 정화하고 쉼을 얻어간다.우물에서 1.6㎞를 걸으면 무명 순교자의 묘에 이른다.

주요 거점보다 덜 알려진 탓일까. 입구에 있는 스탬프 투어함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디가 수북했다. 수풀을 헤치고 묘지로 가면 ‘무명 순교자의 묘’라고 적힌 표지판이 우뚝 서 있다. 낡은 나무 십자가와 표지판의 빛바랜 글씨를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버그내 순례길의 끝자락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천주교 탄압기 가장 중요한 교우촌 역할을 했으며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들이 지내던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라 불린다. 드넓게 펼쳐진 예당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신리성지는 넓은 잔디밭에 우뚝 솟은 순교미술관 건물이 아름다워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박해의 아픔이 남아있는 서산 아라메 순례길


아라메 순례길로 이어지는 서산의 해미읍성과 해미순교성지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당시 방문한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 성지다.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로,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서해안의 방어를 담당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시 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읍성 한가운데 있는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은 옥사 앞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로 매달려 고문당했다. 천주교인들이 고문 받던 흔적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읍성에서 걸어서 20여 분, 차로 2분 거리의 해미순교성지에서도 이름 모를 천주교인들이 숱하게 순교했다. 해미순교성지는 성지이면서 순교자의 무덤이기도 하다. 성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농사를 짓던 중에 사람의 뼈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해미에서 생매장된 순교자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고 한다. 박해 당시 해미 현감을 겸한 무관영장이 조정의 시책과는 다른 방법으로 박해했고,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진둠벙에 피어 있던 연꽃이 눈에 아른거렸다. 연꽃은 진흙탕에 뿌리를 내려도 청정함을 잃지 않고 꽃을 피워낸다. 그 줄기는 바람이나 충격에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그런 연꽃의 모습과 믿음 앞에서 절개를 지킨 순교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1. 순교자들을 고문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회화나무
2. 해미순교성지에 마련된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와 순교탑







만해 한용운 생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

서천에서 차를 타고 홍성으로 20여 분 이동하면 만해 한용운 생가에 도착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해 저항 문학에 앞장선 인물이다.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만해문학체험관과 작은 공원이 있다.




우렁이박사

충남 당진시 신평면 샛터로 7-1

당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당진의 9미(味) 우렁쌈밥이다. 우렁이박사는 20여 년 동안 당진을 지켜온 대표적인 우렁쌈밥 맛집으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우렁이를 가득 넣은 우렁이쌈장 정식. 우리나라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우렁이는 약리 효과가 뛰어나 황달과 위궤양, 각막염, 악성종양, 노인성 백내장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글 : 김혜정
사진 : 봉재석